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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욱 Jan 15. 2023

미래의 요리 삼대를 꿈꾸며

 음식은 사람의 기억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음식의 향과 맛, 다채로운 색채와 음식의 따스함, 시원함, 다양한 식감을 통해 주는 오감의 인상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음식이 주는 가장 강렬한 기억은 음식이 주는 행복한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할머니의 음식에 대한 추억이 있다. 명절에 본가로 내려갈 때면 할머니는 조기 나 병어 같은 생선을 구워 주셨다. 다른 집은 갈비찜이나 잡채 같은 잔치 음식 을 먹는다고 하는데, 난 그 생선구이가 너무 맛있었다. 어머니가 어렸을 적에 할머니는 식당을 하셨다고 한다. 우리 외갓집은 전라도에 있어서 음식 솜씨도 좋았다고 전해 들었다. 특히 주로 해산물 위주의 음식을 많이 해주셨다. 감태, 새조개와 같이 흔하지 않은 식재료들을 많이 먹어봤다. 평범해 보이는 생선구이 도 할머니의 특별한 요리 솜씨가 발휘된 음식이다. 할머니 표 생선구이는 생선 을 한번 쪄서 부드럽게 만들고 겉면을 바싹하게 굽는 창조적인 방식을 사용했 다. 그래서 나는 그 살이 단단하고 질긴 병어가 부드러운 생선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떠나 한정식집에 갔는데, 그때 먹은 병어는 너무 퍽퍽하고 질긴 생선이라 충격을 받은 기억이있다. 그래서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생선구이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기억이 남아있는 음식이다. 병어구이는 먼 저 싱싱한 병어를 시장에서구한다. 그다음에는 농약을 치지 않은 볏짚에 병어 를 넣어 하루 동안 건조한다. 그래서 열을 가해도 살이 부서지지 않는다. 잘 마른 병어는먼저 찜기에 넣고 30분 정도 찐다. 이후 병어가 속까지 잘 익으면 오 븐에 넣고 겉이 바삭해질 때까지 굽는다. 그렇게 하면 기름기가 쏙 빠져서 담백 하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병어구이가 완성된다. 

 우리 가족의 유전자에 각인된 할머니의 음식 솜씨는 우리 어머니가 가져가셨다. 우리 엄마는 4녀 1남 중 셋째 딸인데, 다섯 남매 중에서 유일하게 명 절 음식을 책임졌다. 막내인 외삼촌이 결혼하지 않아 며느리가 없는 우리 집에 서 딸들, 그중에서도 우리 엄마는 명절 음식을 도맡아 하셨다. 우리 어머니의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양념게장이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우리 집안 식구들에게 게장은 특별한 음식이다. 어머니는 명절 음식을 준비하실 때 전과 나물, 게장을 준비하셨다. 전이랑 나물은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만들었지만, 게장 만큼은 어머니가 맡아서 하셨다. 어머니 표 양념게장은 싱싱한 꽃게를 사 와 냉 동하고 양념에 버무리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는 우리 가족 중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념게장은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외갓집 식구들 이 모두 좋아하는 음식이다. 개장할 때는 싱싱한 수꽃게를 사 냉동한다. 냉동해 야만 쉽게 살을 발라 먹을 수 있다. 반나절 냉동한 꽃게는 고춧가루와 액젓, 설탕과 간장을 넣은 양념으로 버무리고 쪽파를 썰어 넣는다. 냉장고에 이틀간 숙성하면 맛있는 양념게장이 완성된다. 

이 두 분의 요리를 먹고 자란 나 역시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처음 요리를 하며 느낀 감정은 성취감이었다. 계란후라이, 라면처럼 쉽고 간단한 음 식일지라도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꼈다. 그 다음에 음 식을 하면서는 뿌듯함을 느꼈다. 한번은 제육볶음을 만들어둔 적이 있는데 다 음날 되니 가족들이 모두 홀랑 먹어버렸다. 처음에는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보다는 내가 한 요리를 가족들이 맛있게 먹었다는 뿌듯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제육볶음이다. 정육점에 가서 신선한 전지를 사고, 양파와 대파를 썰어 넣은 뒤 갖은양념으로 간한다. 하루 정도 재 위 놓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고기를 두 근 정도 사서 양념해놓으면 가족들이 일주일은 든든하게 먹는다. 

 지난겨울 외할머니께서는 긴 암 투병 생활 끝에 돌아가셨다. 공교롭게도 가족 들이 모두 모인 설날 다음날 돌아가셔서 우리 가족은 모두 할머니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사흘간 장례를 치렀다. 이미 외할아버지 장례를 치러본 우리 가족은 각자 무엇을 해야할지 알고 있었고 자신의 자리 를 지켰다. 나와 어머니는 장례에 필요한 음식을 맡았다. 어머니는 장례식장에 필요한 음식을 고르고 주문하였고, 나는 손님들이 오면 음식상을 차리고 정리 하였다. 그렇게 정신없는 사흘이 지나가고 일 년이 흘렀다. 

 할머니의 빈자리는 여전했지만, 우린 조금 더 단단하게 뭉쳤다. 명절에만 모이 지 않고, 시간이 될 때면 할머니가 살던 평택 집으로 모였다. 다들 바쁜 일상 을 모이지만 시간을 내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가족끼리 음식을 먹으며 TV를 보는 평범한 일상이 이제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할머니의 빈 자리는 가족의 사랑으로 채워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에게 요리는 가족이다. 내가 하는 요리에는 가족으로부터 배운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할머니, 어머니 나까지 3대가 함께한 요리에는 가족의 행복 이 있다. 훗날 나도 나의 가정이 생긴다면 어머니와 나, 자식까지 3대가 함께 요리하여 그 행복을 이어 나가고 싶다. 



 위 글은 지난22년도 상반기 모 기업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수상한 원고이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내게 음악은 삶의 일부이다. 내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다. 작게는 우리 가족, 넓게는 동아리 친구들처럼 우리집에 와서 내 음식을 먹으면 그 사람은 그순간부터 내 사람이 된다. 위 글은 대학생인 내가  고등학생인 나를 바라보며 적은 글이다. 앞으로 적을 글은 모두 삶을 노래하는, 스스로의 흔적이 될 지도 모른다. 어쩌면 치열하게 사는 나 개인의 발버둥일지도.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글을 쓰기 시작한 17살의 소년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글로써 이야기를 남긴다는 점이다. 아마 위 글이 좋은 상을 받게된 이유는 거창한 수식언과 화려한 수사기법이 아닌 스스로의 담담하고 진솔한 고백이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쓰는 글은 이와 비슷한 색을 가질 것이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담담한 울림을 주는. 그래서 브런치에 남기는 첫 번째 글이 위 원고인 것은 앞으로도 잔잔한 글을 적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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