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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Jul 31. 2024

19 폭염을 지나는 마음

MS사  AI  Copilot이 그려준 자화상


장맛비가 그치자 연일 폭염 경보가 발령된다. 낮에 달구어진 세상은 밤에는 열대야로 이어져 잠을 설치게 한다.


ㅡ 아빠, 더운데 산에 가지 말고, 무리하지 마. 집에서 에어컨 틀고 수박이나 드시면서 시원하게 보내.


아침부터 딸이 전화해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60년대 여름은 지금처럼 덥지 않았다. 낮에는 마루에 엎드려 '방학생활' 소위 '방학책'을 풀다가 낮잠에 빠졌다. 얼굴에 자국이 생기도록 자고 일어나 보리밥 한 그릇 먹고 저녁 무렵 개울가에서 잠자리를 잡고 놀았다.


어머니는 농사지은 밀을 빻아다가 칼국수를 끓여 주었다. 마당에 멍석을 펴고, 모깃불을 피우고, 부채질을 하며 입이 터지게 칼국수를 몰아넣었다.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로 붙잡았지만, 호랑이 이야기도 물릴 만큼 들어서 고샅으로 내달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담너머로 개복숭아도 따먹고, 수박이며, 참외 서리도 하며 밤이 이슥하도록 놀았다. 땀에 젖은 몸을 우물물 퍼서 씻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좁은 방에서 여덟 명이 잤다. 방문에 발라놓은 창호지를 뜯어내고, 모기장을 붙였다. 선풍기도 없었지만 모기장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기운으로도 충분하였다. 어쩌다가 더운 날은 마루에 모기장을 치고 잤다.


그때는 더위보다는 모기가 더 무서웠다. 해마다 모기에 물려 뇌염에 걸려 몇 명은 고생했다. '에프킬러'가 나오기 전에는 모기약이라고 쓰여있는 유리병에 빨대를 꽂아 입으로 불어 분무했다. 나중에는 손으로 뿌리는 모기약, 불을 붙여 향을 피우는 제품이 나와 편리해졌다. 모기가 많기는 했지만 약을 뿌리면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오늘도 35도가 넘을 거라며 폭염경보가 내렸다.

아내는 시니어 카페로 출근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더니 재미나게 일한다. 산으로 갈까 하다가 집에서 놀기로 했다.


거실에 깔아놓은 대나무 자리에 누웠다. 16층이어서 일까, 뒷문만 열면 10미터 거리에 수목원의 울창하게 숲이 우거진 까닭일까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매실차 한 잔을 들고,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읽는다. 소파에 머리를 기대고 대자리 위에 불량한 자세로. 속옷차림이다. 점심 후에는 선풍기를 돌리기도 하고, 아내가 잘라놓은 수박도 한입 베어 물면 그만이다.


며칠 전부터 맴도는 글감이 있다. 도저히 자판으로 두드려지지 않는.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몰렸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미 소리가 힘겹게 창을 넘어온다. 7년을 땅속에서 지내다가 땅 위로 올라와 일주일 살고 간다는 매미. 서러워서 저렇게 울고 있는 것일까.

아니란다. 저건 목청이 터지도록 쏟아내는 서러움이 아니라, 배의 근육을 움직여 암컷에게 보내는 수컷의 사랑 노래라고 한다. 세대를 이으려는 간절함인 것이다.


7년을 음습한 땅속에서 보내야 하는 삶을 다음 세대에게 대물림하겠다는 것인가. 그래서 저렇게 한낮을 흔들고 있는 것인가. 내 자식만은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고 보면 매미의 삶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순전히 사람의 시각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은 저마다의 여름을 즐기고 있다. 휴가를 길게 내지 못하는 딸네는 강원도 펜션에서 깊은 계곡을 즐기고 있고, 아들은 열흘 동안 알프스에서 캠핑을 하며 아름다운 트레킹을 하고 돌아왔다. 대자리 위에서 뒹굴고 있어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외씨버선길은 걷고 싶다. 청송에서 영양, 봉화를 지나 영월까지 이어지는 13구간 264km의 시간. 무엇으로 걸을까. 걸어서 어떤 시간을 담아볼까. 미지의 시공간에 대한 기대감일까.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는 느낌이다. 가보지 않아 낯선 곳, 설렘으로 존재하고 있는 시간 앞에서 한낮을 즐긴다.


수목원을 건너온 바람이 청량하다. 혼자서 뒹구는 시간도 그런대로 비옥하다. 마음이 편안하고 느긋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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