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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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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ma Feb 12. 2022

09. 육아(미혼 시점)

나이 들어서 보면 관점이 다를 거 같아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써보는 글


나는 현재 미혼이다.

결혼 적령기에서 조금 지날락 말락 하는 시기이다.

내 또래 여자들 중 결혼해서 애 낳고 싶어 그게 행복이야 라고 말하는 여자는 적어도 내 주변에선 본 적이 없다.


다들 아이를 키우면 경력이 단절되고 커리어 쌓기 힘들며 자신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고 그래서 결혼은 할지언정 딩크로 살거나 아이는 아주 늦게 갖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약간 터울이 있는 친언니가 있다.

공교롭게도 친정 옆에 사는 그분 덕에 나는 첫째 조카 때 언니가 우리 집에서 몸조리하는 것을 보았으며 조카들 우유 먹이고 트림 시키고 기저귀 갈고 씻기고 계속 안 자고 여튼 아주 가까이에서 육아도 봤고 새발의 피이지만 육아 보조로 참여도 해봤다.


나도 20대 중후반, 불과 얼마 전까지 결혼은 괜찮겠지만 아이는 낳고 싶지 않고 내가, 내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애를 낳으면 어쩔 수 없이 늙고, 내 몸의 일부를 주는 거니까 낳기 전과 같을 수는 없으며 아이는 엄마를 필요로 하기에 아무리 맡긴다 한들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어 묶인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일을 사랑한다기보단 사실 그 무엇도 나보다 사랑한 적이 없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뀐 건 근 1년 동안이었다.

아주 어려서 인지능력이 없을 때는 맡길 수 있지만 적어도 양육자를 알아보고 기억이 나기 시작하는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까진 옆에 계속 있어주고 같이 있고, 무언가를 하는, 좋은 기억을 많이 주고 싶다.

그때 엄마아빠랑 함께 있는 아이의 기억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성격 형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눈이 오는 날 학교 빠지고 부모님이랑 눈썰매장 같은 데를 간 하루의 기억이 아이한테는 추억이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눈이 오면 그날의 행복한 기억을 상기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딸에게 시골 고향집은 언제든 지치면 찾아와서 쉴 수 있는 작은 숲이 되어준다.

엄마는 그걸 생각해서 일부러 시골을 떠나지 않고 아이에게 어릴 때 요리도 해주고 마음껏 뛰놀게 하면서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준다.

어릴 때 형성된 이런 튼튼한 기반이 있다면 성장하면서 지치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은 견디고 이겨내는 면역력을 갖게 된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건 스트레스가 엄청나고 우울증도 불러일으키니 늘 영화처럼 산뜻하고 우아하지 않다.

육아는 치열하고 짜증스럽고 성가시며 자괴감도 든다.

잠도 못자서 피곤해 죽겠는데 등에 센서가 달린듯 내려놓음과 동시에 울어재끼는 조카를 보며 아주 잠깐 이 인형 스위치를 끌 수 없나 라는 생각도 했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이다.

그 시간은 아주 짧다.

진짜 힘들어 죽겠네 언제 크냐 했는데

아이는 생각보다 매우 빨리 자란다.

그렇지만 그 찰나가 누군가한테 세상이 되고 앞으로 인생을 사는데 필요한 숲을 가꿔줄 수 있다는 건 굉장히 귀중하고 특별한 경험이고 부모가 되면 해줄 수 있는 축복받은 일이다.

정리하자면 이게 내가 부모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다.


개인적으로 나는 예전부터 아이를 키우는 건 내 못다한 꿈을 이루고자 하는 욕심이나 자식 덕 보려는 보상심리가 아니라 순전히 부모 좋으라고 키우는 거잖아라고 생각해왔다.

아이는 한 번도 부모에게 낳아달라고 말한 적이 없다.

부모가 키우겠다고 낳았을 뿐이다.


그러니 만약 아이가 생겨서 낳는다면 나 좋자고 낳은 아이에게 나무를 심어서 숲을 가꿔주고 아이가 자기 인생을 살기 위해 세상에 나갈 수 있게 흙이 되어주는 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부모였다.


나는 부모님과 별로 추억이 없다.

충분한 의식주를 제공해줬고 별다른 불만은 없었지만 타고난 성향이 섬세하고 감정적인 소통을 갈구하는데 나랑 성격 자체가 너무나 다르고 감정적인 교류가 결핍되어 있어서 난 누가 봐도 무미건조하고 감정표현이 메마른 시니컬한 인간으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쓸 정도의 감성이 메마르지 않았던 이유는 주 양육자가 할머니었다.

나한테 토양이 되어준 좋은 기억은 대부분 할머니가 주었던 거고 사실 위에서 내가 말한 주 양육자가 꼭 부모일 필요는 없긴하다.


그래도 사람이 원래 못 가진 게 아쉬운 법이라 내가 생각하고 원했던, 잘 들어주고 응원해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화 안 낸다고 안 했습니다만,

위에 너무 거창하게 썼지만 사실 나는 별로 완벽한 부모가 되고 싶진 않다.

괜한 죄책감도 느끼고 싶지 않다.


성장하면서 느낀 건 부모님도 악의가 있어서라기 보단 그저 몰랐던 거 같다.

나라는 인간이 결과물로 남았지만 함부로 그 무게와 힘듦을 평가하고 싶지도 않다.


서툰 티가 나도 아이한테 물어보고 맞춰서 노력해주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엄마가 그때 엄청 부족했는데도 나한테 맞추려고 하는 게 느껴져서 좋았어.

그 정도 평가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엄마는 나에게 결혼도 하지말고. 자식같은거 낳지말고 그냥 돈이랑 시간 다 너한테 쓰고 니 인생 살아. 라고 한다.

애낳고 키운게 좋았으면 나한테도 권유할텐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키운 보람이 별로 없는 자식인가보다.


엄마 입장에서 내자식은 육아로 희생 안했으면 싶은 마음이겠지만…

육아를 내 인생 희생이라기 보단 자식은 자라는 동안 부모에게 기쁨 준걸로 효도 끝난거라 포기하고… 그 후의 인생은 내가 알아서 또 찾으면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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