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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욱 Jan 26. 2023

외할머니 이야기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은 모두 지난 설을 지났을 것이다. 가족을 만나 반가움을 나누기도 하고, 차례 음식을 차리느라 손이 부르트고, 명절 어른들의 잔소리를 듣고, 귀경길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지치기도 한, 각자 다른 모습의 명절을 지났을 것이다. 나 역시 여느 대한민국의 학생과 다를 바 없이, 명절은 그저 친척 어르신들을 보고 용돈을 받는 하나의 가족 행사에 불과했다. 바로 2년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외할머니는 재작년 설 다음날 돌아가셨다. 내가 성인이 되는 해 겨울방학,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집안 어른이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할머니의 병새를 우리 가족 모두가 알고있었고, 돌아가시기 직전 달부터 어머니가 근무하시는 요양 시설에서 머무르며 우리 모두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모든 외갓집 식구는 설에 외할머니 집에 모여 외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며 이별을 준비했다. 설이 지나고 연휴 마지막 날 집에 내려가던 도중, 어머니의 연락을 받았다. 외할머니가 숨을 거두셨다고. 집에 잠시 들러 옷가지만 챙겨 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외할머니의 장례는 그리 큰 무리없이 치루어졌다. 그 전년도에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뤘기 때문인지 우리 모두는 각자의 역할을 알고 있었고, 피곤으로 점철된 사흘을 보냈다. 사실 장례를 치루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장례식 도중에는 손님 맞이로 정신이 없어 고인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한다. 외할머니의 영정을 보면서도 우리는 외할머니를 추억하는 손님들을 맞으며 외할머니를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난 장례 마지막 날, 장지에서 할머니의 유골을 묻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까지도 우리는 그리 침울하거나 조용하지 않았다. 그저 일상적인 가족 행사를 치룬 것처럼, 사소한 말장난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 씻고 장례 기간동안 밀린 일을 처리하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가슴 한 켠에 숨겨둔 슬픔이 슬며시 올라왔다. 할머니를 정말 사랑했고, 늘 할머니의 자랑이 될 수 있도록 살고자 했다. 무엇보다 아쉬웟던건 할머니가 사랑하는 손자가 재수를 선언하며 대학 합격을 미루었기에, 할머니께 원하고자 한 대학에 간 당당한 멋진 손자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 후로 두 해가 지났고 나는 대학생이 되어 대학생의 한 해를 보냈다. 정신없고 행복했지만 마음속에는 그리움이 남았다. 이번 설 다시 외갓집에 온 식구가 모여 할머니를 기억하며 제사를 올렸다. 장남인 사촌형이 군대에 가 있기에 장례는 내가 담당했다. 전통 장례 의식을 따르며 손짓 하나, 절 하나에 외할머니를 기억하는 손자의 솔직한 마음을 담고자 했다. 

 내게 설은 가족이 만나는 행사이자 외할머니를 추억하는 자리이다. 내 외할머니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외할머니를 닮은 셋째 딸은 그 어머니의 손맛을 기억하고, 딸의 아들은 그 할머니의 손맛을 좇는다. 여러분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각자 다른 방법으로 가족을 기억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낸 행복한 설을 보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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