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요
내가 가장 무서운 것은 '무기력' '무의지'이다.
나는 나중에서야 이게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일종의 우울증이었던거 같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죽고 싶고, 우울하고 슬프고 이런 극단적인게 아니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증상인 무기력도 우울의 일종이다.
나 같은 경우엔 아 죽고 싶다 이런 느낌보다도
무가치감, 무기력이 가장 힘들었다.
다시 빠져나오기가 힘들고 잔잔해서 사실 큰 문제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의 취업기간 텀이 엄청나게 길었던 이유도 사실은 무기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의욕상실이 오면 꼼짝않고 아무것도 안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한테 꽤나 유익했던 감정은 분노였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차갑다, 무감각하다, 시크하다, 무심하다' 이런 말을 많이 할 정도로 나는 꽤나 퉁명하고 감정이 잔잔한 척 하는 사람인데 한 번씩 찾아오는 분노는 나를 아주 다르게 만들었다.
취업을 안하면 까놓고 말해서 돈이 없는게 사실 제일 짜증난다.
자기성취감, 자기효능감 이런건 둘째치고 돈벌기 위해서 취업하는 것도 큰데 돈이 없으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없고 선택 폭도 낮아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 나는 슬프고 우울해서 무기력해질 때도 있었는데
갑자기 화가 솟아오를 때가 있었다.
(사실 이 때 이력서를 제일 많이썼다.)
그냥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 짜증나는데 얼른 나갈거야
이런 느낌이 오면 분노를 장작삼아 불태우면서 뭔가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
(이건 평소에 화가 많은 분들에겐 추천하지 않습니다..ㅋㅋㅋ 분노조절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평소에 좀 소심하고 체념이나 무기력이 많은 사람에게만 추천)
남자친구와 싸우면 나는 '그래 보지 말자 짜증나는데...' '그래 됐어..' 이런 식의 체념을 하게 되는데 오히려 이럴 때는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나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한 번씩 '엄청 짜증나는데 일단 만나자 한대 패야겠다.'라는 분노가 샘솟으면 일단 봐!! 이렇게 하고 만나면 또 치고받고 싸우던간에 해결이 되었다.
고로 나에겐 회피와 무기력이 가장 무서웠다.
지금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한다.
그 나아갈 힘을 뺏길 때 약해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