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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Dec 16. 2019

"히키코모리"라는 꿈

친구에게

누구에게나 여백의 순간은 있다.

나는 항상 스스로 어중간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반은 외향적이고, 반은 내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인류애가 들끓다가, 잠시 뒤엔 인간혐오자가 된다. 사실 인간을 알면 알수록 더 사랑하고 미워하게 되는 것 같다. 애증이란 말만큼 완벽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나는 흔히 말하는 '집순이'이다. 반드시 나가야 하는 일이 아니면 집 밖에 출몰하지 않는다. 배달음식, 쿠팡, 마켓컬리 같은 편리한 시스템들에 의존한다. 하지만 학교를 가거나 교회에 갈 때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마주치고 적당한 관계를 맺게 된다. 어디서 들은 말인데, 낯을 가리는 유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어색해서 말을 아예 못하는 사람, 어색함을 참지 못해 계속해서 나불대는 사람. 나는 완벽히 후자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보고 낯을 전혀 안 가린다고 신기해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종종 방에 틀어박혀서 평생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까.


히키코모리, 라는 단어를 접한 건 초등학교 때 논술 시간에서였다. 열댓살 된 내가 생각하기에 방에서 컴퓨터만 하며 일생을 보내는 것은 뭔가 무서웠다. 어둡고 컴컴한 방에서 무언가 시도해볼 용기조차 없는 사람들이라고 오만한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내가 20살이 넘어 사회에 내던져진 후 돌아보니 나는 히키코모리를 꿈꾸고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피곤하고 귀찮아 아무하고도 교류하지 않는 삶을 상상하곤 하는 것이다.


사람들과 있을 때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나는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전에는 사람들과 있을 때의 밝고 재미있는 나의 모습이 진짜 나라고 여겼다. 내가 원하는 자아상에 맞추어 나를 변화시켜 갔다. 그것이 나쁘다 좋다 판단할 순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왁자지껄 미칠 듯이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다가 한순간 혼자가 되면 고요한 허무함이 나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을 24시간 지속할 순 없었다. 나는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어가야 하는 것이 버거웠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갔다. 나와 만나는 시간이 늘어나자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었지만, 누군가를 만나면 습관대로 밝은 가면을 썼다.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고,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 편했다. 그럴수록 나는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오랫동안 친한 관계를 유지해온 친구들에게도 연락하는 것이 힘들었다. 만나자 만나자 계속해서 연락하는 친구들을 거절할 만큼 매몰차지도 못했지만 나가서 예전처럼 분위기를 띄울만큼 천연덕스럽지도 못했다. 억지로 나간 약속에서 번번이 어색한 분위기를 경험했고 가해자는 없었지만 나는 혼자 상처를 받았다. 서운해하는 친구들에게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무슨 일 있니, 전보다 변한 것 같아, 달라진 것 같아 걱정스레 묻는 친구에게 나는 대답했다. 나는 단지 이제야 내가 된 것 뿐이라고.


나의 카톡 채팅 목록은 예전만큼 빨간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얼마 전 생일만 해도 1년 전에 비해 훨씬 적은 축하를 받았다. 자연스레 어떤 친구들은 멀어져갔다. 처음에는 두렵고 혼자가 되는 건 아닐까 겁이 났지만, 여전히 이런 나를 좋아해주고 이해해주는 인연들이 있었다. 진심어린 몇 개의 생일 축하가, 의미없는 백가지 말들보다 큰 감동을 주었다. 정말로 내가 태어난 것을 기뻐하고, 나와 친구가 된 것에 감사하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나는 나중에 돈을 벌면 집을 사서 그안에서 틀어박혀 있는 꿈을 꾼다. 하지만 그 상상 가운데는 집들이를 하는 친구, 같이 앉아 영화를 보는 친구, 함께 맛있는 걸 요리하며 깔깔댈 소중한 나의 친구들이 있다. 어려움이 닥친 사람에게 하는 흔하고 뻔한 말들 중에, 진짜 친구를 가려내는 기회가 된다고 한다. 사랑을 나누고 서로의 존재를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친구'라는 명목하에 함께할 수 있어 참 감사하다.


1214_지나간 생일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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