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안의 황혼은 투본강을 따라 내려앉는다. 황혼이 찾아오건만 사람들의 걸음은 여전히 느릿했고, 마음은 올드타운의 여운에 그대로 젖어 있다. 모두들 자신을 숨겨두고, 호이안에서 호이안의 시간을 가다듬고 있다. 낯설지만 두렵지 않고, 혼란스러울 만큼 사람들이 몰려와 있지만, 그 북적거림이 동행을 하며 흥을 돋운다. 여행객들은 저마다의 걸음으로 호이안을 즐겨가고 있다.
하늘에 붉은 기운이 그 깊이를 더해 갈 때쯤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바람을 타고 밀려들어 온 어둠은 호이안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불러낸다. 호이안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부르던 노래, 그들의 가난하고 힘든 생활에서 피었던 사랑, 국제 무역항으로 떨치던 호사와 위엄의 시간들을 모두 일으켜 세운다. 밤이 소환하는 호이안의 지난 세월 위에서 거대한 쇼가 시작된다.
호이안 임프레션 테마파크 Cultural theme park HOI ANIMPRESSION에서 벌어지는 초호화 공연 호이안 메모리즈 쇼 To Hoi An Memories Show는 호이안의 밤하늘에 자신들의 역사를 자신들의 색을 입혀 펼쳐 놓는다. 자신들이 걸어온 시간과 발걸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투본강의 한 자락에 웅장하고 화려한 춤사위로 내려앉는다. 하늘로 날아오를 듯 치켜 솟으며, 흐르는 강물 위에서 뜨거운 사랑을 이야기한다. 거대한 야외무대를 세워 놓고 그 무대를 꽉 채워버리는 500여 명의 배우들. 그들은 그대로 호이안의 시간이고, 호이안의 생생한 역사이다.
실내로 들어갔는데 객석은 야외에 마련되어 있고, 하늘의 별빛과 동무하며 서늘한 바람을 즐기고 있을 때, 흰옷을 입은 독특한 걸음을 걷는 여인네들로부터 공연은 열리기 시작했다. 정말 거대한 무대를 한 바퀴 돌아 흰색 아오자이와 농을 쓴 여인네들의 걸음이 멈출 즈음에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사람들은 깊숙이 가라앉아버린 호이안의 묵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기도 하고, 순진한 시골 처녀가 사랑에 빠져 대궐 같은 곳으로 시집을 간다. 거대한 결혼식이 열린다.
Song Of The Sea
2010년에 싱가포르에서 보았던 ‘Song of the Sea'라는 공연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잠자는 공주를 깨우려고 하는데 도중에 악마가 나타나서 자신을 과시하고 결국은 공주가 깨어난다는 줄거리이다. 화려한 조명과 분수, 레이저 광선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무대였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거대한 쇼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줄 모르겠다. 사실이 있고, 예술이 있고, 화려함 위에 격렬함이 더해진다. 잔잔하게 퍼지는 선율 위에 연보라의 서사(敍事)가 펼쳐질 때는 마음속에서 감동의 두근거림이 일었다.
섬에는 호텔도 있고, 상점들도 많았으며 그럴듯하게 보이는 음식점도 많았다. 한 시간쯤 전에 와서 여기저기 둘러보며 저녁식사도 하고 메모리즈쇼를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아쉬웠던 것은 돌아가는 교통편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여행객들은 밤을 좋아하는가. 불빛이 어둠을 밝히기 시작하면 호텔을 나서는 사람들. 특히 열대인 호이안에서는 그렇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햇볕을 피해야 하니까 말이다. 밤에 놀아야 하고, 밤을 따라 걷고, 세상을 즐겨야 한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다 보니까 공연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편이 마땅치가 않았다. 사람들은 많고 차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말 극적으로 그렙 택시를 잡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호이안은 밤이 깊어가고 있다. 숙소는 조용했고, 어떤 이들은 이미 잠이 들었나 보다. 온몸을 타고 흐른 땀으로 인해 깊은 밤에 수영장으로 갔다. 수영장에서 하루를 마감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