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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박웅현, <여덟 단어>

7. 소통疏通 - 마음으로 이어지는 공감과 이해

by 힘날세상



박웅현이 내놓은 일곱 번째 단어는 소통疏通이다. 사람이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라고 볼 때 어쩌면 꼭 필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소통에는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하고,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제대로 소통하고 있을까?'


뭐, 여기서 그가 말하는 소통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잇는 것이라는 것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 알아챘다. 그렇지만 '살아오면서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 얼마나 마음을 이을 수가 있었던가'하고 돌이켜보니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주변 사람들보다 내가 낳은 자식들과의 소통이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매를 들어 내 생각을 드러내었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벽이 가로막은 듯 단절이 되어 버리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소통하는 법을 몰랐던 것 같다. 자식이기에 부모라는 입장을 내세워 윽박지르려고만 했었던 것 같다.


박웅현은 사람들이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내놓는다. 하나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셋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른아홉 살 아들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살고 있다. 그래봤자 요즘의 흔한 젊은이들의 방식이다. 일단 눈앞의 즐거움을 펼치고, 무엇보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앞세우는. 앞에서 박웅현이 말한 '현재'라는 단어에 충실하게 살고 있다. 나는 아들의 삶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아들이 살고 있는 집에는 거의 가지 않는다. 그냥 놓아두고 있다. 그래서 부딪힐 일이 없다.


그러나 딱 한 가지. 결혼 문제로 이야기가 흐르게 되면 우리는 금방 단절의 벽을 만난다. 배우자의 조건으로 아들은 삶의 패턴을 내세우고, 나는 속마음이 먼저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서 충돌한다. 아주 오래전에는 아들의 전화번호를 지워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고 가는 대화가 부드럽다. 서로의 생각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난 후의 일이다.

ㅡ저라고 배우자를 만나면서 속마음을 보려고 하지 않겠어요? 그것보다 우선순위는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ㅡ배우자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속마음이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ㅡ인생은 하나하나의 현재가 모여서 이루는 거라고 생각해요.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는 게 제 모토인데 배우자가 그렇지 않다면 힘들 거 같아요.


끓어올랐던 내 마음도 잔잔한 호수처럼 가라앉았고, 지금은 아들과 아무 문제 없이 소통을 하고 있다.



박웅현의 말하기 방식은 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에서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사실 그가 내세우는 <여덟 단어>는 여덟 개의 단어만 읽어도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가 너절너절 늘어놓는 말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도 모르게 그가 펼쳐놓은 이야기보따리에 빠져들게 된다.


박웅현은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다. 그러나 그 세 가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상대방을 배려하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배려'라는 단어는 너무나 함축적이고 의미의 폭이 넓어 웬만한 것은 다 품고 있다. 그래서 사실 어려운 단어이고 의미이다.


나는 상대방과 소통 상황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라. 상대가 말할 때 나는 얼마나 상대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지를. 대개의 경우 상대가 말할 때 상대의 말을 듣는 것보다 내가 할 말을 준비하고 있지 않는가.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교단이 아닌 곳에서 학생들과 대화하는 것이었다. 교단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치밀하게 설계한 수업이므로 일정한 흐름과 틀 속에서 진행되기에 어려울 게 없다. 즉, 소통의 틀이 이미 마련되어 있는 것이어서 대화의 방향이 흩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과 상담하거나 때에 따라 훈계해야 하는 경우라면 정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일이다. 37년 동안 교단에 서면서 지키려고 했던 것은 학생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학생들 말을 잘 듣고 나서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라'는 것이었다. 꼭 아버지의 말씀 때문은 아니었지만 학생들의 말을 들어보려고는 했다. 대개는 내 말이 앞서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서 학생들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독백만 늘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아름다운 소통은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고 받아들일 때 이루어진다. 이것이 박웅현이 말하는 소통의 방식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먼저 헤아리는 마음.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 말함과 동시에 어떤 문맥으로 해야 하는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는 것. 힘을 싣기 위해 지혜롭게 생각을 디자인해서 말하는 것.



책을 덮으면서 맺어보는 매듭은 소통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상대와 속마음까지 건네고 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렵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소통의 방정식이다. 미지수에 특정한 값을 대입했을 때만 성립하는 방정식. 우리가 마주 선 상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 특정한 값을 찾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 배려 속에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지혜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이론이나 기법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 그것이 소통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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