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2018년 이래 홍천이 41도였다고 한다. 극한 기후인지 이상 기후인지
인간이 초래한 결과가 아닌가.
5~60년 전만 해도 한여름에 돌아다니다 집에 와서 등목 한 번 하고 툇마루에 앉아 부채질 몇 번 하면 시원했다. 당시에는 냉장고도 없던 때였으니 지금처럼 시원한 물도 없었다. 다들 그렇게 여름을 보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덥다.
웬만하면 점심 먹을 때까지는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대자리에 누워 선풍기 틀고 누워서 뒹굴뒹굴 보낸다.
ㅡ더운데 뭐 하고 있어?
친구가 전화를 했다.
ㅡ그냥 뒹굴고 있지.
시시껄렁하게 답한다.
ㅡ점심이나 먹을까?
ㅡ좋지. 좋은데 더워서 엄두도 안 나네.
ㅡ그렇긴 하지. 한풀 꺾이면 봄세.
내 몸도 귀찮은데 아무리 친구라 해도 전철 타고 한 시간 이상 가야 하는데 그것도 힘든 일이다.
아내가 차려주는 점심을 먹는다. 입맛이 없다. 깻잎김치와 새우젓갈 무침, 우렁이된장을 놓고 찬물에 말아 후루룩후루룩 먹는다. 조금 짠듯하게 먹는다.
양치질하며 샤워하고 대자리 위에 눕는다. 에어컨도 함께 한다. 셜록홈즈를 읽는다.
아들이 고등학생 때 사놓고 교과서 아래 숨겨두고 읽던 것이다. 모두 10권인데 6권이 없다. 6권이 어디로 갔을까. 까짓 거 한 권이 없는 게 무슨 대순가. 그냥 읽는 거지.
초등학교 때 읽었던 추리소설 "황금박쥐". 김내성이라는 분이 쓴. 선생님이 책을 읽을 때는 꼭 지은이와 제목은 기억해 두라고 강권했기에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악당 황금박쥐와 탐정 유불란이 맞서는 이야기인데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때 선생님이 내용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고 하셨으면 내용도 기억할 수 있었을까.
추리소설은 사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제맛이다. 마치 나 자신이 사건을 추적하는 탐정이나 형사가 되어 파고들다 보면 세상을 잊고. 더위도 사라진 채 오로지 범인을 찾는데만 몰입하게 된다. 그게 추리소설을 읽어 여름을 이겨내는 까닭이다.
대학 연극반 때 애거서 크리스티의 쥐덫을 공연한 적이 있다. 추리극은 결말이 중요한데 특히 쥐덫은 엄청난 반전이 있는 까닭에 끝까지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어느 공연에서는 결말에 이르기 전 공연을 중단하고 범인을 맞혀보라고 한다. 관객들은 범인을 추정해 보지만 쉽지 않다. 등장인물 모두가 범인 같은 용의점이 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은 줄거리만 따라가며 읽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가 되어 사건 속으로 빠져들어야 한다. 그 흥미진진함 속으로 말이다.
더운 여름날,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홈즈를 읽는다. 알량하지만 추리에 빠져 더위를 이겨보기로 한다. 재미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