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네살차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ima Feb 26. 2018

공감능력

남자 친구와 가장 많이 싸운 이유 중 하나는 '지나친 공감능력 결여'였다.


나는 오랫동안 여자들이 많은 집단에서 생활하며 여자 사람 친구가 매우 많고 그들의 언어에 익숙해져 있었고 매우 일반적인 반응을 기대하는데 남자 친구의 반응은 뜨악스럽기 그지없었다.

왜 때문에 여자 친구인 나한테 이렇게 남처럼 구는 거지? 왜 이렇게 차갑게 말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나는 뭐뭐 때문에 너무 힘들다.라고 말했을 때

내가 원한 건 솔로몬의 판결이 아니었는데

남자 친구는 아주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말해줬다.

이러이러하게 해야겠다.라고 간결하게 답이 나왔다.

나는 그게 서운했다.

어쩌면 나는 남자 친구에 나를 너무 많이 이입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느끼는 걸 너도 느껴줬으면 했고 이해해주길 바랐는데 남자 친구의 이런 식의 대답은

마치 제삼자의 입장에서 떼어놓고 나를 평가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원한 건 오구오구였다.

나도 내가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결국 내 일은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데

내가 원하는 건 그 사람이 내편이라는 확신, 나를 품어주는 다정함에 기대고 싶었던 거다.


물론 남자 친구의 입장에선 그런 게 무슨 해결책이 되냐 현실적인 조언이 해보고 싶었던 거다.

어차피 그럴 거면 나한테 왜 말했냐 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은 든다.


그러나 나는 답정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걸 해주기를 원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걸 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 다른 예로 내가 회사에 다니면서 힘들다, 어려운 일이 있었다고 하면

남자 친구는 공정하게 평가해서 회사라는 건 다 그런 거지, 음 그건 네가 이랬기 때문에 그 사람이 이런 거지 라는 식의 시시비비를 가렸고 불난 나에게 기름통을 투척한 결과를 불러일으켜서 남자 친구에게도 화가 옮겨갔다.


가끔 내가 필요할 때는 먼저 객관적으로 어떤 거 같아? 봐줘

라고 내가 묻지 않으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남자 친구는 계속해서 공정 왕처럼 굴었고

나는 기분이 상했다.


뭐야 그럼 어쩌라는 거지?

싶을까 봐 대놓고도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오구오구고 그냥 듣고 그렇겠구나만 해.

아이고 힘들었구나 나는 무조건 네 편이야.

이렇게만 해달라고 한다.


세상에 내편이 너무 없으니까, 적어도 너만큼은 내 편 좀 해달라는데

다 까먹은 건지, 구조가 그렇게 되어있는 건지 내 말은 통하지 않는다.


한 번은 너는 나를 안 좋아해. 나를 안 좋아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야.

라고 말해서 남자 친구도 화를 낸 적이 있다.


나는 좋아하면 무조건 그 사람 편이고, 객관성 같은 건 잃어버리는데

그 사람의 적은 나의 적이고 그 사람의 편은 나의 편이고 같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렇게 나를 나눠? 그게 너무 서운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다.


이건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답을 알려줘도 그 길로 가지 않는다.

그의 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 같고 여전히 공감능력은 어렵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그 언젠가는 가능한 건지

아니면 서로에게 포기해야 하는 영역인지 정말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청첩장의 씁쓸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