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육아의 아이러니

by Hima

우리 아기는 현재 9개월

뱃속에서 보낸 시간보다 아직 세상에서 보낸 시간이 더 짧다.

하지만 뱃속에서도 지금도 한결같이 아기에게 믿음을 주고 안전기지가 되어주는 존재가 있다.

바로 나 ‘엄마’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엄마도 태어난다고 하듯이

난 여태 누군가의 딸, 동생, 아내, 며느리, 조카 등등으로만 살다 처음으로 엄마라는 직책을 갖게 되었다.

우당탕탕 초보엄마다.

그런데 어디서나 ‘경력우대’인 이 세상에서도 아기는 그런 거 따윈 상관없다는 듯이 맹목적으로 날 사랑한다.

연애 초 남편이 나를 보며 반짝반짝 빛나던 그 눈동자와 같이, 나를 늘 초롱초롱 바라본다.


어디서 누구와 놀다가도 늘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돌아본다.

놀이를 할 때도 내가 있는 반경으로 돌고 보이지 않으면 찾아온다.

배고프거나 졸리거나 아프거나 하면 나만 찾고 작은 손으로 다리를 붙들고 매달려 운다.

엄마가 되어 누군가의 우주가 되는 경험을 한다니 신비하다.


아기를 키우면서 놀란 점은 내 생각보다 가르쳐줘야 할 것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이유식을 처음 먹일 때 나는 아기에게 나중에 숟가락질 같은 걸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보다 더 기본적인 것들을 먼저 가르쳐야 했다.

아기는 이유식을 ‘먹는 것’으로 알지 못해서 숟가락을 갖다 줘도 입을 벌릴 줄도 몰랐다.

졸려서 어쩔 줄 몰라 칭얼거리지만 혼자 잠드는 법을 몰라서 재워주며 서서히 잠드는 법을 가르쳐야 했다.


내가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던 일들이 학습의 결과라는 걸 아기를 키우며 알게 되었다.

아기는 그렇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백지의 상태로 태어나서 엄마를 점점 길들인다.

아 아기란 하나부터 열이 아닌 백까지 다 가르쳐야 하는 존재구나

그래서 엄마는 엄마가 처음이지만 최선을 다한다.

가끔 아기에 매여있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책임감이 부담스럽고 원래의 자유롭던 내가 그립지만 아기는 지금 무엇보다 나를 믿고 의지하고 사랑해 준다.

그 사랑에 익숙해지며 아낌없이 모든 걸 쏟아붓는다.


그리고 엄마가 모르는 새 아기는 훌쩍 커버린다.

아기는 더 이상 아기라고 불리고 싶어 하지 않고 보호받고 싶지 않다.

당연히 더 이상 엄마가 내 우주도 아니다.

그렇게 아이러니하게도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순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그동안 나를 돌본 존재(엄마)가 된다.

엄마와 자식의 생각이 완벽히 역전된다.


내내 딸의 입장으로 살아오다가 이제 엄마의 입장이 되고 보니 알겠다.

너무나 기본적인 것도 모르던 아기라 엄마는 ‘나’를 버리고 모든 걸 알려주고 보살펴 주면서 엄마에 길들여졌다.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였던 게 아니다.

엄마도 가끔 버겁고 힘들면 도망치고 싶지만 그러기엔 나만 믿고 바라보는 아기가 너무 사랑스럽다.

엄마의 역할을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가 없다.


그러다 아기가 성장해서 모든 걸 다 해 주려는 엄마의 존재가 부담스럽고 이젠 그만 놔주세요. 독립하고 싶어요.라고 할 때 이미 오랜 시간 엄마 역할에 길들여져 버린 엄마는 돌아갈 ‘나’를 찾기 쉽지 않다.

아기를 낳기 전에 좋아했던 것들과 인간관계 직장 등등 많은 부분이 아기를 낳고 나면 꽤 많이 달라진다.


인생에서 최고 가치를 두던 것들이 우선순위가 바뀌고 멀어지고 아기 중점으로 살다 보면 언젠가 아기가 나를 더 이상 전처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그 자리가 비어버린다.(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육아의 아이러니함을 깨달으면서 비로소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필요해서 엄마를 엄마로 만들었는데 크면서 부담스럽고 벗어나고 싶고 답답하고 엄마도 엄마 인생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럼 내 아기가 나를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이 세상의 전부인 시간이 길어봤자 10년일까

점점 더 많은 인간관계와 더 중요한 것들이 생기고 나중에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들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 쓸쓸해지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지만 내가 그렇게 자랐으므로 너무 당연한 일이다.

지금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더 많은 사랑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이가 성장했을 때 그 독립을 응원하기 위해서 나도 나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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