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갔으면 맛나게 먹어야지

by 힘날세상


호이안의 식당은 둘로 나뉜다. 에어컨이 있는 식당과 에어컨이 없는 식당. 물론 카페도 그렇다.


우리는 베트남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에 가서 그야말로 베트남 음식을 날것 그대로 먹어보기로 했다. 아오자이를 빌려주는 가게 사장님께서 추천해 준 식당. Cà Rốt Quán.

사장님은 Bánh xèo와 Cao râu를 반복해서 말했다. 그리고 '더워, 더워'를 우리말로 계속 얘기하는 것이었다. 폰에 구글 지도를 띄우더니 식당 위치를 표시해 주었다.

우리 숙소에서도 멀지 않았다. 햇볕만 아니라면 슬슬 걸어가도 될 거리다. 그러나 한낮에 걸어간다는 것은 이후의 일정을 다 접어야 할 판.


그러나 우리에겐 그랩 택시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 거기에 택시 요금이 완전 싸다는 거. 호텔에서 승차했는데 예상한 대로 가까웠다.


차에서 내렸는데 숨이 턱 막힌다. 덥다. 정말 덥다.


Cà Rốt Quán은 정말 작은 식당이었다. 탁자가 4개밖에 없는. 가정집 앞마당에 식탁 몇 개를 놓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우리가 들어서자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한다. 그런데 창문이 없다. 입구에 예쁜 꽃을 심은 화분을 진열해 놓았긴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그걸로 이 더위들 막아내지는 못할 터이다. 그래서 옷가게 사장님이 '더워, 더워'를 외친 것이었다. 에어컨이 없는 식당. 아무리 맛난 음식을 준다고 해도, 먹기도 전해 숨 막혀 죽고 말 거다. 유난히 더위를 못 견디는 일곱 살짜리 손자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기세더니 큰 소리로 외친다.


ㅡ 어, 여기 한국 식당이 있는데!

Hồ Lô quán. 호로콴 한국어로 크게 써놓았다.

ㅡ 에어컨도 있는 거 같아. 창문을 닫아 놨어.

손자는 벌써 호로콴의 문을 열고 있다.



Hồ Lô quán은 일단 천국이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시원한 공기가 한꺼번에 몰려와 쓱쓱 씻어내 준다.


ㅡ여기가 천국이네.

ㅡ엄마, 우리 여기서 먹어야 될 거 같아.


그런데 Hồ Lô quán은 호이안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식당이었다. 가득 차 있는 손님들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다. 직원이 2층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자리를 잡고 검색해 보니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음식을 내놓는 한국인을 위한 식당이다. 초록 검색창에서 자동 완성 기능까지! 굳이 정의해 보자면 호이안 한국인 맛집 정도?


이제부터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녀갔던 사람들이 추천하는 것을 주문해야 한다. 여느 맛집 탐방이 다 그렇듯이. 그래서 주문한 것은 타마린드 새우, 반 쎄오, 완탄 튀김, 스프링롤, 소고기 쌀국수, 모닝글로리 볶음.





타마린드 새우 Fried Shrimp with Tamarined Sauce 타마린드 소스로 버무린 새우인데 약간 매운맛이 도는 칠리소스 같기도 하고. 하여튼 호로콴에 온 한국인들은 무조건 시켜 먹는다는 요리. 밥을 같이 주는데 다 이유가 있다.




완탄 튀김 Fried Wonton 만두피 같은 것을 바싹 튀긴 다음 위에 빨간 꽃처럼 소스를 올려 주는데 튀김 안에 완자 같은 것을 넣어 놓아 또 다른 맛을 풍겨준다. 튀긴 거라서 일단 고소함이 입안을 점령해 버림





스프링 롤 Fried Spring Roll With Pork 안에 새우, 돼지고기, 채소를 넣는데 우리는 돼지고기를 넣은 걸로 먹었다. 바삭바삭한 롤의 느낌이 가시기 전에 부드러운 돼지고기의 맛이 감싸온다. 탕수육과 비슷하면서도 아닌 것은 고기를 감싸고 있는 롤의 맛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소고기 쌀국수 Phở bò 담백한 국물과 부드러운 면, 소고기 듬뿍 올려져 있는 데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땅콩가루. 그리고 그 특유의 향.





모닝글로리 볶음 Fried Morning Glory 담백한 맛을 위해 꼭 시켜 먹는데 여기는 값이 싸서 좋다.





반 쎄오 Bánh xèo 계란 부침 같은 것에 상추, 숙주, 오이 등을 올려서 라이스페이퍼에 싼 다음 같이 나오는 양념에 찍어 먹는. 직원이 시범을 보여 주는데 아무런 저항감없이 먹을 수 있다.


시원한 맥주도 곁들였는데 갈증도 났고, 더운 날씨에도 맥주맛은 저만큼 멀리에서 허덕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함포고복한 것에 비하면 아주아주 착한 가격이다. 3만 원이 약간 웃도는 정도였으니.

호로콴의 음식은 한국인의 입맛에 특화되어 있다. 그래서 'no 고수'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처음부터 음식에 고수를 넣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 가면 무조건 그 나라 고유의 맛을 느끼려고 한다. 가끔씩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맛에 놀라기도 하지만, 그래도 먹는다. 상해 임시정부 기념관 뒷골목에서 먹었던 중국 본래의 짜장면, 왕부정에서 정말 억지로 먹었던 취두부, 대만 타이중역 뒷골목에서 먹었던 군만두, 치앙마이 먀야몰 옆 골목의 똠양꼼, 백두산으로 가다가 먹었던 연변의 길바닥에서 파는 개고기 국수, 프라하 까를교 부근 골목의 조금 찌릿했던 철판 요리, 해남도에서 새벽 달리기를 하다가 내가 준 모자를 받은 초등학생이 가방에서 꺼내 준 밀가루 빵, 스페인 론다 다리 아래에서 사 먹었던 지금도 알 수 없는 이상한 빵, 모로코 카사블랑카 시장에서 안 받는다는 유로를 억지로 쥐어주고 먹은 고기 볶음, 짠맛만 내세우던 로마의 피자,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올라가는 노점에서 산 그 기다란 빵, 대만 가오슝 리우허 야시장의 그 시커먼 참새구이, 모두들 못 먹겠다고 밀어냈던 계림의 할머니가 쭈그리고 앉아서 팔던 개구리 구이.


음식은 사람이 먹는 것이다. 중국 사람이 먹으면 한국 사람도 먹을 수 있다. 모로코 사람들이 먹는 고기 볶음이라면 한국 사람이라고 못 먹겠는가. 다른 나라 음식에 고개를 돌리는 것은 가장 먼저 다가오는 냄새 때문이다. 그러나 그 냄새만 극복하면, 천천히 씹어보면 그 특유의 맛이 있다. 두리안이 그렇고, 우리의 청국장이 그렇지 않은가. 맛나게 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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