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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으로 가는 길

by 힘날세상
그렇다면 나는 어제 친구를 이런 길로 몰아넣었던 걸까.



ㅡ그러니까 담배는 언제 사줄 건데?

ㅡ언제까지 담배를 사달라고 할 건데?

ㅡ벌써 45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안 사주는 건 뭐냐고?



각개전투 교장 아래 작은 연병장에서 10분간 휴식을 하였다. 육군 제2하사관학교(현재는 부사관이라고 한다.)는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입대하고 논산 수용연대에서 일주일 이상 시간을 보내다가 하사 후보생으로 차출되어 제2하사관학교로 가게 되었다.


떨어지는 낙엽도 수직으로 떨어진다는 제2하사관학교의 군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기술행정 하사후보생으로 하사관학교에서 8주 동안 군사교육을 받고 나머지 8주는 정보교육대에서 정보 교육을 받게 되었다. 지금은 하사관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지원해서 시험에 합격해야 하지만 당시에는 소위 단기하사라는 게 있었다. 복무기간은 일반 병사들과 똑같은데 하사관학교로 뽑혀 가서 교육을 받고 하사로 임관되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직업군인으로서 지원해서 입대하는 하사관들도 있었다.


하사관학교에 입교하자마자 우리에게 내려진 첫 번째 명령은 1주일 동안 화장실 출입 금지였다. 그랬다. 생리현상을 막아버렸다. 그럼 어떡하냐고? 어떡하긴 화장실을 이용해야지. 단, 구대장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니 어쩌겠나. 행동이 민첩해지고 항상 긴장하게 되는 거지. 즉, 군기가 바짝 들게 되는 거지.


그렇게 군기가 바짝 들어 일주일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에 한 갑씩 무료로 나눠주는 화랑 담배도 피울 수가 없는 때였다. 하사관 학교에 입교한 지 2주 차 되었을 때 총검술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중간에 10분 간 휴식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훈련 강도가 세다고 해도 50분 교육 후에는 꼭 10분 간 휴식이 주어졌다. 단, 쉬는 것도 줄을 맞춰 앉아서 허리를 곧게 세우고 양손을 뻗어 무릎 위에 올려놓은 자세를 취해야 했다. 힘든 휴식이었다.


우리 소대 앞에는 24주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하는 보병하사들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바로 내 앞에 국문과에 입학하여 3년 동안 같이 지냈던 친구가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보다 석 달 먼저 입대했던 친구는 전경대에 지원했었는데 분대장으로 차출되어 보병 교육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친구는 입교한 지 오래되어서 담배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친구가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그 손 안에는 피우다 만 '한산도'와 라이터가 쥐어져 있었다. 담배를 피울 수 없는 나의 처지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내 손에 어렵게 구입한 사제담배를 건네주었던 것이다. 그때 받은 담배. 얼마나 꿀맛이었던가. 그나마 몰래 숨어서 피우는 담배라니.


ㅡ평생 담배는 내가 사 줄게. 고맙다.

ㅡ야, 얼른 집어 넣어.


그 친구는 전라북도 해안에서, 나는 강원도의 비무장지대에서, 그는 말안듣는 어부들과 싸워가며, 나는 몇 백 미터 앞의 북한군과 마주하고 군 복무를 마쳤다. 4학년으로 복학한 우리는 막걸리 잔에 젊음과 심적 고통을 담아 마시며 대학 생활을 매듭지었다.


서로 사는 지역이 달랐기에 자주 만나지 못하고 지내다가 퇴직하고 나서 어떤 상황으로 남양주에서 여섯 달을 살게 되었다. 친구는 하남 검단산으로 불렀고 한걸음에 달려간 나는 그와 걸음을 맞춰가며 검단산에 올랐다. 그리고 하남 덕풍시장에 있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때 그는 말했다.

ㅡ담배 언제 사줄 건데?

ㅡ담배? 나는 바로 끊었는데?

ㅡ너 하사관학교 각개전투 교장 연병장에서 했던 말 생각 안 나?

ㅡ무슨 말?

ㅡ갈 때와 올 때 마음이 다르다더니 너무 하네.

ㅡ아, 그거! 그 때가 언제인데.


그때부터 우리는 화곡동에 사는 동창까지 불러 자주 만나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는 브런치에 " 늙은이들의 술판"이라는 소설같은 넋두리를 쓰기도 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oldboy


지난 6월 13일. 폭염이 쏟아지던 날, 우리는 늘 가던 하남 덕풍시장 음식점에서 만났다. 그집 안주인도 우리와 와 동갑이어서 친구와 다름없이 지내고 있다. 수육을 들어 청하를 한 잔 마시던 친구가 불쑥 말했다.

ㅡ담배는 언제 사줄 거야?

ㅡ담배 사주는 건 너 빨리 죽으라는 건데?

ㅡ네가 안 사주어도 어차피 피우게 되어 있는데 그런 핑계로 빠져 나가려고?


그길로 담배가게를 찾으러 다녔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젊은이에게 물었다.

ㅡ혹시 이 근처에 담배 파는 곳이 있나요?

ㅡ저기 편의점에서 팔아요.

그 젊은이는 별 사람 다보겠다는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말했다.


ㅡ담배 있어요?

ㅡ무슨 담배 드릴까요?

나는 그가 피우는 담배를 찍은 사진을 보여 줬다.

ㅡ아, 이거 비싼 담배인데요.

약간 부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주 여성인 것 같았다.


ESSE ROYAL PALACE!

나는 3갑을 달라고 했고, 그 여자분은 3만원을 요구했다.


담배를 받아보니 담배 이름보다 "실명으로 가는 길"이라는 글자가 더 잘 보이게 써 있다. 그가 피우고 있던 담배갑에는 "폐암으로 가는 길"이라고 써 있었다.


ㅡ담배 좀 끊어. 폐암, 실명으로 가는 길이라잖아.

ㅡ담배 안 피운 우리 형수도 폐암으로 가셨어. 그냥 내버려 둬.

ㅡ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너를 잛못된 길로 밀어 넣는 것 같아 마음이 영 불편하다.

ㅡ불편할 것 하나도 없어. 네가 평생 사준다고 했으니까 앞으로 만날 때마다 3갑씩 사 줘.

ㅡ그게 뭐 어렵겠냐. 담배가 아닌 밥은 내가 늘 살게. 열흘만 고생하면 끊을 수 있어. 이번 기회에 끊자.

ㅡ그럼 네가 사준 거 다 피우면서 생각해 볼게. 만약에 내가 결론을 못내리면 또 사줘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를 폐암, 실명으로 가는 길로 밀어 넣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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