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는 연애를 8년 동안 했다.
그리고 결혼 후 1년 3개월 만에 아기가 생겼다.
아기를 낳게 된 시점에서 내가 입양기관에서 일을 하게 된 데 그저 단순히 '시기가 맞아서'일 수도 있지만
나는 어떤 운명 같은 것을 느꼈다.
엄청 신실하게 종교를 믿고 있지 않지만
신이 있다면 이런 게 하느님의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자연스럽게 아기들과 생활하며 많은 애정을 느꼈고
세상에 온 아기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으로 매일매일을 살다가 아기가 찾아왔기 때문에 더 뜻깊게 느껴진다.
사회복지 쪽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오랜 기간 취업이 안되면서 자신의 무쓸모에 좌절하면서 이런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산다면 가치 있을 거 같다.
이런 생각으로 시작했다.
현재 아기들과, 아기들을 위해 일하면서 아기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전과는 또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다.
임신기간 늘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몸도 변하고 여기저기 아프고 힘들다.
그런데 나는 내 몸 힘들다기 보단
'나보다 아기가 힘들진 않을까?'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출산도 목숨을 걸고 할 테고
엄청나게 나도 많이 아프겠지만
적어도 난 내가 선택한 병원에서, 익숙한 담당의사와
믿고 있는 남편과 함께 할 수 있지만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컴컴한 곳에서 밝은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낯선 곳으로 나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아기가 너무 대견하고
아기를 먼저 응원하고 싶어 진다.
'난 괜찮아. 그러니까 너도 힘내.'
그래서 많은 엄마들은 자식이 1순위인가보다.
나도 내가 이렇게 변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분명히 나도 20대 초중반에 임신 출산에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커리어 단절이 싫고, 몸의 변화가 싫고 조금 더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싶고 자유롭고 싶고 내가 중요한,
보편적인 그런 이유들이었다.
남편을 만나 연애하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가 아기를 낳을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남친이던 시절부터 아기를 좋아했고
늘 우리의 미래에 아기가 있었다.
8년 간의 연애를 하며 추억이 쌓이면서도
"나중에 여기는 아기랑 오고, 이건 나중에 아기랑 먹고, 나중에 우리 아기는 이렇게 키우고"
뭐 이런 식의 이야기를 참 자연스럽게 많이 나눴다.
우린 둘 다 부모님에게 감사함을 갖고 있었다.
못해준 것보다 여건 안에서 해주신 거에 감사하다.
매 계절마다 아름다운 곳들을 보고,
여러 감정도 느끼고 사람도 만나고
(물론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것을 느끼고 볼 수 있게 태어나게 해 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자연스럽게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런 삶을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기를 소망했다.
나는 입양 쪽 일을 하면서 철저하게 아동의 입장에서 일한다.
부모의 재산이 부유한 가를 떠나 이 가정이 아기에게 행복한 집인지
부모를 끊임없이 계속 검증하는 과정이다.
내가 임신을 하고 나서도 꽤 객관적으로 나와 남편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경제적으로는 상위권이 아니다.
오히려 물질적으로 못해주는 게 많을 것 같다.
그런데 그렇다고 아기가 꼭 불행할까?
나는 아기에게 꼭 필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작고 행복한 반짝이는 추억
나중에 힘들 때 지탱해 줄 수 있는 정서적 버팀목
그래서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애정을 줄 생각이다.
그러나 그 애정이 너무 넘쳐서 아이를 침범하고 싶지는 않다.
좋아하는 영화인 리틀포레스트의 주제가 인상 깊었다.
삶에 지친 주인공은 본인의 시골집으로 돌아오고,
엄마가 유년시절 남겨준 것은 자신만의 작은 숲을 만들어 준 것
그 안에서 주인공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이를 나와 똑같은 분신으로 취급하지 말고
아이가 성장해서 자신의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양분을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