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집 같은 소리 하네

눈뜨면서부터 잠잘 때까지 일하라는 회사

by Hima

엄마가 갑작스럽게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후에는 입원을 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엄마의 자리에 내가 투입되었다.

평상시 아빠와 워낙 데면데면해서 마주 칠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되고 나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엄마가 입원해서 엄마 병원에 내가 가서 자던 딱 한 번 아빠는 자신의 설거지를 했다.

(아마도 저녁 먹은걸 씻어놔야 아침 먹을 수저가 있기 때문으로 추정)


엄마가 집으로 돌아와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 내가 일을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아빠가 이제는 집안일을 전혀! 안 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엄마 심부름과 집안일을 하고 나서 아빠가 왔다.

밥을 따로 먹기 때문에 아빠가 먼저 먹었고 나는 나중에 먹으려고 먹지 않은 상태였다.

아빠가 다 먹고 그릇을 설거지통에 쌓아놨다.

"아빠가 먹은건 아빠도 설거지 해"

"너 아직 안 먹었으니까 니거 먹고 니가 둘 다 해"



순간 형언할 수 없이 화가났다


나는 엄마가 아프니까 아빠랑 나랑 같이 엄마를 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나한테 엄마의 병문안을 맡기더니 모든 집안일까지 다 넘기는 아빠의 태도에 화가 났다.

설거지 하나로 뭐 이렇게까지 핏대를 올리냐고 생각한다면 그간 아빠는 단 한 가지도(양말 뒤집어서 빨래통에 넣는 조차도) 않고 나에게 다 떠넘겨왔기에 참고 참던 스트레스가 사소한 일로 폭발한 것이다.


요리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다 차려놓은 밥상을 드셔 놓고 본인 먹은 그릇을 못 치운다는 게(정확히 말하자면 할 줄 알지만 안 치우는) 무슨 소리지

오히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우리 집 멍멍이나 아기가 그랬다면 나는 기꺼이 도와주려고 했을 거다.


아빠는 단 한 번도 살면서 수술을 해본 적이 없으며 무지무지 건강한 성인 남자다.

그런 아빠까지 보살펴줄 의무가 전혀 없는데 왜 내가 엄마의 케어를 넘어 아빠까지 케어하고 있나 생각해봤다.

이건 내가 몰랐던, 즉 엄마가 평소에 당연하게 하고 있던 일이었다.


아빠가 돈을 벌고 내가 백수니까 모든 집안일을 내가 다 해야 하는 건가 고민해봤는데

그렇다 해도 100% 가사를 내가 분담하고 간병을 해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친구들이랑 얘기해봤는데 여자끼리도 의견이 제법 갈렸다.

돈 안 버니까 그거라도 하라는 의견도 있고

아빠들은 원래 다 그렇다는 의견도 있고

나누는 게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다.

각자의 의견은 있지만 어쨌든 우리 집 일이고 내 기준에서 이건 절대 용납이 안된다.


그러면서 아득해졌다.

만약 취직을 못하면 여자는 시집을 가면 된다는 소위 말하는 '취집'얘기가 우스갯소리로 있다.


난 절대 절대 취집을 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내가 돈을 벌지 않는다고 해서 낮동안 일한 내 가사의 노동이 아무런 돈이 안 되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가 낮동안 돈으로 환산되는 일을 50 하고

나도 낮동안 돈이 안 나오지만 가사를 50 했는데

왜 아빠의 퇴근 후 아빠는 쉬고 나는 서서 70까지 야근을 하는 것인가


집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게 정당화되는 이유라고? 나는 납득하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아빠에게 그동안 요구한건 집안일이 아니다

본인의 빨래를 예쁘게 빨래통에 넣어달라 본인이 먹은 거는 알아서 치우자였다.


이게 내가 쉬기 때문에 100% 다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찾아가서 패고 싶다.

그리고 대부분(심지어 여자조차) 이걸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간 엄마가 아빠에게 단 한 번도 일을 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왜그랬을까???

엄마에게 이입해서 엄마라고 생각하고 그 입장이 되어 생각해봤다.


나는 전업주부가 아니라 아직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집에서 하는 일이라도 노동은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100% 가사가 아니라 (집에서 글을 쓸지언정) 나만의 일을 하고 싶다.


결혼은 엄마에서 아내라는 새로운 가사 봇을 구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 태어난 여자는 없다.


그런데도 돈 못버니까 집안일은 너가 다해! 이게 생각보다 공공연히, 암묵적으로, 매우 당연시되는건 이상하다.

(모든 집안이 그렇지는 않지만 우리집은 엄청나게 심했다.)


취집은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잠시 체험하고 보니 이건 아니다.


취집도 취집 나름일진 몰라도 대부분 취직을 안해도 된다고 하면서 집안일도 하지 말라곤 안할것이다.

아마 맞벌이보다 훨씬 더 많은 가사 부담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조신하게 내조해주고 집안일하는 여자가 좋아서 그러자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돈못번다고 가사 100%전담의 취집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면,

흔히들 주부는 출근 없다고 부러워하는데 출근만 없는게 아니라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밤에 잠잘때까지 퇴근도 주말도 없는 지옥 그 자체다.


이번 사건으로 느낀건 엄마가 생각보다 너무 많은 일을 당연하게 해왔다는게 가슴이 아플뿐이다.

그리고 아직도 아빠가 엄마의 소중함을 못느끼고 나로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난다.


이런 지옥같은 회사가 있다니 인턴체험 하다가 질려버렸다. 취집은...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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