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힘날세상 Apr 06. 2024

9화 주홍글씨와 명리命理 사이

         

나를 억누르고 있는 ’편관偏官‘의 탓이라고 했다. ’편관‘이 ’세운歲運‘과 ’월운月運‘에 한꺼번에 들이닥쳐 날카로운 호랑이 발톱으로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억압하는 결과라고 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마무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타고난 사주의 국면인 ‘사주원국四柱原局’에서  ‘시주時柱‘의 ’시간時干’과 ‘월주月柱‘의 ’월간月干’에 자리 잡고 있는 ‘정인正印’이 나의 ‘일간 日干’을 ‘생生’하며 안정적으로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주 앉은 학생인권교육센터 인권옹호관은 속된 말로 저승사자와 같이 말하고 행동했다.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학생의 몸에 손을 댄 것은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그 학생이 심한 성적 수치감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고요.”     

그 사무적이고, 강철같이 날카로운 말투 앞에서 나는 당당해야 한다고 가라앉으려는 내 마음을 움켜쥐고 꼬집었다. 꼬집고 또 꼬집었다.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저는 그 학생이 공부시간에 자고 있길래 깨웠을 뿐입니다. 고3이 아니었어도 자는 학생을 그대로 두고 수업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잖아요?”

“이건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그 학생의 몸에 손을 댔고, 그 학생이 성적 수치감을 느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명리학에 따르면 나는 물이다. ‘일간 日干’이 ‘계癸’이므로 형체가 없어 만져지지 않지만,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가랑비와 같은 음의 기운이라고 했다. 바다 같은 거센 기운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을 나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다스리고 조율해서 이끌어 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은근하게 스며들어 서서히 영향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을 장악해야 한다고 했다.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어가는 것처럼.     


“운명은 운명의 주체인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니, 이제 우리는 그저 조언을 해줄 뿐입니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알려주는 일종의 카운슬링 역할이 우리의 할 일인 것입니다”    

 

저자는 손바닥을 힘껏 마주치며 말했다. 걱정하는 것만큼 세상은 두려운 것이 아니고, 억눌리고 짓밟혀도 일어설 수 있는 때는 반드시 온다고 했다.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장맛비 속에서도 태양은 빛을 발하고 있다고. 그러니 울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 편은 없었다. 제일 먼저 나에게 돌아온 것은 보직해제였다. 그날부터 나는 선생이되 선생이 아니었다. 담임교사도 아니었고,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도 아니었다. 교육청에서 조사를 받는 교사 신분일 뿐이었다.

선생이 학생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은, 그것도 불명예스러운 일 때문이라면 숨을 쉬고 있을 뿐, 죽은 거나 다름이 없는 일이다.      


“우리 청에서 일선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께 그렇게 주의하라고 일렀는데도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학생의 부모가 경찰에게도 신고를 한 모양입니다. 일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인권옹호관은 나를 성추행범으로 단정하고 있었다. 선생인 내 말은 그 앞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추악한 범행을 저지른 파렴치한 선생이라는 자가 쏟아내는 구구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저는 수업시간에 자고 있는 학생을 깨운 것이 전부입니다.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다 보고 있는 자리였습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선생님은 수업이 끝나고 학생을 따로 불러서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구나. 내일은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했지요. 선생님이 학생과 신체접촉을 한 사실 때문에 학생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까? 학생은 그 말을 들었을 때 더 부끄러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그건 수업시간에 제가 깨웠을 때 기분이 나빴던 마음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절대로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조사를 받던 사람들이 갑자기 죽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온몸에 힘이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국사 선생님은 호랑이 선생님으로 무섭기가 그지없었던 분이었다. 국사 선생님 앞에서는 정말 숨도 크게 쉬지 못할 정도였다. 수업시간에 몰래 만화책을 보다가 걸린 학생을 혼내고 난 선생님은 상당히 화가 나셨다. 학생이 교사의 권위를 침해했다는 것이었다.


“너희들 중에서 교대나 사대에 진학하려는 사람 손들어.”


바짝 쫄아 있었던 우리 중 몇 명이 손을 들었다.


“너희들은 쥐약 먹고 죽어라. 선생을 하겠다고? 정신 차려 이놈들아. 너희들이 선생 할 때는 방탄조끼를 입고 교단에 서야 할 거야. 세상은 편리해지고 재밌어지겠지만, 그만큼 사람들은 인간성을 잃어갈 거다. 다시 말해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무서운 존개가 될 거란 말이다. 그런데도 선생을 하겠다고? 바보 같은 놈들.”


그때 나는 선생님이 홧김에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오늘의 세태를 정확히 읽고 있었던 것이었다. 50년 전에.



일주일이 지난 후 경찰은 무혐의처분을 내렸다. 분개한 학생들이 각자 쓴 탄원서와 사실을 적시한 대자보를 교내에 내걸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힘없이 돌아서는 나에게 경찰관은 ‘선생님 힘내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목례를 하고 경찰서를 나왔다.


학생은 쪽팔려서 학교에 다닐 수 없다며 자퇴서를 제출하였고, 나는 교단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족쇄는 풀렸으나 그 학생과 나에게는 낙인이 찍혔다. 커다랗게 주홍글씨가 새겨진 것이다.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참 쉽게 말했다. 잊힐 것이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될 거라고.      


나는 오랫동안 주홍글씨가 남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가슴에 새겨진, 그리고 그 학생의 가슴에 새겨진 주홍글씨가 우리들의 삶을 받쳐주는 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명리학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그 삶을 이루는 많은 요소를 어떻게 조화롭게 구성할 것인가, 그 조화롭게 구성된 요소를 가지고 어떻게 해야만 인간이 가진 가치를 잘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지, 어떤 가치가 절대적으로 우월하니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다른 것을 무시하거나 종속시켜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명리학자의 책을 읽다가 우리의 가슴에 새겨진 주홍글씨를 앞으로의 삶을 탄탄하게 이어갈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삶을 이루는 많은 요소를 어떻게 조화롭게 구성할 것인가, 그 조화롭게 구성된 요소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만 인간이 가진 가치를 잘 드러낼 수 있는가’가 명리학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라면, 그 학생과 나 사이에 끼어든 잘못된 ‘간지干支’들을 극복해야 하고, 그것을 조화롭게 구성하여 삶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학생의 집으로 가야겠다. 그 학생과 마주 앉아 펑펑 울어야겠다. 실컷 울고 난 후 우리에게 끼어든 그 망할 놈의 ‘간지干支’들을 싹싹 지워내야겠다. 한순간의 오해와 그릇된 판단으로 우리의 삶이 무너져서는 안 되지 않는가. 그 학생의 손을 잡고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말해야겠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서로가 조화를 이루어 삶의 가치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 세상의 구성원이라고.                     


  * ‘사람,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연재하는 내용은 주변의 인물들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쓰는  내용이며, 명리학’에 관한 내용은 ‘강헌’의 『명리(命理), 운명을 읽다』를 참고하였고, 책의 내용을 잘못 해석했을 수도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