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베란다 청소를 하다가 무심코 창문틀을 봤다. 소름이 돋을 만큼 깜짝 놀랐다. 창틀을 고정하기 위해 나사못을 박은 구멍으로 벌들이 드나들고 있지 않은가. 얼른 창문을 닫고 지켜보니 나사 구멍을 입구로 삼아 창틀 안 공간에 벌들이 살고 있는지 수시로 벌들이 드나들고 있다. 자세히 보니 그 무서운 땅벌이 틀림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도 창문을 열고 지냈어도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고, 우리도 벌들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내왔는데 그냥 그대로 둘까? 아냐. 생김새로 보아서 소위 '오빠시'라고 불리는 땅벌이 분명한데 만에 하나라도 어떤 연유로 자극을 받아 공격하게 되면 어떡할 거야. 저 무서운 오빠시를 무슨 수로 당하냐고.
다른 창문을 보니까 나사를 박고 작은 플라스틱 마개로 구멍을 막아 놓았다. 공교롭게도 밖으로 난 그 나사 구멍만 마개가 없었고 그 구멍을 발견한 땅벌들은 옳거니 하며 집을 지은 것이다. 안전이 우선이라고 판단하고 구멍을 막아버리기로 했다. 안에 있는 플라스틱 마개를 하나 빼 벌들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잽싸게 구명을 막아버렸다. 그리고 안심했다. 조금 있으니 밖으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벌들은 입구가 없어진 탓에 그 근처를 맴돌다가 날아가고 다시 날아와 막혀버린 구멍 주위에 달라붙고 하는데 괜히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내가 너무 과잉 반응한 것이 아닐까? 저들은 생명이 걸려있는데. 아무리 미물이라도 얼마나 마음이 아플 것인가. 졸지에 집이 없어진 이 황당함을 저것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갔다가 돌아오니 집이 없어졌다면 나는 어떠했을까.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저녁 무렵 궁금해서 뒤 베란다로 가서 창문을 바라보다 몸이 굳어 버렸다. 내가 입구를 막아버렸기 때문에 집을 찾아온 벌들이 주위에 몰려 있는 것이었다. 벌들은 어떻게든 집으로 들어가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낮에만 해도 한 마리도 없길래 다른 곳으로 가버린 줄 알았는데 저녁이 되니까 모두 몰려와서 이렇게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이다. 저 구멍 안에는 집안에 갇힌 채 꼼짝도 못 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저들은 나를 공격하지도 않았고 조금도 위협하지 않았는데 내가 힘으로 저들의 보금자리를 파괴해 버린 것이다. 마음이 아팠다.
백석 시인의 시 '수라修羅'가 떠올랐다.
수라修羅
백석
거미 새끼 하나 땅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하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만 한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작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어물거린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아무 생각 없이 방에 들어온 작은 거미를 쓸어 내 버린 시인은 한 가족을 해체시켜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인은 마음이 아프다. 그 어린것을 어떻게든 달래 보려고 손을 뻗어보기도 하지만 어린 거미는 무서워 달아나버리고 시인은 서러움에 빠진다. 작은 거미를 정성껏 내보내며 엄마와 형제들과 만나기를 바라는 시인은 얼마나 슬펐을까.
젊음이 피 끓던 대학생 시절, 늘 가방에 넣어 다니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 등장하는 ‘난장이’ 가족들의 무표정한 얼글들이 하나씩 하나씩 내 앞에 나타났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분노했다. 철거반원들이 내리치는 망치 앞에서 꿋꿋하게 밥을 먹고 있는 ‘난장이’ 가족들을 향해 울분의 핏대를 세웠다. ‘병신 같은 놈들’. 나는 그렇게 그들 앞에 욕을 뱉었다. 그들은 사람이기는 할까. 숨을 쉬고 밥을 먹는 사람이 맞는 걸까.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집을 쳐부수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달라붙어 집을 쳐부수었다. 어머니는 돌아앉아 무너지는 소리만 들었다. 북쪽 벽을 치자 지붕이 내려앉았다. 지붕이 내려앉을 때 먼지가 올랐다. 뒤로 물러섰던 사람들이 나머지 멱에 달라붙었다. 아주 쉽게 끝났다.
나는, 어느 순간 벌들의 집을 아주 쉽게 무너뜨려버린 나는 난장이 ‘김불이’의 집을 무너뜨린 철거반원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암상스레 경멸하여 오는 힘을 가진 자가 바로 나였다. 집을 부수는데도 저항하지 못하는 ‘난장이’ 가족들에게 욕을 했던 내가 망치를 들고 집을 부순 힘을 가진 자였다. ‘난장이’ 가족에게 쥐뿔이나 욕할 자격이 없는.
나는 벌이 무서워 손을 내밀기는커녕 창문도 못 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부끄럽게도 백석 시인의 서러움과 슬픈 마음을 흉내 내고 있었다.
나는 막아두었던 플라스틱 마개를 빼버렸다. 그러나 벌들은 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벌들은 오지 않았다. 나는 창틀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