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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Mar 30. 2024

8화 그래도 나는 기다리고 있다

저들의 부활을

사진출처  pixabay





눈앞이 흐릿해진다. 곧게 뻗어나가야 할 시선이 엿가락처럼 휘늘어진다. 힘이 빠지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목이 마르다.”     


손과 발에 대못을 박았던 무자비한 병사의 얼굴도 자꾸만 희미해진다. 옆구리를 찔렀던 저 뾰족한 창끝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당신 스스로 구해보라’고 비웃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조롱했다. 그들의 소리는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대제사장들은 율법학자들과 함께 비아냥거렸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여,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라. 그러면 우리가 보고 믿겠다.’ 무지몽매한 그들이 불쌍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왼쪽에 매달린 강도가 참 뇌꼴스럽게 호비작거리며 놀렸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네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여라.”

오른쪽에 매달린 강도가 내가 말하기도 전에 그를 꾸짖었다.

“너도 같은 벌을 받았으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마땅한 벌을 받는 것이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을 행한 적이 없으시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힘이 빠지고 죽음의 그림자가 거의 덮고 있었지만, 그는 포실하고 푼푼하게 보였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모습 그대로였다. 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다. 빈 손으로 가시밭길을 걸었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채찍을 맞으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온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솓뜨려졌는지 힘이 돋았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함함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안아주며 말했다. 그의 몸은 찢겼으나 따스했고, 오달졌다.     


머리에 씌워 놓은 가시면류관은 사정없이 이마를 찔러댄다. 손과 발에 박힌 대못보다 더 아프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는 눈으로 파고들었고, 눈으로 흘러든 핏물은 세상을 붉게 물들였다. 내가 건져내고자 했던 세상. 손을 뻗어 구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모두 내 피에 젖어갔다.


엉겁결에 내 십자가를 짊어졌던 시몬은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군중 틈에 숨어 있었다. 골고다 언덕을 올라올 때 나는 그에게 말해줬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억울해하지 말아라. 훗날 너는 나를 증거할 것이다.’  


저기 아리마대 요셉이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안다. 그가 내가 죽고 난 후 내 시신을 받아 장사를 지내려 한다는 것을.

나를 죽이려고 일사천리로 진행된 재판에서 모든 사람들과 달리 내가 죄가 없다고 말한 요셉.

나름 성공한 사람으로 나를 따르다가 가진 것을 다 잃을 수도 있거늘, 이곳까지 따라와 무덤까지 준비해 놓은 요셉.

내가 부활한 후에 너는 내 시신을 훔쳤다는 죄몫으로 오랜 감옥생활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를 잊지 않고 구해내리라.

세상 사람들이 요셉과 같이 악한  무리, 권력을 가진 자들에 휩쓸리지 말고, 정의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내가 가르쳤거늘. 하나님 어찌해야 좋을까요.


나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울고 있다. 그래도 이곳까지 따라와 먼발치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베드로야, 울음을 그치어라. 네가 나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일은 너를 통하여 세상을 가르치려고 내가 계획한 일이다. 내가 너를 그렇게 사용한 것이다. 너는 나처럼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 너의 죽음은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넓혀낼 것이다. 힘을 잃지 말아라. 나의 베드로야.’      


‘…… 다 이루었다.’       


저 아래에서 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발을 구르고 있는 저들은 나를 잊을 것이다. 며칠은 가슴을 쓸어내리겠지만 이내 세상의 환락에 빠져들 것이다. 저들은 탐욕할 것이고, 그로 인해 반목질시할 것이다. 누군가는 구원이라는 명목 아래 나를 팔기도 할 것이다. 그들은 복을 말할 것이고, 천국을 내세울 것이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

  누가 네 뺨을 치거든 다른 뺨도 돌려 대라.

  달라는 사람 누구에게든지 네가 가진 것을 주어라.

  비난하지 마라.

                                    (눅 6 : 27 – 38)


내가 온몸으로 말했던 것들을 저들은 따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 내가 만든 사람의 몸으로, 내가 만든 이 땅에 내려왔다. 그동안 많은 비유를 들어 많은 것을 가르쳤다. 저들은 내가 들었던 비유를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천국을 잘못 받아들일 것이고, 구원의 참된 의미를 모를 것이다. 내가 십자가에서 이렇게 죽는 본질적인 이유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나의 부활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저들은 답답할 때마다 기도할 것이다. 부족할 때마다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 이루어 주십시오. 복을 내려 주십시오. 하나님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소리쳐 기도할 때마다 나는 말할 것이다.      


‘내가 죽음으로 가르친 것들을 너희 스스로 실천하라. 그러면 천국이 열릴 것이고, 내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내가 가르친 것들을 스스로 실천할 때, 나는 그때 너희 앞에 부활할 것이다. 구원은, 천국은 기도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두드린다고 무조건 열리는 것이 아니다. 너희 가슴을 후벼 파며 기도하고, 나의 가르침을 깨달아 실천할 때, 너희는 구원을 받을 것이고, 거기가 바로 천국이며, 그때 나는 너희들 옆에 있을 것이다.’     


나는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가지 않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것이다. 저들의 말대로 십자가에서 내려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면, 불을 뿜어 나의 능력을 내보이면, 물을 쏟아  세상을 징벌하면 저들은 머리를 땅에 박고 용서를 구하며 나를 따를 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온통 무서공포 속에 빠져들 것이고,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무서워서 나를 따를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모두가 마음을 열고, 서로 사랑하며, 축복하며 싸우지 않고 나누며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가 가르쳤던 다섯 가지를 실천하는 것이 천국이고, 구원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십자가에서 내려가지 않고 기다릴 것이다.     

 

나는 죽음으로 가르치려 한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법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마음마다 십자가를 세우고, 예배당을 지어 내가 가르친 바를 스스로 실천하기를 권면하는, 제대로 된 나의 종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이곳 골고다의 언덕으로 올라온 것이다. 나에게 구하지 말고, 스스로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나는 안다. 저들 가운데서 나를 팔고 다니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며, 천국의 참된 의미를 호도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복을 빙자하여 물질을 강요하는 자, 권력에 빌붙어 아부하고, 자기가 구세주라고 혹세무민하는 자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그들에게 넘어가지 않고 나의 가르침을 묵묵히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기를 나는 이 십자가에 달려서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저들을 믿고 기다리는 것처럼 저들도 나를 믿고 나를 따르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손을 뻗어 나를 안는다. 평안하다. 정결한 기운이 감돌아온다. 하나님의 나라가 열리고 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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