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고 웃으며, 나를 만난 시간
"○○이만 상담 다닐 게 아니라 언니도 상담을 좀 받아보면 어때?
그동안 엄청 힘들었잖아. 우선 언니가 스트레스가 없어야 아이들도 잘 돌보지."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우리 형편에 어떻게 나까지 상담을 받아. 시간도 없고..."
"아는 스님께서 대학원 수업 같이 듣는 분 중에 좋은 상담 선생님이 계신다고 하시네.
집에서 멀지 않아서 다니기도 수월하고... 이참에 해봐. 응?"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출가한 여동생이 꼭 엄마 같았다.
친정아빠와의 불화로 속앓이를 할 때, 아이들 문제로 속상할 때도
스님은 한결같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
망설임 끝에, 나만을 위한 생애 첫 단독 상담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아들의 상담은 일주일에 한 번, 50분 동안 진행되었다.
형식적인 부모 상담은 그중 고작 10분뿐이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상담은 시간이 곧 돈이었다.
매번 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이 지루한 상담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
과연 나아지기는 할까?'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사실 스님의 권유로 마지못해 하겠다고는 했지만,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하기 전,
우리 집 근처 카페에서 상담 선생님과 먼저 만났다.
초면이었지만 왠지 어색하지 않았다.
선생님 질문에 허심탄회하게 답하다 보니,
어느새 네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와 주신 것도 고마운데,
식사 비용까지 지불하셨다.
그렇게 첫 번째 상담 선생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이들 4학년 겨울 방학 무렵부터,
매주 토요일 오전마다 상담을 받았다.
그 시간 동안 남매둥이는 사이좋게 외발자전거를 배웠다.
아들은 1학년 때부터 요리, 만들기, 농구, 축구, 수영 등 다양한 방과 후 활동을 했다.
하지만 딱히 흥미를 갖지 못하거나 친구들과의 다툼으로
중간에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 동생과 함께 하는 외발자전거 수업만큼은 무척 좋아했다.
덕분에 나는 마음 편하게 상담을 다닐 수 있었다.
센터는 집에서 차로 왕복 30분 정도 거리였다.
무엇보다 집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오롯이 혼자가 되어 본 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
따끈따끈한 시트에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센터로 향하는 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조차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갓 오픈한 상담 센터의 첫 번째 내담자였다.
센터는 대단지 아파트 상가 2층에 있었고,
바로 옆에는 가게 밖까지 옷이 즐비한 세탁소가 있었다.
문 위에는 여전히 '마드리드 기타 교습소'라는 낡은 간판이 남아 있었다.
기타 소리로 가득했을 공간에서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선생님과 마주 앉아있으니
느낌이 참 묘했다.
상담 시간은 1시간이었지만,
선생님은 항상 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오히려 내가 시간을 확인해 드릴 정도였다.
그렇다고 상담료를 더 받으시는 것도 아니었다.
한 번 이야기가 시작되면 좀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가족, 성장과정, 결혼, 엄마의 죽음, 육아, 이혼, 직장, 트라우마, 인간관계...
심지어 사회 전반에 걸쳐 끝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울컥해서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되었다가
또 금세 숨이 넘어가듯 웃었다.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듯
작은 상담실 안에서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사실 처음 ○○님 만나 뵙고 참 의아했어요.
보통 상담실 찾으시는 분들은 얼굴에 힘듦이 다 드러나거든요.
그런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어서요.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네요."
선생님은 나의 밝은 에너지를 높이 평가해 주셨다.
자격지심, 자책, 자괴감에 휩싸여 안팎으로 위축돼 있던 나에게
진심 어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늘 몸 둘 바를 몰랐다.
집으로 돌아가면 연기처럼 사라질지라도,
상담실을 나서는 순간만큼은
자존감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마치 인생 2막이 금방이라도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았다.
실질적으로 문제는 해결된 것이 거의 없었다.
삶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 없이 혼자 외출하는
달콤한 자유로움에
나는 더없이 행복했다.
그 시간만큼은,
엄마나 딸,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닌
본래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상담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전 남편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잠시 충전되었던 자신감은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 시절,
삶은 유독 나에게만 가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