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네요
그동안 나는 일을 했다.
정규직은 아니었고 쓰고 버려지는 ㅋㅋ 일을 했지만 반년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았지만 길다면 길어서 나름 일하는 동안에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안정적인 정서를 유지했다.
좋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연장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곳에 어필해서 뼈를 묻고 싶냐 하면 그건 또 그 정도는 아니었다.
또 한 가지
나는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시작은 매우 간단했다.
남자 친구도 나도 수입원이 없어서
“이제 우리 어떻게 만나?”라는 말을 했을 때
남자 친구는 “그냥 학생 때처럼 가난하게 데이트해야지~”라고 했는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라도 돈을 벌어야겠다.
푼돈이라도 좋으니 적어도 데이트 비용 정도만이라도 벌자.라는 생각을 했다ㅋㅋㅋ
그래서 중간엔 투잡을 뛰며 정신없이 달려왔다.
비록 정규직은 아니었지만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둘 다 나름 보람이 있고 누군가를 돕는 일이라 적은 돈이었지만 좋았다.
문제는 일이 끝나고 나서였다.
아침에 나가서 일을 하고 밤에 알바를 하고 공부를 하면서 엄청나게 정신없이 살다가
모든 것이 동시에 끝나버렸다.
돈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 마음이 허했고 한가로운 생활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괜찮았던 자아존중감은 또다시 땅 밑으로 파고들고 세상 우울해졌다.
나는 이미 도태된 후 취업시장을 떠났고, 돌아가고 싶지 않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갈 길은 그곳뿐이었다.
예전에는 무기력하게 집에서 시간을 죽이면서도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았는데
이제는 집에서 시간을 죽이는 것이 싫고 아무것도 안 하는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졌다.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은 사치고
해야만 한다 라는 생각만 들었다.
일을 하면서 행복했기 때문에,
다시 또 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한 가지 정신 차린 것은
예전에는 정말 조건만 되면 하고 싶지 않고 누가 봐도 관련도 없고 뽑히지도 않을 일에 욱여넣은 이력서들을 더 이상 아무 데나 들이밀지 않는다.
이제는 자아성찰 하여 그나마 비빌 언덕이 되는 곳을 찾아서만 넣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구인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