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골목, 또는 삶의 이야기

by 힘날세상


호이안의 아침은 참 수더분했다. 어둠을 걷어내자마자 들이닥치는 햇볕은 날카로운 창을 들고서 따갑게 찔러온다. 그래서 산뜻하다거나 신선한 느낌은 찾아볼 수 없다. 동이 트면서부터 오토바이의 행렬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굉음으로 달리는 오토바이의 행렬. 햇볕. 호이안의 아침 풍경은 어디선가 한바탕 분탕질을 치고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행지에서는 언제나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그 지역이 그려내는 아침 이미지 속으로 걸어가 보고 싶은 까닭이다. 아침은,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은 발걸음에 힘이 가득하다. 저마다 새로운 희망을 안고 걷는 걸음. 분명하게 살아있는 시간이다. 어제 조금 피곤했어도, 어제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상했어도 사람들은 밤새 다 덜어 내놓고 냅뜬 걸음을 걷는다. 그래서 아침은 생생하다.


호텔 앞 도로를 따라가 본다. 인도가 구분이 되어 있지 않아서 조심해서 걷는다. 어느 집 앞에 오토바이가 많이 세워져 있다. 활짝 열린 대문 옆에 노란색의 작은 입간판이 서 있다. 대충 얻어들은 베트남어로 볼 때 쌀국수 Phởbò/phởgà라고 쓰여 있다. 마당에는 작은 탁자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쌀국수를 먹고 있다. 어젯밤에 지나올 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가정집이었는데 아침에만 장사를 하는 것 같았다.


베트남 사람들은 출근하면서 아침식사를 사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가정집에서도 간단한 아침 식사를 팔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가가 싸고, 특히 음식값이 싼 나라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거기에다 언제나 더운 나라라서 길거리에서 얼마든지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큰길보다는 골목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을 확률이 아주 높다. 골목은 어느 동네든지 사람들의 호흡이 열리는 곳이고, 걸음이 시작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제법 널찍한 골목이 이어지는 곳에서 미련 없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큰길과 달리 너저분하다. 각종 쓰레기가 널려 있고, 버려진 생활용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반쯤은 무너진 울타리 아래에는 제법 많은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기도 하다. 그 옆에서 비루한 개 한 마리가 연신 코를 킁킁거리고 있다. 어렸을 때 꼭 이런 곳에서 자랐다. 그 시절이 갑자기 소환되었을 때, 그리움인지 미련인지 알 수 없는 느낌이 확 끼쳐 올라왔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끌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갈림길이 있어고, 커다란 나무 아래에는 식당이 성업 중이었다. 여러 대의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아주 낮은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를 먹고 있었다. 빵 속에 양념한 채소와 고기를 넣은 반미를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미(bánh mì)는 베트남식 바게트(baguette)를 반으로 가르고 채소, 고기 등의 속재료를 넣어 만든 베트남식 샌드위치를 말한다. 전문점에서 팔기도 하지만, 노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중화된 음식이다.


빈 의자가 있어서 일단 엉덩이부터 내려놓았다.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이방인을 향해 일제히 시선을 찔러왔다. 나는 일단 웃어 보이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들은 누가 지휘를 하는 것처럼 동시에 시선을 거두어 갔다. 주인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얼른 옆 사람이 먹고 있는 쌀국수를 가리켰다. 아주머니는 씩 웃고 돌아서더니 금방 쌀국수 한 그릇을 내밀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오른손으로 채소를 조금 들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고수였다. 나름 센스가 있는 아주머니다. 내가 외국인 것을 알아보고 고수를 넣을 것인지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얼른 손사래를 쳤다.


옆에 앉은 젊은이가 흘깃흘깃 바라본다. 하얀 와이셔츠를 차려입은 날렵하고 깔끔한 차림이다.

"Xin chào!"

일단 인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인사를 했는데

"한국 사람?" 어눌하게 말을 하며 반색을 한다.

"아, 예 한국 사람입니다."

그는 폰을 꺼내 번역기를 돌렸다.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어요. 그런데 한국어를 몰라요.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

그러면서 박항서 감독 사진을 보여 주며 엄지 척을 한다.

"그렇군요. 열심히 공부해서 꼭 성공하세요."

나도 파파고를 통해서 대답을 했다.

그의 코리안 드림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바쁘게 식사를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일터로 나가는 그들의 오토바이는 힘차고 날렵한 모습으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다시 또 다른 사람들이 빈자리를 차지했고,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식사를 하고 떠나갔다.


쌀국수 값 10,000 vnd(500원)을 아주머니께 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골목을 따라 더 들어가 보았다. 골목은 더 좁아졌고, 더 지저분했다. 손바닥만 한 나무 그늘 아래 세 분의 노인이 앉아 있다. 그중 한 분은 합죽선을 들고 연신 턱 아래를 부쳐댔다. 껄껄 웃어가며 무엇인가 얘기에 열중이다. 같은 늙은이들끼리 이야기 좀 나누면 좋지 않은가. 어제 마트에서 사 온 초록색의 과자를 꺼내어 들고 그들에게 내밀었다. 부채를 든 분이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번역기를 들이댔다.

"누군데 우리에게 과자를 주는 거예요?"

"한국에서 왔는데요 드셔보세요."

그들은 경계를 풀고 과자 봉지에 손을 내밀었다.

"놀러 왔어요? 그런데 왜 이런 곳을 돌아다녀요?"

"동네분들이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요. 저 앞에서 쌀국수도 한 그릇 사 먹었어요."

"숙소는 어디예요?"

"혼자 왔어요?"

그분들은 질서 없이 내 폰에 대고 말을 했다. 대화가 잘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 때 사탕을 한 봉지씩 가지고 다니며 동네 노인들에게 드리면 정말 좋아했다. 대부분 자식들은 도회지로 떠나버리고 혼자 살고 있는 분들이다. 다리에 힘이 없어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대문 앞에 의자 하나 내놓고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분들은 한 마디로 도회지로 나가 있는 자식들 걱정뿐이다. 나도 그분들과 비슷한 나이이고, 자식들 걱정하는 마음은 똑같다. 우리는 사탕을 나누어 먹으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늙어가는 걱정을 했다.


호이안의 노인들도 똑같을 것이다. 이 좁은 골목을 지키고 있으면서 지난 시절을 반추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좁은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뼈가 굵어지고, 몸에 살이 붙었고, 키가 자랐을 것이다. 그분들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여행에는 많은 부분집합이 있다. 눈으로, 코로, 발로, 몸으로 하는 여행이 있다. 나름의 의미가 있고, 느낌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입으로 하는 여행이다. 입으로 하는 여행은 먹는 여행이 될 수도 있지만, 대화하는 여행을 말하기도 한다.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쓸만한 일이다. 낯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이야기를 나누어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다 보면 서로의 삶이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참 여행이다. 입으로 하는 여행 말이다. 호이안에서 스쳐 지나갔고, 주인과 손님으로 만났고, 길바닥에서 잠깐 같이 밥을 먹었고,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은 금세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분들이 보여줬던 삶의 이야기는 얼마 안 되는 분량이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 호이안의 그 골목에, 그리고 내 마음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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