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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뉴튼의 관성의 법칙을 아세요?

노트북을 사줘야 할 판

by 힘날세상
초딩 2학년이 무작정 빌려온 물리책




ㅡ할아버지, 제가 과학자가 되려고 하는데요.

ㅡ응, 그렇구나. 과학자 좋지. 우리 집에서 이과 한 명 나오겠네.

우리 집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문과 출신이다. 그래서 며느리는 꼭 이과 출신이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문과여도 아들이 데려오기만 하면 좋겠지만.

ㅡ어? 엄마도 이과 한 명 나오겠다고 했는데, 이과가 뭐예요? 좋은 거예요?

어버이날이라고 모두 모여 점심을 먹는데 옆에 앉은 손자가 신이 났다. 그런데 이 아이에게 '이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ㅡ아, 그건 말이야. 이과는.... 그러니까....

ㅡ할아버지, 잘 모르시죠? 제가 선생님에게 물어봤는데, 과학이나 수학을 바탕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ㅡ오, 그래. 선생님이 잘 말해 주셨구나.

ㅡ제가 과학자가 될 거라고 했더니 선생님께서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가야 된대요.

ㅡ물리학과 좋지.

ㅡ제가 선생님께 물리학과가 뭐냐고 물어봤는데, 선생님이 도서관에서 "초딩 인생 처음 물리"라는 책을 빌려서 보라고 하셨어요. 제가 빌려왔거든요. 그런데 재밌기는 한데 어려워요.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변하는 속도가 무섭고, 그 무서운 속도 이상으로 아이들의 사고방식이나,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또는 접하는) 넓이나 두께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상으로 이미 깊숙하게 들어와 있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수준은 놀랄 만큼 대단히 높다. 그런데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어휘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너무 바른 속도로 어른들의 세상으로 들어서게 만들고 있다. 어린이들이 정상적인 발달 단계를 밟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동요에는 관심이 없고, 성인 가요를 불러대고 있는 것이다. '창작동요제' 같은 것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그 자리를 '트로트 신동'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 잘난 언론들이 만든 결과물이다.


ㅡ할아버지, 저희 선생님은 어휘 실력을 대단히 중요시하시거든요. 그래서 지난번 공개수업 때 언어 골든벨을 했어요. 관용어 맞히기를 했는데 아이들이 "깨가 쏟아지다"같은 말을 모르고요, "손을 보다"라는 말을 물어보셨는데 아이들이 모두 자기 손을 보고 있었어요.


요즘 들어 문해력이라는 말이 힘을 얻고 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글을 읽어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선생님들 중에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해보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참 많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따른 교육 말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이런 것을 다 뛰어넘으려고 한다. 학원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의대반을 운영하고 있고, 학부모들은 거기에 휩쓸리고 있다. 그러니 발달 단계에 맞는 수업을 하려고 하는 선생님들은 부모들 눈에 들어오겠는가. 참 걱정이 아닐 수 없다.


ㅡ할아버지, 제가 빌려 온 물리 책에서 봤는데요, 관성의 법칙이 있어요. 뉴턴의 제1법칙이라고 하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ㅡ그게 뭔데?

ㅡ하나의 물체는 자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다는 거예요. 정지해 있는 물체는 정지해 있고 싶고, 움직이는 물체는 그대로 움직이고 싶은 거래요. 버스가 갑자기 멈추면 사람이 앞으로 넘어지는 것도 관성의 법칙 때문이래요.

ㅡ오호, 우리 손자 대단한데.

ㅡ그런데 할아버지, 제가 발견한 것이 있는데요. 제가 게임을 하고 있을 때 엄마가 그만하라고 해도 계속하고 싶은 것도 관성의 법칙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게임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야 하는 거예요. 맞죠?


관성의 법칙, 참 고생 많이 한다.


ㅡ할아버지, 서정적 자아가 뭔지 아세요?

4학년 짜리 손녀가 바짝 다가앉으며 묻는다.

ㅡ서정적 자아? 그런 말을 어디서 배웠을까?

ㅡ국어 시간에 시를 배울 때 선생님이 알려줬거든요. 시를 읽을 때는 서정적 자아를 먼저 찾아내야 한댔어요. 서정적 자아는 시에서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서정적 자아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 지를 파악하면 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했어요.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서정적 자아를 가르치는 초등학교 선생님. 이렇게 시를 가르치면 아이들이 나름 대로의 느낌으로 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문제 풀이 위주로 획일화시키지 않는 참 좋은 방식이다. 우리 손주들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잘 배우고 있어서 좋다. 또 딸이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아서 좋다.


ㅡ할아버지, 저는 꼭 서울대 물리학과에 들어갈 거예요. 그러려면 컴퓨터를 잘해야 한대요. 그래서 지금 컴퓨터를 사려고 돈을 모으고 있어요. 13만 원만 더 모으면 살 수 있어요. 제가 다 골라놨어요.

딱 봐도 컴퓨터 사고 싶으니 이유를 갖다 붙이는 거다.

ㅡ저는 동화작가가 될 건데요. 동화작가는 좋은 대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대요. 책을 많이 읽어서 상상력을 힘껏 키울 거예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아러고 봄이 왔는데도 날씨가 안정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아이들과 같이 점심 식사를 즐겁게 해서 좋다. 아무래도 노트북을 사줘야 할 것 같지만 아이들이 명랑하고 바르게 커나가고 있어서 좋다.


날씨는 흐려도 여러 가지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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