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자. 실컷 울자.
울어야 한다. 남자들은 더 크게 소리 높여 온몸을 내동댕이치며 울어야 한다. 울고 싶은데도 아닌 것처럼 눈을 질끈 감고 있거나, 그냥 먼 산이나 바라보고 있지 말고 남극의 빙하가 다 녹아내리도록 울어야 한다
아침부터 온종일 설레발치며 몸이 녹아나도록 뛰어다녔는데 가시적인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고 불려들어가 복장이 터질 만큼 깨진다. 잔뜩 오그라져 있는데 까마득한 후배가 치고 올라온다. 무조건 싸잡아서 ‘꼰대는 좀 비키라’라고 몰아치며 대놓고 무시한다. 설 곳이 없다. 당연히 앉을 곳도 없다. 힘이 없다. 울고 싶다. 어디서 울어야 하나. 실컷 울어 젖힐 곳이 없다. 세상은 무섭다.
술을 마신다. 술잔을 끌어당겨 속이라도 시원하게 자신을 쏟아내고 싶다. 후배에게 치이고, 위에서 짓누른다고 쏟아낸다. 전세금 올려달라는 집주인을 소환하고, 아직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자식을 불러 앉힌다. 날마다 술타령이라며 세모눈을 뜨는 마누라를 씹는다. 술이 참 쓰다. 이쯤 되면 술은 눈물이다. 세포 하나하나에 차오르는 독배이다. 처절한 통곡이다. 남자들은 감당하지도 못할 술로 운다.
미시령 아래에서 울고 있다는 이상국 시인. 만나보고 싶다. 시만 읽을 게 아니라 그 속을 꼭 들여다보고 싶다. 남자들을 향해 이런 시를 쏘아대는 그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다. 전지전능한 신이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 눈물 자국을 안 보이려고 /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 이상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에서
남자들은 딱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한다. 태어날 때 울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지나간 세월까지 불러들여 울고, 나라를 빼앗겼을 때 세상을 다 잃은 듯 땅을 치며 통곡해야 한단다. 남자는 언제나 강해야 하고, 한 집안을 책임져야 한단다. 그래서 울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여기에 ‘아버지’라는 직함까지 얹어지면 남자는 무쇠 팔, 무쇠 다리를 가진 무적의 철인 로봇 태권브이가 되어야 한다. 늘 앞장서서 가족을 지키는 방패가 되어야 한다, 눈물을 흘려서는 남자・아버지가 될 수 없다. 세상의 남자들은 죽고, 또 죽는다.
남자들은 사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산다. 짓눌린 어깨 탓이다. 텔레비전을 다 부숴버리고 싶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노래를 틀어대며 힘들어도 ‘처자식’ 생각에 몸을 일으켜야 한다고 떠들어댄다. 아무도 실컷 울라고 말하지 않는다.
좀 남자도 울게 하자. 아무 때나 속이 시원하게 울게 내버려 두자. ‘카타르시스’라는 외래어까지는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우는 남자에게 손가락질은 하지 말자.
프랑스 철학자 루소Jean-Jacques Rousseau도 울어야 한다고 했다. 무조건 울고, 무수히 울고, 시시때때로 울고, 모든 것에 앞서 울고,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울라고 했다. 예수도 울면서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배고프다고 울고, 혼자 운전하다가 울고, 덥다고 울고, 후배가 대든다고 울고, 자다가 울고, 어깨가 무겁다고 울고, 울다가 울어야 한다.
독일 사람들은 ‘남자가 울어야 그 가정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아프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그들은 이웃과 더불어 맥주잔을 마주 놓고 펑펑 울면서 속을 털어놓는다고 한다. 그들은 웃고 살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우는 것이다.
실컷 울고나면 속이 시원해지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무겁고, 또 무거운 슬픔, 억울함, 심적인 고통에 빠져 있을 때 좌고우면할 것 없이 큰 소리를 내며 실컷 울어야 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울어서 치료하는 방법이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울어서 마음에 쌓인 어두운 감정을 쏟아내면 자율신경이 안정 상태를 보인다고 한다. 토호테 아리타 히데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울음 치료는 뇌를 안정적으로 재정비하는 효과를 보이며, 암환자들의 면역력이 높아지고 암세포가 줄어들었다’라고 한다.
남자들은 울어야 한다. 울어서 마음에 쌓여 있는 절망이나 허무, 울분과 슬픔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말끔하게 씻어내야 한다. 울어서 깨끗이 비워낸 마음에 삶의 활력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아야 한다.
남자들이여, 실컷 울고 당당한 걸음으로 이상국 시인의 시를 읊으며 집으로 가자.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 이상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