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바람은 햇볕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 뒤로 파란 하늘이 잔디밭까지 내려욌다. 그렇게 호이안은 가을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마사지가 끝나고서야 알았을 뿐이다.
동남아 나라들 여행할 때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이 마사지이다. 몸이 피곤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사지 가격이 우리나라의 절반 가격이기 때문이다. 치앙마이를 돌아다닐 때에는 1일 1 마사지를 하고 다녔었다. 매일 가는 가게로 다녔더니 주인이 가격도 할인해 주었다.
"할아버지, 우리는 언제 마사지하러 가요?"
"저는 꼭 마사지를 해야 해요. 친구들에게 그 느낌을 말해주기로 했단 말이에요."
아이들의 성화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빗발친다.
우리는 이미 여행 준비를 하면서 점찍어 놓은 스파가 있었다.
알라만다 스파&네일!
주인이 한국인이어서 카톡을 이용하여 우리말로 소통하는 것이 좋고, 어느 스파나 마찬가지이지만 픽업과 드롭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이곳이 원래 리조트였는데 스파로 변경하여 경치가 최고이다. 또한 그에 못지않게 직원들의 친절도는 최고이기 때문이다.
호텔 앞에 픽업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분명히 기아 소렌토라는 렘블렘이 달려 있는데 차의 크기는 아담하게 작다. 그런데 새 차이다. 그리고 실내가 아주아주 깨끗하다. 차문에 써놓은 ALLAMANDA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젊은 기사는 뜨거워진 도로를 달려 어느 한적한 시골 같은 곳에 차를 세웠는데 우리는 한 목소리로 '우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뜨거운 햇볕 속으로 발을 디뎠다. 산뜻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여성분들이 웃음으로 맞이하며 안내했다.
잔디밭으로 난 좁은 길에는 넓적한 돌들이 발디딤판처럼 놓여 있었는데 중간에 벽이 없이 지붕만 있는 호텔로비 같은 곳을 지나 에어컨이 만들어 놓은 천국으로 인도했다. 차를 마시면서 원하는 오일을 선택하고, A4 크기의 종이에 마사지받으면서 필요한 내용들을 체크하게 한다. 모든 과정이 너무 심하다고 할 정도로 친절하였고, 웃음 띤 얼굴이었다. 절대 가식이 아니었다.
마사지를 받다가 9살 손녀는 쿨쿨 자버리고, 7살 손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어떻게 마사지하는지 똑똑히 지켜봤'다고 한다.
"엄마가 저희를 위해 애쓰잖아요. 그래서 엄마에게 그대로 해주려고 잘 봤어요."
한 시간 동안의 시간은 10분처럼 빨리 흘러갔다. 우리는 식당으로 안내를 받았고, 망고.수박 주스와 과일, 와플, 잘 만들어진 샌드위치를 올려놓은 간단한 상차림을 받았다. 레스토랑의 요리사가 잔뜩 멋을 부린 듯 커다란 접시 위에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이 놓여 있었다.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창 밖을 바라보는데 그때, 어느덧 가을이 잔디 위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파랗게 터질 듯한 하늘은 모든 것을 무릎 꿇렸고, 저도 모르게 파랗게 물들어버린 바람은 창문을 두드리며 가을의 노래를 불렀다. 사방이 창문으로 되어 있는 식당에 앉아 가을이 만들어내는 시간과 풍광과 이야기들에 빠져들었다.
아무 소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태초의 고요 그대로였다. 우리는 재빨리 먹고 마시고 나서 가을이 내려앉는 햇볕의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갔다. 잔디의 감촉이 좋다. 발바닥 전체로 푹신한 느낌이 밀려들었다.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 앞에 그네가 하늘을 품고 매달려 있다. 아이들은 그네를 타며 가을을 즐겼다. 나는 잔디에 앉아서 햇볕과 바람, 그리고 그들이 슬몃슬몃 쌓아놓는 가을과 한 몸이 되어갔다. 뜨거운 듯 통랑한 햇볕, 산들산들한 느낌으로 휘감아오는 바람은, 가을이 시작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9월 그대로였다.
가을이 열대 지방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본다. 꽃이 피어있고, 하늘은 코발트빛을 두껍게 두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뭇가지를 지나 잔디에 내려앉는 햇볕에서 말갛고 통랑한 기운이 느껴졌다. 햇볕에 앉아 있을 때 따뜻하다는 느낌이 밀려드는 가을의 입김이 그대로 채워지고 있었다.
마음은 어디론가 빠져들고 있다. 수영장 너머로 나란히 놓여 있는 하얀 선베드, 그 뒤로 손에 손잡고 이어지는 방갈로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나무들이 이루어 놓은 작은 숲. 저 푸른 하늘을 어떻게 할까. 진분홍의 웃음을 한가득 흘리고 있는 이름도 모를 저 꽃나무 아래에서는 어떤 상념들을 펼쳐 놓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