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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Nov 28. 2023

5화 다음날은 아무렇지도 않게 몸빼바지 입고 나갔지?

       

며칠 쏟아지던 폭우는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술집 여자는 아침부터 허리를 펼 새도 없이 바빴다. 남편의 침대를 정리하고 홑이불이며, 베갯잇을 빨아 널었다. 침대 밑을 쓸고 닦았다. 창문도 활짝 열어 환기하고 머리맡에 있는 책도 가지런히 꽂았다. 텔레비전 주변도 깔끔하게 정리해 두었다. 누가 와서 봐도 환자의 방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치우고 닦았다.      

침대에 누워서만 살아야 할 것이라고 염려했지만, 하늘이 도운 것인지 남편은 휠체어를 이용하여 스스로 이동하며 웬만한 집안일은 다했다. 실내뿐만 아니라, 현관에서 마당으로 나갈 수 있도록 계단을 없애고 경사로를 만들어 놓아서 남편 혼자서도 마당을 돌아다니며 심호흡을 하기도 했다. 닭이나 개들의 밥도 다 챙겨 주었다.      

비 오는 날은 허리의 통증이 심했다. 그래서 비오는 날은 침대에 누워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짐승들 배를 곯리지는 않았다. 짐승 우리로 가는 길은 휠체어가 빠지지 않도록 시멘트 포장을 해 두었기 때문이다.       

술집 여자는 그저 감지덕지하다. 처녀때부터 그렇게 좋아했던 비오는 날은 남편의 허리 통증을 걱정하는 날이 되었지만, 그래도 남편이 힘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주는 것에 늘 감사했다. 새벽에 일어나면 그녀는 늘 기도한다.      

’오늘도 하루를 열심히 살겠습니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남편과 함께 남은 삶을 더 돈독하게 살 수 있도록 저의 모든 것을 다하겠습니다. 오늘 식당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식탁을 차려내도록 노력하겠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양심을 팔지는 않겠습니다. 미국에 있는 아들도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탄받지 않는 일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점심 장사에 국밥 사십여 그릇을 팔았다. 혼자서 하는 일이라 그보다 손님이 많아도 힘들 텐데 꼭 혼자 감당할 만큼만 손님들이 찾아 주어 좋았다. 설거지를 다하고 탁자를 깨끗이 닦았다. 손님들이 신발을 벗고 들어오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장판을 깔아놓은 바닥도 걸레를 몇 번씩 빨아가며 닦고 또 닦았다.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다. 

“좀 쉬면서 해”

“그럼, 브레이크 타임이라 다리 쭉 뻗고 쉬고 있지.”

“당신이야말로 항상 조심해.”

“걱정 붙들어 매시고 당신이나 쉬면서 일해.”     

저녁 무렵, 기어이 비가 내렸다. 비 때문인지 골목에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딱 끊어졌다. 저녁 장사는 접고 일찍 들어가서 남편이 좋아하는 오리 주물럭이나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리저리 20만 원은 넘게 벌었다. 이렇게만 번다면 금방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남편과 고기 구워 먹으라는 하늘의 배려라고 받아들였다. 콧노래가 나왔다. 

’내가 콧노래를 부를 때도 있는 거구나.‘     

서둘러 문을 닫고 시장에 있는 ‘대왕 오리구이’로 갔다. 시장에서 만나 언니 동생을 하며 지내고 있는 사이이다. 

“언니 어서 와. 오늘 일찍 문 닫았어? 나도 오늘 장사는 종치려고 했는데.”

“비도 오고. 손님도 없고. 일찍 가서 형부랑 오리 주물럭이나 먹으려고. 좀 싸줘.”

“언니, 그러지 말고 나랑 딱 한 잔만 하고 가라. 응? 주물럭은 내가 그냥 싸줄게.”     

수정이는 소주를 따르기도 전에 푸념부터 늘어놓았다. 

“언니, 나 오늘 정말 쪽팔려 죽는 줄 알았네.”

“장사 하루 이틀 하냐. 쪽팔려 죽게.”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난 줄 알아? 바로 그 남자였어. 내가 가난하다고 차버린 첫사랑. 나를 붙들고 같이 살자고 애원하던 그 눈빛을 내가 어찌 잊었겠어.”     

점심 장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남자 셋이 들어왔다. 탁자로 안내하고 주문을 받으려고 하는데, 가슴이 쿵쾅거리며 심장이 바르르 떨렸다. 원호 씨였다. 애원하던 남자. 첫사랑. 고개를 숙이고 피하려는데 

“어? 너 수정이 아냐?”

수정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밀어내버린 남자 앞에서 몸빼바지를 입고 서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언니, 나 어떡하믄 좋아. 지금 생각해도 쪽팔려 죽겠어.”

“쪽팔려? 쪽팔려야지. 야, 쪽팔리는 거는 쪽팔리는 거고. 일단 술이나 한잔 마셔. 환갑도 훨씬 넘은 늙은이가 뭐가 쪽팔려. 쪽팔릴 일도 많다 많어.”

술집 여자는 수정을 다독거렸다. 수정의 등짝에 쌓인 세월 두께가 참 두껍고, 그만큼 무겁다는 생각을 했다. 한이 맺히고, 눈물이 다져진 수정의 등짝 못지않은 자신의 마음을 쓰다듬었다.      

남편은 병원에서 꼬박 2년 동안 누워 있었다. 허리에 철심을 세 번이나 박았다. 한 번에 박을 수 없어 시간이 지나면 하나 박고, 시간이 지나면 또 하나 박았다. 철심을 박는 것은 상반신이나마 알탕갈탕 일으켜 세울 수 있기를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다행히 남편은 잘 버텨주었고, 휠체어에 의지하여 지낼 수 있었다. 


허리도 허리지만, 입이 더 무서웠다. 먹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꽃집을 다시 해보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주위에서 음식 솜씨가 있으니 식당을 열어보라고 했다. 술을 팔지 않는 식당. 그야말로 밥집을 열었다.      

“수정아, 내가 처음에 밥집을 열었을 때, 정말 먹고 살기 위해서 밥집을 열었는데, 어떤 옷을 입어야 할 줄 모르겠는 거야. 그렇다고 꽃집 때처럼 입을 수는 없잖아. ‘몸빼바지’를 입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을 입고 사람들 앞에 나설 수가 없는 거야. 쪽팔린다는 생각이 앞섰지. 누워 있는 남편에게 말했지. ‘여보, 나 오늘부터 밥집을 하는데, 몸빼바지를 입어야 하는데, 자신이 없어’ 이렇게 말하는데 남편에게도 쪽팔리더라니까. 남편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더라고.”

“형부 생각에는 언니가 안타까워서 그랬겠지.”

“첫날은 어떻게 보냈는지도 몰라. 그래도 국밥 몇 그릇 팔았는데 허둥대느라 내가 몸빼바지를 입었는지 원피스를 입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더라고.”

“언니 다음날은 아무렇지도 않게 몸빼바지 입고 나갔지?”

수정이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나도 내일은 그럴 거야. 원호씨는 원호씨 삶을 사는 거고, 나는 나대로 사는 거잖아. 언니 얼른 가서 형부랑 저녁 맛나게 먹어.”

수정이가 오리 주물럭을 싼 봉지를 내밀었다.      

술집 여자는 집으로 가는 버스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스쳐 가는 많은 군상群像 속에 가냘픈 한 여인이 걸어가고 있었다. 몸빼바지를 입은 그녀는 밥집 여자에서 술집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들을 가르쳐야 하고, 남편의 병원비도 감당해야 하는데 손에 들고 있는 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빼바지 입고 사는 년이 술을 파는 것이 어떠냐며 자신을 다독였다. 술을 파는 것이나 밥을 파는 것이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그날 처음으로 밥집을 열고 몸빼바지를 입고 나서던 날의 그 부끄럽고 두려웠던 마음만큼은 꼭꼭 싸매어 가슴에 품고 살았다. 술집 여자에서 밥집 여자 사이를 오가는 그녀는 여전히 남편의 휠체어를 밀고 있는 꽃집 여자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엄마이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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