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2. 박웅현의 <여덟 단어>

품격 ㅡ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by 힘날세상


<여덟 단어>, 책을 덮었다. 그러나 얼마동안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쉽게 치울 수가 없는 까닭이다.



장맛비가 이틀째 내리던 날, 창을 넘어온 빗줄기가 마음으로 흘러내리던 날. 기어이 다시 <여덟 단어>를 불러냈다.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 이 단어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말하는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읽은 우리는 그렇다면 어떤 단어를 준비해야 할까.


'고전' 부분을 읽을 때쯤 이 여덟 단어는 하나로 묶어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을 지키려면 '본질'을 알아야 하고, '고전'에 그 '본질'이 있으며, 그래서 그것들을 하나의 보자기에 싸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권위', '소통' 모두를 한 데 아울러놓고 보아야 한다는 것과, '인생'은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무엇을 말하려고 박웅현은 여덟 개의 단어를 내놓았을까. 각각의 단어를 통해서 그가 말하려는 것이 그의 몫이라면, 그 여덟 개의 단어를 받아 든 우리는 그가 우리를 위해 남겨 놓은 그 무엇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게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 아닌가.


책은 언제나 쉽게 읽히지 않는다. 몇 잔인지 모를 커피를 마셔야 하고, 새벽이 저벅저벅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덮은 책장을 몇 번이고 다시 넘겨야 하고, 때로는 결이 다른 책을 읽어보아야 한다. 그러다가 내팽개치는 우악스러운 짓을 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몸부림이다.


몸부림으로 생각해 낸 것이 '품격品格'이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를 관통하는 단어. '품격品格'. 그가 내놓은 여덟 개의 단어는 모두 '무엇을 삶의 중심에 두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된다고 볼 때, 그 답은 결국 품격 있는 삶의 태도가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품격品格

1. 사람의 품성과 인격.

2.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가치나 위엄.


박웅현은 품격이란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정말로 그가 품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면 절대적으로 외적인 품위나 예의범절을 뜻하지는 않았을 게 분명하다. 틀림없이 내면의 중심을 잃지 않고 일관된 가치관으로 삶을 살아가는 태도, 즉 삶의 품격을 말했을 것이다. 외부의 변화나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인간의 모습.



자존 : 품격 있는 삶의 출발점

자존부터 말하기 시작한 이유는 품격 있는 삶의 출발점은 자존이라고 생각했때문이다. 자만이나 오만이 아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만의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 이는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기준으로 삶을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당하고 평가받는다. 누군가는SNS에 식탁 사진을 올려놓고, 또 누군가는 거기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나는, 나의 삶은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으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피곤한 나의 일상을 발리의 해변을 즐기고 있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자존감을 품고 사는 사람이라면 늘 삶의 중심을 내 안에 두고 사는 것이기에.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진정한 행복은 타인의 승인이 아닌 자신의 내적 만족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정작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일침 一針이다. 소설가나 철학자든, 광고가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같다. 박웅현이 말하는 자존이나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진정한 행복이나. 그들에게서 얻어들은 품격 있는 사람은 타인의 평가보다는 자신의 내적 기준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내 생각이나.



본질과 고전 : 품격의 뿌리

무엇을 생각하든 품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품격이야말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는 내적 깊이에서 나오는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박웅현이 '본질'과 '고전'이라는 두 단어를 내세우고 있는 것도 이런 시각에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무섭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사회적 트렌드trend를 쫓아가는 것도 하나의 필요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올곧이 이어지는 내면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세상을 이끌어가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고전은 시간의 검증을 거쳐 살아남은 지혜의 보고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경험, 즉 본질과 만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고전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주는 책이다"라고 정의한다. 고전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고전에서 발견해 낸 지혜를 자신의 삶에 녹여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본질까지 아우르는 품격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것이 박웅현이 본질, 고전을 내세운 것이리라.



견(見) : 품격으로 들여다보는 눈

'견(見)'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나서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품격 있는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다르다. 표면적인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현상의 이면에 담겨 있는 본질을 꿰뚫어 보려고 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늘 정보의 홍수 속에 매몰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얻어내는 정보의 양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진짜 중요한 것을 구별해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마치 홍수 속에서 마실 물이 부족하듯이.


집 뒤에 있는 수목원에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아름답다고. 푸른색을 꽃을 피운 걸 보니 땅이 산성일 거라고. 청맹과니의 눈을 가진 나는, 그래서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나는 수국의 겉만 보았을 뿐, 수국이 세상을 향해 말하는 소리는 듣지 못한다. 그러나 수국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은 다르다.


평화로운 세상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우리는 다짐 같은 걸 합니다/잠꼬대처럼 반복할 수밖에 없어서//버둥거리는 벌레들과 가늘어 가는 줄기를 붙잡고/지금 수국은 수국 아닌 것과 반목하는 중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중입니다//수국은 수국만을 볼 겁니다 나 없이도 가득할 거 같습니다//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익숙해지고 길들여진 이곳에서/우리는 좀 더 놀라워해야 합니다 답 없는 문제는 잠시 상상에 맡기고//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으로/지금 나는 수국이 아름답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최지온, '수국의 시간'에서


나는 그저 수국을 보았고, 제대로 들여다본 최지온 시인은 수국의 시간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눈이야말로 고귀한 품격이 아닌가.



현재 : 품격 있는 시간 의식

박웅현이 말한 '현재'는 현재를 즐기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다. 과거에 집착하여 후회만 하거나,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끌어당겨 놓고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는. 그가 말한 '개처럼 살자'. 현재 순간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미래를 준비하는 태도. 그 '개'가 바로 품격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삶은 현재 순간에 완전히 깨어있을 때 가능하다"라고 말했다는 틱낫한도 박웅현의 '개처럼 살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품격 있는 삶이라고 덧붙이면서.


권위와 소통 : 품격 있는 관계

품격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저자가 말하는 '권위'에 대한 관점은 매우 균형 잡혀 있다. 그는 권위라면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것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도 경계한다. 그는 억압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타인을 성장시키는 힘을 가질 때, 비로소 올바른 권위라고 본다.


그 사람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권력을 주어보라는 말이 있다. 물론 권위와 권력은 전혀 다르지만 제대로 된 권위를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며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고, 누군가는 주어진 권력을 다른 사람들의 성장을 돕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사용한다.


제대로 된 '권위'는 언제나 원만한 '소통'을 부른다. 이렇게 제대로 이루어지는 소통은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서 시작된다. 품격 있는 사람은 대화할 때 상대방을 이기려 하지 않고 함께 진리를 찾아가려 한다.


마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 진정한 만남의 조건을 제시했다. 그는 상대방을 객체가 아닌 주체로 대할 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상대방을 이용의 대상이나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권위에서 나오는 진정한 소통인 것이다.



인생 : 품격 있는 삶의 총체

마지막 키워드인 '인생'은 앞선 일곱 개의 단어를 모두 아우르는 총체적 개념이다. 품격 있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삶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지고 일관된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박웅현이 말하려는 궁극의 메시지이리라. 어디까지나 알량한 내 생각이지만.


인생의 정답을 찾지 마시길. 정답을 만들어가시길, 내일을 꿈꾸지 마시길. 충실한 오늘이 곧 내일이니. 남을 부러워 마시길. 그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시류에 휩쓸리지 마시길. 당대는 흐르고 본질은 남는 것. 멘토를 맹신하지 마시길. 모든 멘토는 참고사항일 뿐이니.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단지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이시길. 그리고 당신 마음속의 올바른 재판관과 상의하며 당신만의 인생을 또박또박 걸어가시길. 당신이란 유기체에 대한 존중을 절대 잃지 마시길.


박웅현이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쥐어주는 말이다. 인생의 복잡성과 깊이를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주체인 우리들 한 명 한 명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하나하나 소중하고, 우리는 품격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고귀한 개체라는 것이다.



품격 있는 삶을 위하여

'풍신나다'는 전라도 방언이 있다. 모양새가 볼품없다는 뜻으로 사람에게는 쓰이지 않는 말이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품격 있게 살고 있는가'하는 생각을 해보다가 떠오른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박웅현이 말한 여덟 단어 중 하나도 따라 하지 못하고 있는지. 더 웃기는 건 그러면서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는 것.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진정한 나 자신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트렌드를 쫓느라 정작 중요한 본질적 가치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같이 나하고는 이어지지 않는다. 참 나는 풍신나다.


품격이라는 것은 공장에서 제품이 만들어지듯이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매일의 작은 선택과 야무진 실천의 결과물이 쌓이고 쌓여서 담기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타인을 대할 때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자신만의 가치 기준을 세워 일관성 있게 살아갈 때 나도 모르게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이다. 쌓지는 못할지라도 쌓으려고는 해야 할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박웅현은 망할 것이다. 책이 팔리지 않을 테니까.


철학적이고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일상적이고 친근한 언어로 풀어내면서도, 그 속에 담긴 깊이 있는 통찰을 은근히 보여주는 박웅현. 우리 앞에 놓인 삶의 문제를 비관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낙관적이지도 않은,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박웅현. 완벽한 인생을 내세우기보다는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박웅현.


그가 펼쳐놓은 <여덟 단어>. 품격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나침반과 같은 책. 각각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통합된 품격론을 이루는 여덟 개의 단어. 외부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존중하는 성숙한 인간으로 이끌어가는 그 여덟 개의 단어.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고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소중한 지침이 되는 <여덟 단어>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 그리고 그 안에 담아 놓은 품격.


그렇게 <여덟 단어>를 덮는다. 그리고 <책은 도끼다>를 집어 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1 박웅현, <여덟 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