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탔다. 한낮이어서 그런지 버스에는 승객이 거의 없었다. 뒷좌석에 앉아 어젯밤부터 머릿속에서 궁굴리고 있는 글감의 가닥을 차근차근 추스른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글감이 풀어지지 않아서 며칠째 글의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답답하다. 사람들이 사는 행태도 복잡하지만, 그 한 가닥을 뽑아서 글로 써내는 것도 그 이상으로 복잡하고 어렵다. 글쓰기는 분명 어려운 일이다.
‘꼰대’라고 손가락질받는 노인들의 삶에 골돌 하느라 창밖에 두었던 시선을 거두어들이다가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듯한 빈 의자를 보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엉덩이로 비빈 탓에 주름이 많이 져 있다.
저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얼마나 심한 몸부림을 쳤길래 저렇게 깊은 주름이 패었을까. 새벽 시장에 장사하러 가기 위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집을 나선 아주머니였을까. 밤새워 일하고 첫새벽에 퇴근한 젊은이였을까. 실직 몇 년만의 일자리를 얻어 일터로 나가던 중년의 가장이 들숨 날숨을 흘렸던 자리였을까. 맞벌이하는 딸을 대신하여 손자를 키우고 있는 할머니가 아파서 칭얼대는 어린 손자를 등에 업고 병원에 가기 위해 앉았던 것일까.
버스에 나란히 놓여 있는 의자는 어쩌면 삶의 애환이 시작되는 곳일 것이다. 그 좁디좁은 의자에 잠시 엉덩이를 내려놓았던 그 누군가는 그 잠깐의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까르르까르르 까지는 아니어도 슬그머니 피어나는 희미한 웃음을 지었을까. 아무런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았어도 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짓눌림의 시간이었을까.
다리를 건너기 전에 있는 정류장은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재래시장이 있는 곳이어서일까. 한꺼번에 올라탄 노인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자글자글한 주름이 잡힌 너스레를 펼쳐놓는다.
“요즘은 시장에 나와도 도대체 뭘 살 수가 없어.”
“맞아. 만 원은 돈도 아녀.”
물가 타령을 하는 노인네들이 늘어놓은 하소연의 틈을 비집고, 제대로 면도도 하지 않은 까칠한 수염이 지저분한 남정네들이 끼어든다.
“나라가 왜 이 모양이여? 사람들이 왜 이렇게 죽는지 모르겠어”
“젊은 선생은 죽고, 또 다른 선생은 학생한테 맞고. 거 참, 세상이 말세로구먼.”
“사람들이 위아래가 없어. 늙은이들은 살 수가 없게 되었다고.”
노인들이 몇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몇 마디를 흩뿌렸으나 이내 입을 다물었다. 버스는 다시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다. 노인들의 뒤를 따라 같이 올라탄 햇살이 빈자리를 차고앉는다. 햇살은, 참 말간 햇살은 가장자리가 닳고 닳은 그 볼품없는 의자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햇살은 승객들이 버스 밖 세상에 흩어 놓았던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처 챙겨 오지 못했던 사소한 마음 말이다.
버스는 창밖의 세상을 끌어당겼다가 뒤로 밀어내기를 반복하며 가끔은 덜컹거리기도 하면서 무심하게 달리고 있다. 자신들이 걷어오지 못한 마음이 굼적굼적 뒤따라 온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심드렁한 얼굴로 손에 든 검정 비닐봉지나 아금박스럽게 움켜쥐고 있을 뿐이다.
응급실이 있는 병원 앞 정류장에서 중년의 아주머니가 탔다. 손에 든 카드를 단말기에 찍었다. 카드를 인식했다는 신호음이 울리고, 버스는 아주머니가 앉기도 전에 출발했다. 아주머니는 허둥지둥 빈 의자에 앉았다. 그 바람에 가지런하게 펼쳐져 있던 햇살이 조각조각 부서진다. 초점을 잃은 듯 멍한 눈길로 앉아 있는 아주머니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에서 역한 냄새가 났다. 내 앞자리에 앉았기에 나는 무방비 상태로 그 냄새의 연이은 공격을 받아내야 했다. 아주머니는 몸빼 바지에 빛이 바랜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소매 끝은 제법 헤어져 있다. 뒤축이 상당히 닳은 고무로 된 슬리퍼는 왼쪽 엄지발가락 부분이 구멍이 나기 직전이었다. 힘겨운 삶의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무슨 사연을 안고 있는 걸까.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을까. 응급 상황에 서두르느라 옷차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늘 술에 절어 살면서 식구들을 큰소리로 윽박지르기나 하던 남편, 제 몸이 멍들어가는 줄도 모르면서 술을 밥으로 삼았던 그 밉고 미운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을까. 생각 같아서는 그냥 내버려 두고도 싶었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서둘러 구급차를 불러 허겁지겁 데려온 것일까.
“위출혈이 있었어요. 급하게 응급조치를 하여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나 앞으로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앞으로는 술 마시면 안 됩니다.”
의사는 고개를 흔들고 있었으나, 급한 상황은 넘겼다는 말만 귓가를 파고들었을 것이다..
고비를 넘겼다는 말에 병원에서 사용할 물품을 가지러 가는 걸음일까. 아주머니는 그래도 남편이 가엽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가장으로서 몸을 던져 땀 흘려 일하면서도 가족들을 건사했던 남편. 둘이서 악착같이 모아 손바닥만 한 건축업체를 꾸려 세상이 다 제 것인 양 열심히 일했었는데, 어느 날 밀린 대금을 받지 못하고, 경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파산하게 되어 빚더미에 앉게 되었을까. 그때부터 남편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술로 달래고 있었을까. 그런 남편이기에, 아니 그런 남편이 아니었다고 해도 아내로서 어찌 쓰러진 남편을 그냥 두고 볼 수 있었을까.
버스는 승객들이 만드는 일상적 공간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은 창밖 세상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최두석 시인이 노래한 『성에꽃』이란 시를 버스에 탄 사람들은 떠올리고 있을까.
새벽 시내버스는 /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 엄동 혹한일수록 / 선연히 피는 성에꽃 / 어제 이 버스를 탔던 / 처녀 총각 아이 어른 /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 입김과 숨결이 /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 낸 /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 다시 꽃 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 성에꽃 한 잎 지우고 / 이마를 대고 본다 /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나는 지금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까. 아주머니의 삶을 내 멋대로 재단하고 있는 것은 어떤 망령에 휘둘리고 있는 것인가. 내 뒤에 앉아 있는 젊은 여성은 나를 형편없는 꼰대로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저마다의 얼굴로 버스에 탄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앉아 있기도 하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걱정거리를 안고 있어도 밝은 얼굴을 지으려고 하고,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기도 하다. 버스는 그대로 우리들의 삶이 비치는 공간이고, 무수한 상념들을 키우는 인큐베이터 같은 곳이기도 하다.
나를 내려놓은 버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휑하니 내달린다. 아직 버스에는 내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내가 꽂아 놓았던 시선과 나에게 꽂혔던 시선은 버스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