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오자이를 입어도 나는 나일뿐이다

by 힘날세상


사람들은 밤을 좋아하는가. 밤이 사람들을 부르는 것인가.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많다. 베트남 전통옷 아오자이를 빌려 주기도 하고 판매도 하는 집이다. 손님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참 친절했다. 잡은 물고기에게 밥을 주지 않는 법이지만, 이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인데 베트남 사람들은 부모에게도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에도 우애가 좋다고 한다.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Áo dài)는 아오(ao 옷)와 자이(dai 길다)가 합해진 말로 "긴 옷"이란 뜻이라고 한다. 남자들이 입는 아오자이(Áo dài)는 보통 아오 테(Áo the) 혹은 아오 검(Áo gấm)이라 불린다. 테(the)는 얇은 비단을, 검(gấm)은 무늬를 두드러지게 짠 비단이란 뜻이어서 남자들의 옷은 비단으로 만든 옷이라고 할 수 있다.





아오자이를 입었다고 베트남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특별히 다른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내가 아오자이를 입었는지도 모르고 돌아다닌다. 그래도 딸의 성화에 입어본다. 어색하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내가 아오자이를 입고 돌아다니고 있다. 호이안에서.


不敢請이나 固所願이라고 했던가. 딸의 강권을 핑계 삼아 기다렸다는 듯이 아오자이를 입었다. 물러서고 피하려고만 하는 늙은이가 아니고 싶었다. 젊은이들처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민망한 레깅스나 허리토막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은 냉큼 받아들이는 것은 영 자신이 없다.


호이안의 거리는 콩을 볶는 가마솥이었다. 뜨거워진 콩이 이리저리 부딪치고 톡톡 튀는 것처럼, 사람들의 어깨가 서로 부딪치고 입냄새가 풍길 정도로 얼굴이 맞대지기도 했다. 사람이 많았다. 나는 농(그 특유의 베트남 모자)을 쓰고 있어서 그렇게까지 가까워지지는 않았지만 호이안의 올드타운은 참으로 북적거렸고,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를 걷고 있는 것처럼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었다. 좌판을 벌이고 있는 상인들도 거의 한국인이었다. 웬만한 한국말은 거침없이 구사하였고,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였다.


그 틈바구니에서 나는 아오자이를 입고 돌아다녔다. 나는 애써 베트남 사람이라고 내세웠고, 베트남 상인들은 어떻게든 한국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그들은 아오자이를 입고 돌아다니는 나를 조금도 베트남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치 전주 한옥마을에서 그 근원을 알 수 없도록 변조한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외지사람으로 단정 지었던 것처럼 상인들은 내 옷소매를 잡고 한국어로 호객행위를 했다. 그리고 길거리를 가득 메운 한국인들은 소 닭 보듯 무관심했다.


아오자이를 입고 돌아다닌다고 해서 아무런 눈길도 받지 않았다. 그냥 자기만족일 뿐이었다. 웃기는 것은 나는 내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아오자이를 입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나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아오자이를 빌려 입었을까. 입는 순간의 그 약간 어색함과 거울 속으로 나타난 전혀 다른 모습을 보는 그 짧은 시간의 긴장감 때문이었다. 나중에 사진 속에서 어색하게 웃음 짓는 자신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그 정도일 뿐이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아오자이를 입고 앞에서 걸어가는 손주들을 보면 좀 다르게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아이들도 몸에 배지 않아서 그런지 처음 입을 때의 신선함은 다 버리고 불편하다고 했다.


아오자이를 입고 있으면서 몸으로만 흉내를 내는 문화는 가식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문화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브런치에서 많은 글을 읽었다. 자극적이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글들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을 보았다. 결혼생활의 갈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갑자기 마주하게 된 시댁의 문화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들을 토로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네, 네 하였지만 머릿속에서는 온갖 험한 생각을 하고 무서운 말을 하고 있었다.


호이안에서, 남의 나라 옷 아오자이를 입었지만, 속은 단 하나도 베트남 사람이 아닌 채로 낯선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한국의 아내들과 며느리들을 생각했다. 그들과 마주 서 있는 시어머니들을 생각했다. 아오자이를 입었다고 내가 베트남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이, 결혼을 했다고 해서 시집 식구가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아오자이를 벗어버리면 그만인 하나의 '옷'일뿐이다. 그런 나 한국의 아내와 며느리들에게 시댁과 시부모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일까.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짓눌리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앞서 가던 손자가 내 손을 잡아 끈다.

"할아버지, 스피너 한 개 사주세요. 제가 정말 멋지고 좋은 디자인을 발견했거든요."

나는 아오자이도 벗어던져 버렸고, 한국의 아내와 며느리들도 다 떠나보냈다. 그리고 손자가 이끄는 노점으로 가서 스피너 한 개를 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