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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끽 Jul 31. 2021

회사 내선 번호가 대표번호와 비슷하면,

회사 내선 번호가 대표번호와 비슷하면,



금요일 저녁 11시 32분, 퇴근 후 늘어지게 유튜브 웹툰 보고 놀다가 빨래는 널고 자야지 했던 그 시각. 전화가 왔다. 그것도 모르는 휴대폰 번호가.

이 시간에 뭐지…? 그래도 02로 시작하는 스팸은 아닌 것 같은데… 아직도 밖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이 배터리가 떨어져서 다른사람폰으로 전화하나? 이런 생각도 잠깐 들며 일단 받았다.



그래도 모르니까 먼저 말은 하지 않는다. 수화기 너머도 1초의 정적, 그리고 들리는 소리.

“저… 저기…”

웬 젊은 여자 목소리. 완전히 모르는 사람. 나는 평소보다 훨씬 낮은 목소리 더 건조한 말로 조심스레 물었다.

“누구세요?”

“저 혹시 ㅇㅇㅇ회사 아닌가요? 저, 제가.. 헉, 근데 이거 핸드폰으로 연결된 거예요?”



나는 순전히 내 편의를 위해서(?) 회사 전화를 내 휴대폰과 연동해놨다. 누가 시킨 건 아닌데, 어차피 회사 전화를 못 받으면 일정이 지연되거나 문제해결이 늦어져서 나중에 나만 고생이니까. 사무실에서 5~6번 울리고 나면 핸드폰으로 그 전화가 넘어왔다.

순간 머릿속을 스캔해서 내 회사번호를 이 시간에 전화할 만한 사람을 검색한다. 회사 내부 사람을 아니다. 우리 회사는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이니 정말 급한 일이면 야밤에도 전화가 오는데, 바로 용건만 말한다. (거의 없긴 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니다. 그럼 혹시 포워더(계약 화물운송업체)인가? 그렇게 급한 건이 있었나…?



“네, 괜찮습니다. 얘기하세요.” 내 목소리는 아직도 -3도 정도로 낮다.

“아 저… 제가 회사 대표번호로 했는데요, 안 받아서 다른 번호들을 순서대로 눌러보고 있었었어요. 받으시네요. 아 근대 핸드폰이라 어떡해…”

“전 괜찮아요. 무슨 일이세요?”

“저… 남편이 오늘 10시에 퇴근한다고 했는데, 연락이 안 돼서요. 그래서…”



아, 뭔가 횡설수설 급해 보였던 게 이유가 있었구나.

“생산라인에서는 전화가 안 되니 못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남편분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ㅇㅇㅇ이요.”



아, 예~전에 아주 잠깐 스치며 인사한 적 있는 사람이었다. 일은 같이 안 했던 거 같고. 동기랑 같은 부서라 신입사원일 때 다 같이 술도 마셨던 것 같은데… 그때 나한테 좀 대시하지 않았나…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네. 이 아저씨 결혼했다더니 부인은 이런 사람이구나… 아니 각설하고.



“AA 공정이요. 그거 담당이에요.”

“아, 그러면 제가 그 공정 라인 전화번호를 찾아서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그녀에게서 몇 번의 비슷한 말을 더 들었다. 원래는 회사 대표번호로 했는데, 아무도 안 받아서 여기저기 눌러보고 있었다고. 휴대폰으로 연결될지 몰랐다고.

나는 뭐, 내가 그 남편분과 친한 것도 아니고, 이 전화한 아내분에게는 남편과 연결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별 대꾸나 위안의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컴퓨터를 켰다.

생산라인 전화번호를 다 기억하는 건 아니니까, 메일 여기저기를 찾아서 그녀에게 문자로 보내줬다. 휴우.... 꼭 연락되어야 할 텐데. 그러면서도 머릿속에 이분이 좀 전과 똑같이 정신없이 당황해서 라인에 전화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남편이 걱정은 되는데, 또 회사 사람들에게 민폐는 할 수 없고,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안달 난 그 심정.





사실, 대표번호와 내 내선 번호가 비슷해서 전화 받은 게 이번 한 번이 아니다.

회사가 이사하면서 우리 부서에 몇 번부터 몇 번까지의 번호가 주어졌는데, 나는 또 라임 맞추길 좋아하는 사람이니 눈이 확 띄는 3113을 골랐다. 얼마나 리드믹한 번호인가. 내가 내 걸 쓸 일은 없지만, 그냥 기분 좋아지는 라임이랄까. ㅎ

몇 개월이 흘러 잘못 걸린 전화를 받고 우리 회사 대표번호가 3114라는걸 알게 됐다. 아니… 대표번호면 뭔가 좀 더 임팩트 있는 번호여야 하지 않나. 0001이거나 3333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더 의미 있는 그런 번호. 어째 라임도 없고 순번도 한참 뒤인 이 번호가 대표번호가 됐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무튼 많이는 아니고 몇 번의 잘못된 전화를 받았는데, 처음엔 당황스럽다가도 나중에 좀 재미있기도 했다. 이런 신기한 사람들이 전화를 거는구나~하면서. 물론 보통 인사하거나 용건을 꺼낼 때쯤 바로 대표번호나 담당자에게 넘겨주었지만…



한번은 강남의 무슨 부동산 기업인데, 회사부지 매매 때문에 전화가 왔었다.

아, 우리 회사의 모 지사를 내놨다는 소식을 듣긴 했는데, 진짜로 내놨나 보네~~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리고 이걸 대표전화 = 안내직원에게 알려줘도 안내직원도 담당자를 누구로 해야 할지 모를 것 같았다. 그래서 어쩌다가 그 부동산 기업의 자기소개를 좀 더 들었고, 누구에게 전화를 돌리면 될지 고민을 했다. 이런 건 총무팀일까? 아니 돈 관련된 거니 재경이지 않을까 하면서… 부장님께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다가 옆자리 부장님께 물어보고 총무팀에게 넘겼다. 뭔가 회사의 고급 정보를 알게 된 듯하여 나랑은 관련 없지만 왠지 뿌듯해하면서ㅎㅎ



무튼,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과 스타벅스 쿠폰이 왔다. 남편과 연락이 되었다고. 남편은 라인에 있었다고. 밤늦게 너무 죄송하다고.

아…!

그제야 그녀가 얼마나 마음 졸이며 남편을 기다리고, 또 전화가 안 돼서 답답하고, 걱정되었을지, 그 마음이 내게 전달됐다. 나는 왜 그렇게 퉁명하게 받았을까? 자려고 누운 시점도 아니었는데, 오죽하면 회사 여기저기에 전화했을까? 나는 왜 안심하라는 그 말 한마디를 못 했었을까?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제야 나도 이모티콘으로 다행이라고 푹 쉬시라는 말을 전했다.

이 야밤에 일하는 남편과 기다리는 아내. 그러고 보니 우리 남편도 지금 밖에서 일하는 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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