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끄덕여주기
연말에 전혀 일면식도 없고 팬도 아니었던 어떤 아이돌의 자살소식을 들었다.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 사람이 죽고 나서야 여러 가지 사실들이 밝혀졌다.
사실은 밝아 보이던 그 사람은 지독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 그동안 충분한 낌새가 있었고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그 사람은 우울에 잠식당했다는 것. 이미 작성되었다던 유서까지
나는 몇 번 노래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많이 아는 것도 아니었지만 가사들이 공감이 되는 게 많았고 위로가 많았기에
나중에서야 그 위로가 어쩌면 자기한테 한 얘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호소하는 걸로 들렸다.
나 너무 힘들다고. 지금 고통받고 있다고. 어떻게 좀 해달라고.
가사 하나하나 유서 하나하나에 그렇게 고통을 토해내는 게 느껴졌다.
아이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본인이 추구했던 음악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팬이 아니었기에 죽고 나서야 이런 사람이었구나를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가지고 있을 때는 가치를 모른다.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는 죽음.
혹은 내 가까운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죽음.
지금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지만 한동안 우울에 빠졌을 때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그때는 무언가를 시도해서 내가 죽고 싶다는 생각이라기보단
무기력에 빠져서 그냥 더 이상 아침에 눈뜨지 않아도 좋아 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후에 알았지만 우울증이 마냥 우울한 게 아니라 엄청난 무기력도 증상이라고 한다.)
참 무감각하다고 느꼈다.
어떤 말을 듣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도 짐작도 해봤다.
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사람들은 남의 불행을 좀처럼 인정해주질 않는다.
내가 힘들다 라고 하면
너보다 더 힘든 사람 얘기를 하고 더 힘든 자기 얘기를 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니가 나보다 더 힘들다고 내가 안 힘든 건 아니야.
감정을 그렇게 상대 평가하지 말아줘.
그때 나한테 필요한 건 그래 나도 힘들어 다 힘들지 뭐
이런 말이 아니라 그래 힘들었겠구나. 고생했지?
그냥 그대로의 인정이었다.
이 사람의 죽음 이후로 수많은 원인을 추측하는 글과 기사가 쏟아져내렸다.
돈 많고 큰 회사의 젊은 나이에 유명해진 사람이 왜 죽느냐 왜 우울증에 걸렸느냐
사실 우울증은 엄청 큰 이유가 아니라도 올 수가 있다.
사람의 멘탈은 절댓값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한테는 담담한 일이 누군가한테는 날카로운 상처로 다가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남의 아픔을 추정해서 예민종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내가 50을 참을 수 있다고 타인에게 넌 왜 20도 못 참냐고 타박해서는 안돼기 때문이다.
감정은 언제나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감히 그 사람이 되지 않고서 그 기분을 100% 이해하는 것은
나를 낳아준 부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타인은 나를 100% 이해할 수 없고
나 역시 그러하다.
요즘 주위를 보면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게 보인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인정해주는 것
이것들이 너무 절실한 사람이 많고
그럴만한 여유가 서로 없다는 것이 슬프지만 명확한 사실.
정말 별거 아닌 거 같고 이게 뭐야 싶겠지만
가족끼리도, 친구끼리도 생각보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건 어느 순간 내게 너무 필요했던 것들이었다.
멋진 위로의 말을 해주지 않더라도 그냥 듣고 나를 인정해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는 정말로 필요로 하는 무언가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