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마다 불빛이 부딪혔다. 어둠의 사이마다 길을 내고 있는 것. 호이안은 불빛으로 살아 있었다.
An Hoi Bridge 앞에 서 있었다. 황혼이 내릴 무렵 투본강은 일제히 불을 밝혔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가게마다 찬란한 등을 내 걸었다. 덩달아 가로등도 희미한, 그래서 애절한 등불을 하나씩 들고 늘어섰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놓았다.
한낮에 뜨겁게 달아올랐던 강변도로는 터진 봇물처럼 밀려오는 사람들에 짓밟히면서도 강물에 반영된 호이안의 시가지를 자꾸만 걷어 올렸다.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밤의 호이안은 강물에 빠져서도 화장을 지우지 않았다. 밤은 호이안의 품 안에 있었다. 또는 호이안은 부어내리는 빛발이 가득한 밤이었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간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는 조금 불편한 듯한 좁은 골목으로 사람들은 몰려갔다. 몇 겹의 줄을 이룬 사람들의 걸음이 멈춘 곳에 작은 식당이 있었다. 인도 식당 MAZZI. 골목 입구에 들었을 때 커리의 향이 풍긴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문득 중국 대련의 커리 전문점이 생각났다. 亞橋ABASHI CURRY 大連店.
대련의 밤거리가 호이안의 좁은 골목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 수 있는 것은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다. 호이안의 전통 음식을 밀어내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을, 호이안에서 인도 음식점을 찾아가는 발걸음을 오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렇게 그리는 여행 그림도 하나의 분명한 개체일 것이니까.
좁은 골목이 웅크린 어깨를 펴 길을 조금 넓히는 곳에 그녀의 작은 노점이 있었다. 하얀 모자로 자신이 살아온 삶의 주름살을 가리고 손바닥만 한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 15인치 노트북만 한 작은 나무 상자 위에 찹쌀떡 같은 것을 몇 개 올려놓고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다. Bánh xoài 망고떡. 흰색이고 하얀 고물이 묻어 있는 것이 영락없는 찹쌀떡이다. 통영의 꿀빵이 생각났고, 경주의 찰보리빵이 떠올랐다. 아무나 만들어서 같은 이름으로 팔 수 있는. 나중에 구시가지를 돌아다니다가 알았다. 두 개 30,000 동. 싸다. 1.500원이면 싼가? 저것 팔아서 자식들 먹이고 입혀서 학교에 보냈을 것이다. 좌판에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사람은 다 그렇게 산다.
씨클로 부대가 지나간다. 단체 손님을 태운 모양이다. 우리말이 베트남어를 이겨버리는 호이안 올드타운. 경기도 다낭시 호이안구라는 이곳에서 나는 걸어서 나그네가 된다.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팽팽해진 길거리는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는 씨클로 운전자들은 아슬아슬한 몸놀림으로 사람들의 물결을 헤쳤다. 여유롭게 보였으나 그들의 얼굴은 긴장감이 몇 겹을 두르고 있었다. 인력거꾼이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와 무엇이 다를까. 저들이 하루의 일을 마치고 맛난 음식을 사가지고 들어갔을 때, 가족들이 환한 얼굴로 맞아주기를 바랐다.
투본강의 어둠은 내리기도 전에 불빛이 되었다. 둥근 불빛을 하나씩 걸고 작은 배들이 몇 겹의 행렬을 지었다. 승선권을 내밀기 바쁘게 사공은 노를 저었다. 커다란 등불 하나를 매달고 강물을 거스른다. 사공의 등 뒤로 짙은 노을이 잿빛 하늘을 덮었다. 아이가 소원 등을 내밀자 사공이 불을 붙여준다. 눈을 감고 등불을 물 위에 내려놓는다. 대만 스펀의 천등을 생각한다. 네 방향에 소원을 적어 날리면 그래, 소원이 이루어질까. 사람들의 헛된 욕심과 상술이 잔뜩 버무려진 행태일 뿐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소원배를 탄다. 소원 등을 내려놓는다.
An Hoi Bridge 가운데 있는 조형물에서 흐르는 강물을 본다. 불빛으로 단장을 한 강물. 호이안을 얼싸안고 흘러서 관광객들을 홀리는 여우꼬리 같은 투본강은 소리 없이 호이안의 밤을 흐른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호이안의 밤을 투본강은 흘러 삶의 시간을 쌓아 세월이 된다.
An Hoi Bridge를 건넌다. 더 진한 호이안의 밤으로 들어간다. 다리를 건너면 밤을 따라 펼쳐지는 야시장이다. 길 가운데는 노점이 차지했다. 사람들은 좁은 통로를 따라 호객행위를 떨쳐내며 걷기도 하고, 값을 깎아가며 흥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그게 낯선 곳으로 떠나온 이유 중 하나이니까.
할머니가 파는 물건이라고는 생수 몇 병이 다였다. 다 합해도 몇 만 원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곁에 서 있는 노인은 남편이 분명해 보였다. 주름투성이의 얼굴과 손을 보면서 나는 붙박이처럼 서있었다. 얼마 후의 내 모습을 그려보며 마음으로 바라보고 서있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스콜이다. 비를 피할 방법이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노인네의 처마밑으로 들어섰다.
"신세 좀 지겠습니다"
번역 어플을 사용해 봤자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엉거주춤한 표정을 지었다.
" Không sao đâu, tạnh mưa là đi ngay 괜찮아요. 비가 그치면 가세요" 노인은 유창한 손놀림으로. 폰의 자판을 두드렸다. 부끄러웠다. 속단해 버린 나는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얼마 후 비는 거짓말처럼 그쳤다. 500ml짜리 6병이 묶인 물을 샀다. 5만 동이다. 들고 다니는 불편은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도망치듯 가게를 나왔다. 불도 제대로 밝히고 있지 않은 노인의 가게. 불빛으로 휘두른 호이안은 빛이 아닌 마음을 밝히고 있기도 했다.
밤이어서 호이안이 되고, 불빛으로 호이안은 호흡을 한다. 호이안은 불빛으로 치장한 밤의 치맛자락을 펼쳐 자신 들어 세상을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