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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May 07. 2024

26화 아들아, 기다리고 있을게

아들이 차려준 2023년 어버이날 밥상


ㅡ 아들, 토요일에 집으로 올래?


작년에는 제 누나네 식솔들까지 다 불러 밥상을 차려줘서 잘 먹었는데, 올해는 아내가 집으로 불러들였다.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랴, 교과서에, EBS 교재 집필에 둘러싸여 주말마다 회의를 하고 있는 까닭이다.


아이 둘이 초등학생이 되었지만, 그래서 더 힘들어하는 딸은 연휴를 맞아 시부모님들께 밀린 효도를 하겠다고 시댁으로 내려갔고, 셋이서  먹는 밥상이고, 아들은 평소에 밥을 잘해 먹기에 집밥보다는 나가서 먹기로 했다. 며칠 전에 가봤던 고깃집으로 갔다.


ㅡ 아들, 밥 잘 먹고 다니지?

아내가 슬슬 군불을 땐다.

ㅡ 잘 먹고 다니지. 그럼.

이 녀석도 눈치를 챘을 텐데 기분 좋은 톤으로 받는다.


사실, 부자간의 대화라는 게  이어질 듯하면서도 어딘가 슬몃슬몃 끊어지고, 한 번 끊어지면 여자들 대화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아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단편적이고, 짧다. 토막 난 가운데는 늘 침묵이 자리한다. 물론 이건 서로의 신상身上 관한 이야기일 때다.


ㅡ 요새 바쁘겠다?

      = 어떻게 연애사업은 잘 되냐?

ㅡ 바쁘죠. 주중에는 집필하고  주말엔 회의하고.

      = 잘 안되고 있는 거 아시잖아요.

ㅡ 친구들과 골프나 캠핑도 못 가겠네?

       = 네가 노오오력을 해야지  이 녀석아.

ㅡ 골프백이 어디 있는 지도 몰라요.

        = 아버지, 그만하시죠.


절대 비혼은 아니라고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말이다. 맛난 밥상을 앞에 놓고 앉아 있는 즐거운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같이 올려놓는 짓은 하지 않는다. 슬쩍슬쩍 은유를 써서 던지면 알아서 받아들인다. 그게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방법이다.


그러나 오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겠다고 며칠 전부터 판을 짰다.

ㅡ 커피 한 잔 하시겠수?

      = 여보, 팟팅! 잘해요.

아내가 바람을 잡는다.

ㅡ 저기 길 건너에 새로 차린 카페가 좋아.

     = 그런 이야기는 분위기가 중요하지.


숲 속에 자리 잡은 카페가 있다. 아내랑 벌써 사전답사까지 해두었던,

ㅡ 이런 카페에 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좋지 않냐?

    = 너도 좋은 사람 만나서 이런 데에서 놀아 봐 이 녀석아.

ㅡ 시원하고 좋네. 두 분이서 자주 오면 좋겠네.

      = 제 걱정 마시고 재밌게 사세요.

ㅡ 우린 이런데보다 산길을 걷는 게 더 좋다.

     = 네 걱정이나 해.


커피 향이 좋다.

숲을 빠져나오는 바람은 빗속에서도  봄기운을 잔뜩 머금은 까닭에 향그럽다.


ㅡ 네가 선택하는 사람은 아버지도 좋다.

ㅡ 아이, 그럼 당연히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 줘야지.

아내가 끼어들었고.

ㅡ 왜 안 하시나 했네. 그런데 그게 맘대로 안되네요.

ㅡ 그렇지. 30대 후반인데 사람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가을에 국화 한 송이가 피는데도 봄부터 소쩍새가 울어야 한다잖아.


부모가 아들의 삶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결혼을 못(안)하는 이유 중에 시월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아들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부터 다짐하고 있다.


* 아들의  결혼생활에 우리가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 명절연휴를 자기들끼리 즐기게 한다.

* 딩크족이어도 좋다.

* 연상이어도 관계없다.

* 그러나 비혼만은 안된다. 등은 효자손이 긁어주지만 파스는 누군가 붙여줘야 한다.


일사천리로 아들에게 쏘아댔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들이 입을 열었다.

제법 다정한 목소리다. 예전에는 불퉁거리며 대들어서 화를 낸 적도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럴까 오늘은 참 고분고분하다.

ㅡ 잘 알죠. 전부터 아버지가 늘 말했잖아요.

그리고는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다.

ㅡ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쉽지 않아요.


쉽게 만나지지도 않지만, 만나게 되는 여자들도 나이가 있다 보니 신중한 태도라고 한다. 그래서 이것저것 다 재보고, 그러고도 다시 신중해진단다. 지금까지 혼자서 자유롭게 잘 살아왔는데 왜 굴레를 써야 하느냐는 것이다. 남녀 간에 모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ㅡ 그래서, 우리 아들도 그렇냐?

ㅡ 아니라고는 못하고, 그런 점이 조금은 있긴 하죠.

ㅡ 그래도 인연이 있는 거니까. 서로 노력해 봐야지.

ㅡ 그래야죠.


열에 다섯 정도가 맞으면 살아가면서 맞춰 살았고, 안 맞아도 맞는 것처럼 살아오고 있는 삶이고 보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사람도 변하는 것인가 보다. 근본까지도.


ㅡ 그렇겠지. 그런데 아들아. 행여 우리가 네 선택에, 너희들 삶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다른 건 다 이해하는데 비혼만은 안 된다는 거야. 알겠지?

ㅡ 알죠. 좋은 사람 만나서  맛난 거 많이 해 먹이고, 좋은 데 찾아서 놀러 다니고,  서로 채워주며 잘 살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그래야지. 오늘 맘에 든다.


몇 년 전에 배낭에 아들의 신상을 적은 공개구혼 안내판을 달고 소백산을 오르던 분이 생각났다.

ㅡ 일부러 사람이 많이 찾는 산으로만 돌아다니지요. 북한산, 관악산, 청계산으로.

이게 부모 마음인데, 내가 이러는 거 아들은 몰라요.


그때는 그냥 웃고 말았는데 지금은 이해가 된다.


아들의 마음은 어떨까. 저렇게 웃고 있어도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어수선할까. 괜히 말해서 아들의 마음만 뒤집어 놓은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도 다가올 사람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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