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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임부일기

나의 직장 생활

by Hima

지난번엔 양보받지 못한 임산부석에 대한 글을 썼는데

반대로 엄청 배려받고 있는 곳도 있다.

바로 내 직장이다.


임신 전 특별한 장점이 있던 건 아니었는데

임신 이후 남편은 '월급 적은 걸 제외하고 임산부에게 최고의 직장'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나의 직장은 특수하다.

아기들에 의해 운영되는 곳이다.

아기가 없으면 문을 닫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에게 아기들은 소중하다.

그렇기에 생명 윤리를 무척 중시하는 곳이다.


늘 많은 아이들이 오가고 있고 업무 중 종종 아기를 본다.

양육 경험이라기엔 주양육자가 아니라 미약하지만

놀아주기, 분유 먹이기, 재우기, 달래기, 기저귀갈기,

병원 진료, 돌잔치, 사진촬영 등을 해본 적이 있다.


임신을 처음 확인했을 때

'회사에 뭐라고 알리면 좋지...?'라는 걱정이 있었지만

12주까지는 임신초기라 단축근무를 신청할 수 있어 빠르게 알렸다.


상사에게 알리자마자 너무 기특하다 축하한다

기뻐하며 포옹해 주셔서 반응에 꽤 놀랐다.

(직장상사들이 다 여성인 직장이다.)


그리고 업무를 조정해 주셨고 더 이상 주말근무도 하지 않는다. 단축근무도 시행했다.

그 외에도 주위에서 많은 의식과 배려를 해주셨는데

간혹 사무실에서 간식을 먹던 분들이 "혹시 냄새 때문에 입덧하나요?"라고 묻거나 외근을 할 때 "나갈 일 있으니 태워주겠다."라며 편하게 가도록 차를 태워주기도 했다.

식사 시간에도 임산부에게 좋은 거 라며 특별히 더 많이 내어주시거나 아침 굶지 말라고 간단한 한 끼를 주시거나, 따뜻한 거 먹으라고 음식을 데워주시는 등

작은 배려였지만 참 감동이었다.

최근에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퇴근길 차를 태워주기도 하셔서 감사했다.


아이를 옆에서 돌보면서 느낀 점은 결국 내가 잘난 거는 소용이 없다.

누군가의 손길이 감지덕지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 모든 온정의 손길을 받는다.


직장에서 임신을 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눈치를 받거나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


가끔 내 업무를 대신해야 하는 분들에 대한 죄송함이 엄청 컸지만 당연하게 먼저 나서서 해주시고, 오히려 나에게 죄송할 일이 아니라 하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입양 가는 아기들과 생활하며 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직장이라서일까?


늘 남에게 폐 끼치는 거 싫어!!

라며 살던 나도 임신 후 도움을 받으며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예전엔 남에게 1을 받으면 2를 갚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나에게는 부담이었고 과제였다.

그런데 이젠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기가 왔다.


그러니 나도 그 감사함을 잊지 않고 누군가를 도와야 할 때 기꺼이 그렇게 해야지 느꼈다.

남편에게도 늘 말한다.

주위에 임산부가 있으면 주저 말고 도와주라고


태어나지 않은 성별도 모르는 이 아이의 이름은 '선'이다.

남자여도 여자여도 상관없는 이름으로 미리 정했다.

(태명 부를 새도 없이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누군가의 선의로 인해 지켜진 아이가

누군가에게 선을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지었다.


뱃속에 있는 아가를 키워내고 있는 것은 나지만 그런 임산부가 아기를 키워낼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지와 배려를 주는 건 결국 주변이다.

오늘도 따뜻한 내 직장과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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