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여러 아기들을 만나보고 아기를 낳아 키워본 바 내 아기는 순하다.
신생아실에서 조리원에서 산후도우미까지 모두 입을 모아 순하다고 했다.
아기는 잘 울지 않는 편이고 울더라도 울음이 짧다.
잘 웃고 사람과 옹알옹알 상호작용을 좋아한다.
혼자서도 오랫동안 놀고 안아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이유식을 해보니 뭘 해줘도 대체로 다 잘 먹는다.
잠귀가 밝은 편이 아니라 잠도 잘 자고 통잠도 잔다.
이 모든 사실에 감사하다.
그래서 육아가 편하냐고?
상대적으로 예민한 아기보다 편하겠지만 절대적으로 편하다!라고는 못하겠다.
아기가 기관을 다니지 않는 어린 연령이라 부모의 손이 많이 필요하다.
순하기는 하지만 대근육 발달이 빠른 편이라 움직임이 많고 몸 쓰는 걸 좋아해서 여기저기 엄청 사고를 치고 다닌다.
그리고 아기를 보면서 집안일을 하는 것은 꽤나 고되다.
나의 일과를 소개한다.
아침에 기상해서 환기하며 아기 매트를 청소하고 장난감들을 소독한다. 이쯤 아기가 일어난다.
아기를 데리고 나와 이유식을 데운 후 먹인다.
양치시키고 나도 뭘 먹으면 낮잠 잘 시간이라 아기를 데리고 들어가서 수유 후 재운다.
아기는 눕힌다고 자는 게 아니라 한참을 재운다.
진 빠져서 나온 후 난장판이 된 설거지통을 치우고 들어가서 나도 낮잠을 좀 잔다.
아기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점심밥이나 간식을 준비한다. 아기가 깨면 점심을 준다.
그리고 또 치운다.
아기와 놀이시간을 갖는다. 수유를 한다.
(틈틈이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정리도 한다.)
내가 집안일하는 동안 아기는 대차게 사고를 친다.
그래서 옆에 계속 있어야 한다. 집안일을 포기한다.
이때 너무 힘들면 바깥 외출을 한다.
다시 낮잠시간이 되어 들어가서 수유 후 재우기
뜻대로 안 자면 낮잠 재우기만 두 시간이다.
재우고 나와서 내가 점심을 안 먹은 걸 깨닫지만 저녁 준비를 한다.
아기가 일어난다. 아기 저녁밥을 준다. 치운다.
남편 퇴근시간이 되어 밥을 준비한다.
남편이 퇴근하고 저녁을 먹는다.
한 명이 설거지하고 한 명이 아기를 씻긴다.
다시 수유 후 밤잠 재우기
이게 가장 힘들다. 안 잔단다.
새벽 5-6시쯤 기상하면 첫 수유를 하고 반복
육아는 조별과제와 같아서 다른 팀원(남편)이 자꾸 약속을 잡는다거나 아파서 빠질 경우 내가 다 해야 한다. 서로 역할분담을 잘해줘야 화가 나지 않는다.
“집이 왜 이렇게 더러워”
“아기 잘 때 뭐 했어”
이런 대사를 하면 파국이다.
나도 아기를 낳기 전 왜 집에 있는데 시간이 없고 정신이 없는지 궁금했다.
지금은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카카오톡 답장하다가 아기가 우당탕탕 음식 쏟으면 달려가서 치우고 씻기고 하다가 답장을 홀랑 잊게 된다.
아기를 재우는 게 길어져서 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어도 못하고 미루고 나도 기절한다.
예전엔 우울감과 무기력함이 찾아올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하루하루 너무 바빠서 찾아올 틈이 없다.
앞만 보고 매일을 살아낼 뿐이다.
그 과정에서 뭘 자꾸 까먹고 지나친다.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짧은데 체력도 적어서 에너지를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내게 아기가 슬쩍 다가와서 바짓가랑이를 잡아 당기고 일어선다.
내 옆에 놓인 발걸레를 쭙쭙 빨아먹고 부엌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 논다.
아무리 좋은 장난감을 놓고 안전하라고 매트를 깔아줘도 아기는 결국 내 주변에서만 도는 작은 행성 같다.
이런 걸 보면 미안하고 마음이 짠하다.
나의 선택과 집중은 아기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