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참 좋은 인연이었습니다

by 힘날세상

새벽녘이었을까. 느긋하게 새벽잠을 즐기고 있다가 어디선가 호통치는 것 같은 소리에 잠이 깼다. 누군가에 이끌리는 듯한 기분으로 거실로 나왔다. 발코니를 넘어 거실 깊숙이 파고 들어온 불빛이 괴괴하다. 무심코 커튼을 걷고 발코니를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등줄기를 타고 짜릿한 기운이 흘러내린다. 발코니에는 가을이, 살아 있는 가을이 오롯이 앉아 있지 않은가. 한 번도 붉은빛으로 물들지 않았던 단풍나무가 참으로 화려한 빛깔로 자신을 물들이고 있다. 화분에 갇혀 제대로 자라지도 못했던 그는 좁은 감옥에서 도를 닦는 수행자로서의 시간을 견디어 내고 파안대소하는 노승이었다.


벌써 30여 년도 지난 어느 봄날, 내장산 금선계곡을 내려오다가 우리는 운명처럼 만났다. 그는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듯 실오라기 같은 몸뚱이에 여리디여린 두 잎을 힘겹게 밀어 올리고 있었다. 무엇에 걷어챘는지 희멀겋고 가녀린 뿌리를 다 드러낸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곧바로 말라비틀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흙을 긁어모아 뿌리를 감싸 안았다. 이마에 동여맸던 손수건을 풀어 정성스럽게 묶었다. 상처를 치료하는 간호사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인연을 맺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면서 몸통도 어디에 내놓을 만큼 튼튼해지고 굵어지는 동안, 단풍나무는 한 번도 고운 얼굴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볕도 잘 들지 않고, 환기도 잘 안 되는 척박한 환경 탓이었는지, 여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푸른 이파리를 다 떨구어버리고 알몸으로 여름을 견디어냈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까지 이파리가 남아 있었을 때도 색동옷을 입기는커녕, 이파리 끝부터 볼품없이 말라버리기 일쑤였다. 서릿발을 머금어 세상을 노랗게 덮어버리는 국화 옆에서도 그 앙상한 몰골이 부끄럽지도 않은 듯이 당당하게 가을을 보냈다. 조금도 샐긋하지 않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로 세상에 맞서고 있었다. 봄, 가을이면 화분의 흙을 갈아주고 무성하게 자란 뿌리를 정리해 주는 것으로 소임所任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나를 향한 자란자란한 질책의 눈빛이었다. 그것은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나무는 가을이 되어 온도가 내려가면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밖을 향해 열어놓았던 모든 문을 닫는다. 스스로 떨켜 층을 만들어 이파리로 가는 영양과 물을 차단한다. 녹색의 엽록소는 부서지고 녹색 엽록소에 눌려있던 다른 색의 색소가 드러나는 것이 단풍이다. 이파리가 품고 있는 성분에 따라 적赤, 황黃, 등橙, 갈褐의 색을 보이게 된다. 단풍은 세상을 향한 성장을 멈추고 내면을 키우려는 나무의 지혜로운 산물인 셈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자기성찰인 것이다.


30년 만에 그가 내어놓은 세상은 황黃·홍紅·등橙이 어우러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펼쳐져 있다. 이파리를 다 떨구어 버린 채, 투박한 껍질로 자신을 덮어가며 안으로 다져 왔던 세상을 온새미로 드러내고 있다. 단풍나무는 온 힘을 다해 외치고 있다. 30년을 짓눌렸던 가슴 저림이었을까, 울분이었을까. 단풍나무는 커다랗고 오롯하게 서 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저 30년 동안 참고 참아가며 다지고 다져서 내놓은 그의 세상을 바라볼 뿐이다.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그가 30년을 갈무리하며 자신의 세상을 키우고 있을 때, 나는 나의 내면은 살찌우지 못하고, 겉으로만 화려한 세상을 찾아다니는 탐욕에 젖은 걸음을 걷고 있었지 않은가. 자신이 움켜쥔 것을 버릴 수 있어야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튼실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그는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당당히 거느리고 살아가는, 나와 똑같이 의미 있는 생명체이다. 내가 어떻게 대하든 하나의 불평도 하지 않고, '나 여기 있다'라며 슬몃슬몃 몸을 흔들어대는 살아 있는 생명체 말이다. 동시에 그는 나의 훌륭한 선생이다. 30년 동안 내면을 다지고 나서야, 자신을 무시하고 등한시했던 내 앞에 홀연히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낸 가멸찬 선생. 부끄럽다.


나는 그에게 큰 죄를 지었다. 뿌리가 뽑힌 채 신음하고 있던 그때, 나는 그를 그 자리에 심어주었어야 했다. 그를 집으로 데려온 것은 나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내장산의 넉넉한 품에서 자기 뜻대로 30년의 세상을 살았더라면, 그는 남부럽지 않게 자랐을 것이며, 해마다 명성을 날리는 내장산 단풍의 주역이 되었을 것이다. 나 때문에 그는 키를 키워 세상을 내려다보지도 못했고, 몸을 불려 세상을 호령하지도 못했으니, 죽어가는 그를 살렸다는 어설픈 변명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으리라.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희생을 통해서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으로만 살아온 갈가위 같은 나에게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큰 깨우침을 주었다.


나는 이제 그를 화분이라는 좁은 세계를 벗어나, 그가 원래 가졌어야 할 거대한 숲의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려고 한다. 넓고 깊은 숲의 세상에서 그가 보여주는 당당한 삶의 자세를 배우고, 가르침을 받으려고 한다. 내장산 금선계곡 어름으로 그를 돌려보내는 날, 그 앞에 정중하게 절을 올리고 나의 잘못을 빌려고 한다. 그리고 그가 깨우쳐 준 삶의 방정식 위에 나의 진정 어린 마음을 울려놓을 것이다.


“당신은 훌륭한 스승이었습니다. 그리고 참 좋은 인연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