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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Jul 08. 2024

18  그 척박한 땅에서도 배추는 자라는 거니까.

태백고원 매봉산 바람의 언덕에서 자라고 있는 고랭지 배추



나는 참 알량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에, 성경을 절대적 신비성을 지닌 말씀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훈으로 삼고 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설파說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면서도, 일종의 비유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나는, 나의 믿음은 늘 인정받지 못하는 얄팍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의 비유로 받아들이면 아무런 저항감이 일지 않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수긍하고 깨닫게 되는 때가 많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소위 오병이어五餠二魚에 관한 내용도,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내용도 그 가르침의 깊이를 깨달을 수가 있다.


구약성서 욥기에 등장하는 욥은 흠이 없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할 뿐 아니라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다. 아들이 일곱이고. 딸이 셋이며, 아주 많은 가축들을 기르고 있는 아주 부자이다. 그는 자식들이 죄를 짓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저주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늘 번제를 드렸다. 말하자면, 늘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어느 날 하나님이 사탄에게 말했다.

"욥은 흠이 없고 정직한 자로 나를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다."

사탄이 말했다.

"욥이 그러는 것은 하나님이 감싸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욥을 쳐보십시오. 그러면 주의 얼굴에 대고 저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이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았다. 그러자 욥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어버리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했다.

"내가 내 어머니의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으니  떠날 때도 벌거벗고 갈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것을 여호와께서 가져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받을 것을 바랍니다." 하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나는 욥과 같은 믿음이 없다. 그래서 늘 불평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나님을 원망한다. 벌 받아 마땅한 허접한 믿음이다. 그런데도 성경은 늘 깨우쳐준다.


2023년 8월 9일 브런치에 발을 디뎠다. 지원하기 전에 블로그에 매일 한 편씩 100편의 글을 업로드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브런치에서 문을 열어준다면 혼신을 다해 글을 쓸 거야, 스스로 글빚에 몰리는 즐거움을 소소昭昭 즐길 거야,라고 주먹을 움켜쥐고 다짐했다. 신났다. 즐거웠다. 기운이 솟구쳤고, 힘이 났다.


그러나 브런치의 세상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면서 힘이 빠졌다. 글을 쓰는 시간에는 나를 붙들어 매 놓아야 하고, 참 많이도 가슴을 쥐어 짜야한다. 그러고도 내가 내놓는 글은 늘 가벼웠고, 그래서 깊이 있는 울림이 없었다. 당연히 독자들의 반향이 없었다. 맥이 빠졌고, 글의 댐은 어느 순간, 무너졌다.


번아웃. 그랬다. 완전하게 무너졌다. 어느 순간, 글쓰기가 싫어졌다. 회의감과 열등감이 혼재되어 된통 흔들어대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쓰는 글은 살아있기나 하는 걸까.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번아웃이 아니라 번아웃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다.


브런치에 리는 마음으로 첫 글을 올렸다.  '그렇더라도  고도는 기다려야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마음가짐 같은 것이었다.


무대의 막은 올랐다. 고도는 오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고도는 기다려야 한다. 글을 쓰다가 울고, 가늘어지는 눈으로 울어대다가 집어 올린 메마른 글감이라도 풀어놓아야 한다. 폭풍과 해일의 바닷가에서도 펜은 들어야 한다. 혼자라서 외로울지라도, 눈을 뜨고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  

         - '그렇더라도 고도는 기다려야한다.' 에서  


그러나 나는 홀로 서 있고, 고도는 오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고도를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상당 기간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 5월 한 달을 가슴앓이했고, 무엇인가 마음을 붙잡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정말 자신이 없고, 기운이 없다. 책도 읽기 싫다. 어떻게든 가라앉은 마음을 일으켜보려고 했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앉아 있었다. 책 속에서 흩어진 정신줄을 잡아보려고 했다. 소설을 읽었다. 수필도 읽었다. 시집도 되는 대로 읽었다. 어쩌다가 명리학에 관한 책도 읽었다. 김연수 작가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가 마음을 흔들었다. 애써 독후감을 썼다. 그렇게라도 살아나고 싶었다.


무작정 태백으로 갔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 백두대간의 등줄기에 거대한 바람의 세상이 있었고, 그 바람을 머리에 인 척박한 채소밭이 드러누워 있었다. 밤을 새웠고, 해가 돋을 무렵 느닷없이 구약성경 욥기가 생각났다.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욥, 모든 것을 잃었어도 흔들리지 않았던 욥. 그는 기독교 신자들의 본本이 되고 있다. 그 확고한 믿음으로.


그러나 나는 여전히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 자판을 두드리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던 욥. 나는 욥기서를 몇 번이나 읽었으면서도, 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일까.


새벽녘, 바람의 언덕 시멘트 길을 달렸다. 젊은 시절 달리기는 늘 해결의 통로였다. 풀어지지 않는 사고思考의 뭉치는 달리는 발걸음에서 스르르 풀렸다. 그것을 바라지는 않았으나 고랭지 채소밭 딱딱한 시멘트 농로를 벗어나 비단봉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를 달리다가 문득 파고든 생각 하나.


'괜한 트집을 잡고 있다.'


어리석게도 나는 움켜쥐고만 있었던 것이었다. 탐욕이었다. 브런치에서 인정받고만 싶었다. 많은 구독자를 갖고 싶었고, 브런치에서 달아주는 초록의 배지가 욕심이 났고, 무엇이든 손에 쥐어지는 무엇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허울 좋게도 번아웃이라는 핑계를 내걸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또 읍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전능자와 싸운다고  그를 가르치겠느냐?  나에게 트집 잡는 사람아, 대답해  보아라!" 그러자 욥이  여호와께  대답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어떻게 주께 대답하겠습니까? 손으로 입을 막을 뿐입니다. 한 번 내가 말했었지만 대답하지 않을 것이며 두 번 말했지만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

                                           - 욥기 40장 1 - 5절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브런치에서 인정받고 싶은 것은 아니어야 한다. 나는 그냥  나를 돌아보고 나와 이야기할 수 있는 글을 쓰면 되는 것이다. 글을 써서 밥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앞에서 이름을 드러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어리석게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고, 하나님께 트집이나 잡는 욥과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한다. 눈으로 쓰고, 손으로 쓰고 보니 그 안에 탐욕이 스며들고, 탐욕이 밀려들어온 자리에는 엉뚱한 핑계가 자리 잡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트집이나 잡는 욥과 같은 행동을 했던 것이었다.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나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크리에이터의 초록 배지를 달아주지 않는다고, 독자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읽지도 않고 라이킷을 누른다고 브런치를 탓하며 핑계대지 않아야 한다. 글은 브런치가 아니라, 내 마음의 폴더에 담아두어야 한다.


너의 극에 달한 분노를 쏟아내고 교만한 사람을 보고 그를 낮추어라. 교만한 사람을 다 눈여겨보아 그를 낮추고 악인은 그 서있는 곳에서 밟아버려라. 그들을 모두 한꺼번에 흙먼지 속에 묻어 리고 그 얼굴을 몰래 싸매 두어라. 그때가 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음을 내가 직접 인정할 것이다.

                               -   욥기 40장 11 - 14절


성경에 답이 있었다. 글을 쓰는 목적을 내 안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탐욕이 들어설 자리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빠지지 말고,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글감을 찾아 마음으로 써야 한다.


장맛비가 내리고 있지만 그 속 어디엔가 해는 빛을 발하고 있으니까. 바람의 언덕 그 척박한 땅에서도 배추는 자라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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