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투본강은 불빛으로 말한다

호이안의 밤이 흐르는

by 힘날세상

호이안이 큰소리치는 이유는 투본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비가 내렸다. An Hoi Bridge를 건너가고 있을 그때, 느닷없이 무섭게 쏟아졌다. 거리를 가득 메꾸었던 그 많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몸을 숨겼다. 그리고 호이안은 비의 도시가 되었다. 배낭에 넣어둔 비옷을 꺼내 입으니 세상이 재밌다. 비닐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An Hoi Bridge에서 비에 젖는 투본강을 바라보았다.





투본강은 조용히 비를 맞고 있었다. 아무런 저항이나 몸부림을 하지 않고, 두 팔을 벌려 쏟아지는 빗줄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강물 위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작은 배들도 모두 어깨를 맞대고 비에 젖고 있었다. 노를 젓고 있던 사공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비닐을 뒤집어쓰고 뱃전에 앉았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자기 배와 함께 비속에 앉아 있었다. 뱃전에 부딪는 빗줄기는 제법 거세었지만 비닐을 둘러쓴 사공들은 무표정하게 폰에 얼굴을 묻었다.


드잡이질을 하던 빗줄기는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스위치를 껐을 때 순간적으로 어둠이 덮어버리는 것처럼 어느 순간 비는 사라졌다. 갑자기 내리고 그만큼 갑자기 멈추었다. 비가 무너진 자리마다 어둠이 자리를 차지했으나 이내 불빛에 찔려 구석구석을 찾아 되는 대로 몸을 숨겼다. 여기저기 숨어 있는 어둠의 꼬리가 불빛 아래 드러났다. 불빛의 세상이 열렸다. 빗줄기를 피해 몸을 감추었던 사람들은 한꺼번에 몰려나왔고, 길거리는 다시 흥겨운 시간이 펼쳐졌다. 강가로 몰려가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 호이안의 불빛도 붉으락 푸르락한 얼굴로 투본강으로 뛰어들었다. 어느새 비닐을 벗어버린 사공들은 그 불빛을 건져내어 자신들의 뱃머리에 달았다. 하나만 달면 서운하다고 뱃꼬리에도 하나씩 달았다.




투본강은 불빛이 되었다. 배의 머리와 꼬리에 걸려 있는 불빛은 형형색색의 꼬리를 강물 위에 내려보냈다. 강물 위에서 불빛은 사시나무 떨 듯 제 몸을 흔들었다. 바쁘게 흘러가야 하는 투본강은 강물로 뛰어든 불빛을 구기박지르며 제 몸을 빼내었다. 불빛은 수면 위에 애면글면 매달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려놓는 소원 등은 하나씩 비틀거리며 흘러가다가 어디선가는 여럿이 모여 몸집을 키우더니 아금박스럽게 투본강의 어깨를 움켜 잡았다. 가느다란 촛불을 겨우 밝히고 있는 소원 등은 그렇게 구불거리며 그대로 투본강의 일부가 되어갔다. 이제 투본강은 소원의 불빛이 가득한 낯선 사람들의 기대주가 되었다.





강물은 꼭 사람이 있는 곳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사람들이 훌쩍거리고, 비틀거리고, 환호하는 비명소리를 모두모두 모아 끌어안고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말하자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놓는 것이다. 강물이 온몸을 휘돌아 흐르는 물도리에는 꼭 사람들이 터를 내린 마을이 있다. 강은 마을을 휘감아 흐른다. 사람들의 허리께를 부둥켜안고 강물은 제 몸을 늘인다. 그리고 그때마다 문명을 낳았다.


그러나 투본강은 밤에만 흐른다. 낮에는 무엇이 틀었는지 웅크리고 있다가, 밤이 되면 불빛으로 흐른다. 투본강은. 그렇게 역사를 쌓아갔다. An Hoi 작은 섬에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역사를 가두어 놓고, 저렇게 밤에만 흐르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누가 어디에서 어떤 말을 해도 호이안에서는 투본강을 밀어낼 수가 없다. 이렇게 화려한 불빛을 바르고 휘어 감고 있지 않는다 해도 투본강은 호이안의 주인이다. 투본강은 호이안의 비틀어진 마음을 씻어내고, 닳아 없어지는 삶의 마디들을 청량한 기운으로 닦아내고 있는 것이다.





뱃머리에 걸어놓은 푸른 불빛 아래 앉았다. 내 얼굴마저 푸른빛으로 감싸버리는 등불 아래에서 발아래로 흐르는 투본강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애잔한 이야기를. 한때는 '실크로드'라고 불리던 대규모의 국제 무역항을 이루었던 호이안을 만든 것도, 호이안(會安, Hội An)을 ‘평화로운 회합소’라는 의미로 불리게 했던 것도 호이안을 감싸 안고 흐르고 있는 투본강의 힘이었으리라.




강은 언제나 사람을 불러들여 마을을 이루게 한다. 그렇게 호이안을 이루게 한 투본강은 이렇게 밤이 내려앉을 때 불을 밝히고 사람들을 불러들여 호이안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워 주고 있다. 호이안의 한가운데를 흐르는 투본강은 수많은 작은 배를 띄워 호이안의 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공에게 작은 등하나를 샀다. 겨우 불을 붙여 강물에 흘려보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호이안의 시간이 끝없이 살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흐르는 투본강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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