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온 젖소부인들

목장집아들2

by 미니맥스

젖소부인들과 나#2 83년 여름


1983년이었다. 아버지의 목장은 매일유업 상하 목장이 있는 고창군에 있었다. 때는 5공화국 전두환 정부였다.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가 새마을 사업을 진행했고 그 중 하나가 복지마을 사업이었다. 우리 마을은 복지마을 사업에 선정이 됐고, 주력분야가 낙농업이었다. 정부가 젖소를 들여와 십여 농가에 분양하고 낙농업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는 젖소가 그리 흔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나는 젖소 실물을 이전에 본적이 없었다. 삼양목장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나오는 젖소를 티비에서 흑백으로 볼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젖소 세 마리가 그 해 여름 왔다. 희고 검은 젖소. 그때 우리 집에는 아직 축사가 없어서 뒷산에 5평 남짓 울타리를 치고 임시 방목장을 만들어 소를 보관했다. 돌이켜보면, 달리 젖소를 사육하는 법을 몰라서 그냥 보관한 셈이다.


희고 검은 색깔의 젖소.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젖소는 희고 검은 얼룩 무늬의 홀스타인종이다. 이름은 독일의 홀슈타인에서 유래했고, 주 원산지는 네덜란드의 프리슈타인 지역이다. 우리 집에 온 얼룩 소들도 홀스타인 종으로 네덜란드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했다. 만화 프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젖소들이 홀스타인 종이다. 비록 흑백만화라서 색깔은 나오지 않지만. 그런데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나오는 젖소는 누런 무늬의 저지종이나 건지종이다. 영국 저지 섬에서 개량된 종으로 홀스타인 보다 산유량이 적지만 우유에 포함된 지방이 높아 치즈를 만드는데 많이 쓰인다. 홀스타인이 하루 30키로그램, 저지는 20키로그램 정도 우유를 생산한다. 그래서 홀스타인 종이 세계 어디서나 키우는 젖소 지배종이 되었고 우리 마을에도 오게됐다. 참고로 프란다스의 개는 네덜란드 아래에 있는 벨기에의 플랜더스 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시 낙농업이 발달된 지역이다.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낙농업의 선진국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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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세 마리의 젖소가 왔다. 집에서 키우던 한우와는 다르게 코뚜레도 없었고 귀에는 노란 딱지로 번호가 적혀있었다. 289, 384, 401번. 복지마을 사업에 참여한 집들은 세 마리씩 젖소를 분양 받았는데 지금 보니 각 백번대에서 한마리씩, 아파트 동 호수 추첨하듯이 추첨을 한 모양이다. 어떤 소가 당첨이 될지는 말 그대로 복불복이었다. 이는 후에 아버지 목장의 운명을 가르는 방식이 되고 말았다.


보통 젖소들이 14개월 정도가 되면 첫 임신을 하게되고 그로부터 9개월 뒤인 24개월 정도 되면 첫 출산을 한다. 당시 세 마리 모두 두 살로 첫 임신중인 상태로 한국에 분양이 된 것이다. 그런데 정확히 인공수정일이나 출산 예정일이 없어서 그냥 임신한 두살 암소들이 정보의 전부였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처음 보는 젖소가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어비지에게는 새 사업이나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자산이었다. 그때 기억으로 소를 한 마리당 200만원에 들여왔고 암송아지를 낳으면 150만원에 숫송아지를 낳으면 50만원에 팔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새로 온 젖소들이 암송아지를 낳기를 학수고대했다. 실제 그 해 겨울까지 당숙네 집은 암송아지 세 마리를 낳았고, 아래 영석이네 집은 암송아지를 쌍둥이로 낳기도 했다. 누구네 집이 암송아지를 낳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마을은 들썩였다.


뒷산 임시 방목장에서 지내던 우리 소들도 그럭저럭 지냈다. 지푸라기나 산에서 억새를 베어다 먹이로 주면서 키웠다. 돌이켜보면 더위에 약한 홀스타인 종들이 낯선 한국에서 그것도 한여름을 무사히 지낸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젖소는 독일 북부지방 홀슈타인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추위에는 매우 강하지만 더위에는 한없이 약하다.


여름이 지나고 우리 젖소 부인들도 출산의 시기가 다가왔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리 뽑기 운이 좋지는 않았던 듯하다. 골격도 크고 기대가 가장 컸던 289는 유산을 했다. 모두 실의에 빠졌다. 아랫집 당숙네는 암송아지를 낳았다는데 우리 소는 유산을 했다. 이어서 401번이 출산을 했는데 송아지를 낳다가 죽었다. 결국 사산이었다. 아버지는 많이 실망하신 눈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우리의 희망 384는 정상적으로 출산을 했다. 숫송아지였다.


그렇게 그해 겨울 젖소 농사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리 목장의 불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401번과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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