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햇볕의 세상이었다. 햇볕의, 햇볕에 의한, 햇볕을 위한 세상이었다. 세상은 철저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햇볕은 불길처럼 뜨거웠다. 마치 모닥불 앞에 서 있는 느낌 그대로였다. 햇볕에는 잠시도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사막이 이럴 것이다.
호기롭게 나섰다. 견뎌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리조트를 나섰다. 점심 식사 후, 가족들은 에어컨 아래에서 뒹굴고 있었다.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할 때 나만은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여행객이라면 열대가 만들어 놓은 한낮의 거리는 걸어봐야 한다고, 그래서 나가겠다고, 그랩 택시를 불렀다. 택시기사가 흘깃거리는 것은 이 시간에 올드타운으로 나가겠다는 나를 걱정하고 있는 거라고 받아들였다. 에어컨이 풍겨내는 찬 공기가 가득한 택시 안에서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기대감에 젖어들었다. 택시기사의 걱정 따위야 아랑곳없이.
택시는 올드타운 입구에 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택시의 뒤꽁무니에는 지글지글 타오르는 햇볕이 한아름 달려 있었다. 택시 안에는 천국이었으나 택시 밖에는 지옥이었다. 쇳물이 끓고 있는 용광로였다. 어쩌면 마그마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들숨부터 콱 막혔다. 뜨거운 것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목구멍을 지나 폐에 이른 뜨거움에서 열대의 사나움이 휘젓고 다녔다.
올드타운은 텅 비어 있었다. 밤이 가멸차게 열어 놓았던 세상은 발자국마저 지우고 형체를 잃었다. 무너지고 부서졌다. 사막처럼 황량했다. 그랬다 정말 황량했다. 잊힌 여인처럼 애처로웠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들어서 있던 야시장의 손바닥만 한 점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화려한 밤은 어떤 죄를 지었기에 한낮의 뜨거움에 녹아버렸는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폭염에 홀로 내던져진 채로 텅 빈 거리를 걸어 보았다. 조금 비칠댔던 것 같다. 햇볕에 바동거리는 걸음으로 호이안 올드타운을 따라 걸었다. 나는 혼자였다.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타작마당 돌가루 바닥같이 딱딱하게 말라붙은 뜰 한가운데, 어디서 기어들었는지 난데없는 지렁이가 한 마리 만신에 흙 고물 칠을 해가지고 바동바동 굴고 있다. 새까만 개미 떼가 물어 뗄 때나 다 지렁이는 한층 더 모질게 발버둥질을 한다.
- 김정한, 『사하촌』에서
나는 말라붙은 뜰에서 바동거리고 있는 한 마리의 지렁이였다. 햇볕으로 나오면 안 되는, 몸에 항상 축축함을 두르고 살아야 하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어젯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던 식당 MAAZI Hoi An은 쏟아지는 햇볕에 견디지 못하고 추렷하게 늘어져 있다. 그 앞에서 찹쌀떡 같은 것을 팔고 있는 주름투성이의 할머니도 어디선가 밤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저마다의 소원을 빌던 밤의 영화를 잃어버린 도교 사원 광조회관(廣肇會館)마저 사원 앞 공간을 텅 비워 놓고 우두커니 서 있다.
바람은 끝내 불지 않았다. 투본강을 따라 걸어도 올드타운은 그 바람을 다 움켜쥐고 내놓지 않았다. 어젯밤 불야성을 이루던 투본강의 소원 배는 아무렇게나 강가에 쓰러져 있다. 그 많은 사람의 소원을 담고 강물을 떠 가던 촛불은 어디서 화려한 밤을 위한 색칠을 하고 있을까. 황혼에 젖어 붉은빛을 토하던 An Hoi Bridge는 이렇게 쓸쓸하고 초라한 모습을 하고 서 있을 수가 있을까.
An Hoi Bridge를 건널까 말까? 한참을 서 있었다. 강 건너에는 카페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불빛을 잃은 모습은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리를 건너 본다. 다리에 설치해 놓은 장식들을 들여다보려는 심사이다. 땀이 빗물처럼 흘렀다. 손수건으로 닦아내면서 다리 가운데로 갔다. 몇 가지 색의 커다란 등을 달아놓기도 했고, 황금색 바탕에 어떤 의미인지 모를 네모난 문양을 새겨 놓은 기둥이 몇 개 서 있다. 프라하의 까를교를 떠올리다가 얼른 지웠다.
다리 아래를 흐르는 깨끗하지 못한 강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그 강물 위에서 무료함을 달래며 흔들거리고 있는 소원배들을 향해 눈길을 주기도 하면서 다리 가운데에 이르렀다. 어젯밤 노랗게 불을 밝히고 있던 구조물이 있는 곳이다. 불빛을 잃어 초췌하기는 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누군가 애써 설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빛으로 장식된 호이안과 민낯의 호이안은 어느 것이 본질일까?
루이자 : 없애 버려 황금 달빛 내버려라 하늘을 밤엔 정말 멋있더니 낮에 보니 우습네
마 트 : 집어치워 저녁노을 싫증 나는 호수도 밤엔 정말 멋있더니 낮에 보니 우습네
- Tom Jones, 『The Fantasticks』 에서
An Hoi Bridge 한가운데 구조물에 기대어 서서 대학 연극반 때 공연했던 『The Fantasticks(철부지들)』의 대사를 그려보았다. 꾸미고 가꾼 것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인데, 왠지 호이안은 불을 밝힌 밤이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5세기부터 세계무역항으로 발돋움한 호이안은 동서양의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유한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호이안을 밤의 도시로 내세우게 되었을까. 꼭 불빛 때문이었을까.
표면을 손바닥만 한 나무 그늘이 드문드문 깔려있는 강변을 따라 걷는다. Chùa Cầu(일본 다리)에 가려는 걸음이다. 땀은 흐르고 비틀거리는 걸음이 조금 힘에 부치다는 느낌이 일어날 즈음 베트남 전통 모자인 nón lá(농, 논라)를 쓰고 앉아 있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아무 말도 없이 흐릿한 강물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아주머니. 흐릿한 강물에 씻어내야 할만한 무거움이 있는 걸까. 결코 낭만적이지 않는 그 아주머니는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던 정희성 시인의 시구가 그 아주머니 등에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그 남루한 아주머니의 등에. 작열하는 햇볕보다도 더 따가운 것이 한꺼번에 찔러가는 것을 보았다.
세상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예리하게 들여다본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가슴을 파헤치며 써낸 글이 아니더라고 우리는 아주 쉽게 세상에 드리워진 여러 층을 볼 수 있다. 그 층 위에 서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발아래 눌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가 밟고 있는 아래층만 바라보고 있다. 어리석게도.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 때문이기도 했지만, 농을 쓰고 투본강을 바라보고 있던 아주머니를 모는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일본 다리로 향하기에는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버렸다. 1700년대 만들어졌고, 그 양식이 화려하다고 해도 돌아서기로 한다. 아쉽지 않았고, 그래서 미련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