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그 자리에 그리움으로 있다.
장맛비가 물러나더니 그 자리에 폭염이 가득 들어찼다. 아침부터 달아오른 서재에 앉아 있는데 기운이 늘어진다. 여름이 다 그렇지 않으냐고 마음을 달래며 노트북을 열었다. 자판을 두드리며 글감을 다져가는데 문득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전에 올랐던 산 중에서 좋았던 산에 올라가고 싶어, 아니면 미답의 산을 올라가고 싶어?
점심을 같이 먹던 친구가 불쑥 물었다.
”어느 산에 오르는 것보다 어떤 마음으로 오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
”그런 선문답 같은 소리 하지 말고. “
”예전에는 새로운 산을 찾아다녔지. 전국의 산을 다 올라보겠다고 호기를 부리며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
평생을 살았던 전주를 떠나 아무 연고도 없는 경기도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 곁에서 살겠다는 마음이었으나, 기실은 낯선 곳에서 느끼는 새로움과 긴장감을 즐겨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객창감이라고 할까. 나그네의 마음 같은 것 말이다.
이삿짐을 풀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주변의 산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높은 산이 많지 않은 지역이라서 300m 정도의 산길을 걷게 되었다. 낮은 산을 걷는 걸음에도 꿈틀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전주에 살면서 이름을 많이 들어봤으나 선뜻 산행에 나서지 못했던 산을 오르는 즐거움도 만끽하였다. 수리산, 광교산, 서운산, 칠현산, 만뢰산, 무갑산, 태화산, 흑성산, 태조산 등.
서울 둘레길을 따라 걸었고, 관악산 6봉 능선의 바위에 힘겹게 매달리기도 했고, 북한산 탕춘대 능선, 수락산, 불암산을 올랐다. 산길은 언제 걸어도 좋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산행이 주는 치유의 선물이다.
블로그에 써놓은 산행기록을 볼 때가 많다. 그때마다 산에 대한 그리움이 돋는다. 땀 흘리며 걸었던 산길이 그대로 다가온다. 헉헉거리던 숨결마저 그대로 느껴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 같은 느낌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움이다. 걸어보지 않은 산길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고, 기대감이라면, 이미 걸었던 산길은 그리움이다.
전주에 살고 있는 분의 완주 대부산 산행기를 보았다. 대부산은 원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몸을 일으키는 산으로 까칠한 암릉이 제법인 산이다. 조망이 좋아서 주변 일대의 산들을 다 바라볼 수 있는 훌륭한 조망을 자랑하는 산이다.
그분이 게시해 놓은 사진에서 눈에 익은 주변 산들을 보게 되니 가라앉아 있던 그리움이 솟구친다. 운장산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금남정맥의 봉우리들, 복두봉을 지나 구봉산으로 이어지는 호남 알프스의 산등성이, 운암산, 동성산, 써레봉, 안수산의 봉우리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산등성이, 갈맷빛으로 줄기차게 이어지는 능선, 만산홍엽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의 골짜기와 하얀 눈이 덮고 있는 겨울 산의 근육질의 봉우리들.
전주에 살 때는 틈만 나면 올라갔던 그 많은 산군山群이 이제는 그저 바라보아야만 하는 마음의 봉우리가 되는 걸까. 이제 정녕 꿈에나 그려보아야 할, 손에 닿지 않는 산일 뿐인가. 이제는 작정하고 찾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산봉우리가 되었는가. 잃어버린 봉우리가 되었을까. 불쑥 그리움이 일렁인다.
멀어져 가는 황혼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고 온 고향의 산들이 오르고 싶다. 아내는 향수병이라고 진단했다. 오직 그 산에 오르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라고 말했다. 지난달에 전주에 간 김에 오랫동안 같이 산행을 하고 있는 ‘산정 산우회’ 팀원들과 모악산을 걸었다. 300번 이상 올랐던 모악산이다. 그런데 불과 2 년 만에 오르는 데도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눈을 감고 걸어도 된 정도로 마음 깊이 들어와 있는 산이어서일까. 걷는 걸음 하나하나가 편안하고 정이 듬뿍 담긴다. 사람은 옛사람이 좋다고 같이 걷는 산우山友들이 좋았고, 그만큼 걷고 있는 모악산이 좋았다. 산도 옛 산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산을 오르면 어떠랴. 어떤 산길을 걷는다고 산길을 걷는 걸음에서 힘이 빠진다면 옳은 산행은 아니다. 산은 이름으로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산은 나의 걸음으로 걷는 것이고, 나의 걸음에서 산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몇십 년을 산의 너른 품에 안겨 살아보니 어느 산에서든지 산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내가 살았던 고향에 있는 산의 산길은 뭉실뭉실 그리움을 쏟아내고 있으니 어찌할까.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산이 있는 것은 마음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그 무엇이 아직 살아 있는 까닭이다. 내가 다시 걸음해야 할 이유가 있고, 그만큼 내 마음에 향수가 담겨 있음이다. 내 마음 어디쯤에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 골짜기 안으로 몰려다니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산등성이에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움이 솟아나고 있음이다.
댓재에서 백복령까지 30km가 넘는 산줄기를 14시간이 넘게 걸었던 날, 앉은자리에서 나는 허물어져 백복령이 되고 말았던 날, 산길이 더 이상 산길이 아니었던 날, 산을 완전히 버렸다. 산은 산으로 남아 있을 뿐이라고, 내 발걸음은 이제 산으로 들어서지 않는다고 냉정하게 돌아섰다. 산길은 나의 바깥으로만 이어질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산길은 무미건조하게 말라비틀어진 나무뿌리일 뿐이라고 내쳐버렸다. 그러나 일주일 후 나는 지리산을 걷고 있었다. 연하선경의 손짓을 뿌리치지 못한 까닭이다. 아니, 산은 내 안에서 살아 있었던 것이다.
고향을 떠나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낯섦이 풍겨내는 새로운 세상의 향기가 삶의 끝부분에 힘을 실어줄 만큼 기대감을 준다고 해도, 고향의 울타리는 순간적인 기분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볍게 들어마실 수 있는 한 컵의 과일 주스가 아니다. 얼굴을 찌푸리며 코를 막고 고개를 흔들며 겨우 한 모금 마실 수 있는 쓰디쓴 탕약이다.
같은 이유로, 마음으로 걸었던 산은 쉽게 지울 수 있는 휘투루마투루 아무렇게나 써 갈긴 낙서가 아니다. 독수리에게 쪼이고 쪼여도 새살이 돋아나는 간을 가진 프로메테우스이다. 잊히지 않는 세상이고, 항상 일정하게 뛰고 있는 심장이고, 온몸을 돌고 있는 핏줄로 남아 있는 존재이다.
산은 산으로 남아 있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절대 지울 수 없는 어머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