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좀 불어도 좋은 날
삼천을 따라 황혼을 걷는데
여름이 올 거라고,
비가 내리고 끈적이는 더위가 가득할 거라고,
그래서 쉽지 않을 거라고
해가 넘어가면서
남기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린 시절,
지평선을 넘어가던,
기울어지는 해는
꼭 얼어붙은 신작로를 밟고도
아직 다 못 거둔 햇살 자락을
텅 빈 들판 위로
자박자박 끌어당기고 있었다.
하루 종일 고샅을 뛰놀던 바둑이도 추레한 걸음으로 돌아가고
초가지붕 굴뚝 위로 밥 짓는 연기만 피어오르던 해 질 녘에
손등이 쩍쩍 갈라지도록
팽이 치고,
썰매나 타고 다니던 아이들은
손을 호호 불면서도
담벼락에 남아있는 저녁놀을 놓지 못했다.
배고파도 잘 놀았고,
컴퓨터, 휴대폰 없이도
하루 종일 참 재미나게 놀았었다.
해넘이는 지금도 아름다운데
바라보는 건
이제 희미할 뿐이다.
도대체 걸어 다니는 길을 막아 세워놓은 자전거에 어리둥절한 늙은이들은
침침한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다.
보이는 것마다 흐릿하게 보이고,
생각도 허리를 펴지 못하고,
굽어가는 몸은 여기저기 군시러운데
해마저 그렇게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