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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ma Jan 07. 2021

마음의 여유

내 상황이 나쁘다고 해서 스스로를 고립시킬 필요는 없다.

인간관계에서 마음의 여유는 참 중요하다.

나이 들며 교류하게 되는 인간관계가 어느 정도 고정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좋아했던 사람과 손절하게 된 경우도 있고 우리는 그럴 리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과 자연스레 멀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취준생 때 직장 다니는 친구에 비해 나는 쓸모없다는 생각이 커서 친구들을 피하거나 멀리했다.

만나면 돈을 써야 하는 게 큰 부담이었고 그 친구들의 주화제는 돈이나 결혼 회사였는데 거기에 속하지 않아 그저 먼 얘기인 나는 낄 수가 없는 그 화제가 싫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키는 게 참 자존심이 상했다.


취업준비를 하며 멀어지게 된 일부 친구들이 있는데 브라이덜 샤워 파티를 하고 싶다는 친구들에게 취준이라 돈 여유가 없어 축의금조차 부담스러운 형편이며, 함께 할 수 없다는 의사를 표현하기가 참 힘들었고 그 친구들은 내 입장을 이해하지 못해 나 혼자 상처 받고 도어슬램(손절)해버렸다.

나도 성숙하지 못했고 그 친구들의 배려도 부족해서 생긴 일이지만 지금이었으면 달랐을 텐데 약간 아련해지기도 한다.


취준이라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어 나는 인간관계 여유가 사라졌지만, 나와 같은 장기 취준 상황이어도 여유를 가지고 사람들을 둥글게 대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직업이 있어도 다른 이유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일반화할 수 없고 내 선택은 잘했다고 할 수 없다.


심한 슬픔을 겪은 후 현재는 온화해진 상태인데 언제 떨어질지 모르나 지금은 사람에 대한 여유가 있다.


코로나로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면서 작년 연말에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다. (나는 혼자 괴로워하면 주위에 소홀해진다.)

상황이 너무 괴롭고 이걸 표출해 공유할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애정과 관심이 없는 건 아니기에 나름의 관심 표현이었다.


예쁜 엽서를 사서 친구들에게 한 해 고생했다고 앞으로 2021년의 행복을 바라는 진심을 담아서 썼다. (내 현실이 나쁘다고 다른 사람들의 행운을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동네 친구들에겐 우편함에 직접 넣어주고 멀리 사는 친구들에겐 우편으로 전달했다.


내가 좋자고 한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친구들의 반응이 좋았다.

평소 기빨려서 카톡 하기도 힘들단 이유로 답장도 선톡도 안 하는데 소홀했던걸 괘씸해하지 않고 내 카드를 프사로도 해주고 SNS로도 올려주고 좋아해 주는 게 기쁘면서도 얼떨떨했다.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애정은 표현해야 커지는구나 느꼈다.


내가 여유를 갖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라면서 상실된 인간성이 회복된 기분이었다.

취준을 하면서 잃게 되는 마음의 여유는 오로지 나 자신만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내가 너무 힘들고 여유가 없으니 주위의 소중함 따위 보이지가 않았다.

여하튼 팽개쳐놓았던 관계들을 여유를 가지고 다시 손길을 내미니 다시 또 이어졌다.


이에 앞서 나에게 너무 고마운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항상 내가 먼저 손 내민 친구였다.

늘 우울감이 심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어쩐지 나 같아서 혼자 둘 수가 없었는데 내가 먼저 다가서다 내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여유를 잃고 모든 인간관계가 닫히면서 이 친구의 손도 놓칠뻔했다.


처음으로 2년 만에 먼저 연락한 친구는 그간 일어났던 힘들었던 가정사를 고백하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늘 내가 먼저 다가와줬는데 먼저 노력하지 않아서 미안했다고. 이제 니가 나를 안 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꼭 다시 보고 싶었다고.

먼저 용기를 내준 친구의 모습에 스스로가 엄청 부끄럽고 감동받았다.

어쩌면 이 친구 덕분에 나도 용기를 내서 다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성장했구나 느낀 건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감정을 자존심 상한다는 이유로 숨기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상황이 부끄럽고 초라해서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감추고 싶었지만 결국 내 자격지심이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힘들다면 나를 지키기 위한 도피도 나쁘지 않지만 스스로를 고립시킬 필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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