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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Mar 27. 2024

16 아파트는 혼자서 사는 게 아니잖아요


이사하고 열하루가 지났다. 낯선 도시로 훌쩍 떠나온 건 자식들 곁에서 살자는 맘도 있었지만, 1년 살기나 아니면 5년, 10년 살기를 한다는 속셈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게 사실이다. 여행을 한다는 느낌을 그리며 평생을 살던 전주全州를 등져버렸다. 후회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치면서.


좋았다. 솔까 좋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판단했다. 첫날밤이 지나고 아침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을 그때, 확 덮어오던 것은 아침햇살이 아니었다. 애써 그리움이라고 꾸며댔지만, 아쉬움이었고 허퉁함이었다. 상실감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마음이 깃들지 않은 것들 뿐이었다. 엉거주춤 주저앉아 있는 소파는 편안하기는 했지만, 아늑한 정감은 없었다. 아들이 사다 걸어놓은 TV는 한쪽벽을 지나치게 가리고는 참 낯선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은은한 무늬가 새겨진 문짝을 네 개나 달고 있는 냉장고는  두드리면 불을 반짝 밝혀 속에 넣어놓은 것들을 죄다 보여준다.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식탁과 의자는 한 달 전에 주문하여 부엌의 크기에 딱 맞은 몸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새로 이사한 집과 참 데면데면하게 하룻밤을 보냈다.


책방冊房인지 글방인지 속성이 갈팡질팡한 작은 방은 그래도 좀 전주의 수더분한 시간들을 끌어안고 있다. 벽에 붙어  있는 세 개의 책장은 눅진눅진한 냄새를 폴싹폴싹 풍겨내는 책을 가지런히 줄 세우고도 모자라 수북수북 쌓아 놓고 있다. 창문 너머로 하늘을 두르고 있는 책상은 불혹不或의 세월을 덕지덕지 쌓아놓고 있다. 여기저기 드러나 있는 상처마다 그때의 굴곡진 이야기를 투박하게 담아내고 있다.   평안하고 후박했다. 아내는 굳이 서재라고 부른다. 정을 붙여 시간을 붙들고 키보드를 두드려 가느다란 글줄이라도 써내야 할 이곳을 나는 소심재小心齋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문을 닫아 세상과 절연하는 흉내를 내고, 남쪽창을 열어 햇볕을 받아들였다. 덩달아 따라 들어온 바람과 편을 먹고 아침나절을 다독였다. 아내가 복지관으로 나가고 나면, 나는 세상을 죄다 펼쳐놓고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동굴 탐험대라도 되는 양, 시선의 끝을 야무지게 찔러 넣어 좁은 틈을 낱낱이 파고들었다. 재미있었다. 머릿속에  담기는 것이라고는 알량한 편린들 뿐이었지만, 낯선 도회지의 시간은 그런대로 비옥한 모양새였다.


다 던져버릴 수는 없었다. 평생을 살아던 물리적 공간에서 몸은 빼내었지만, 마음까지는 남김없이 다 챙겨 오지는 못했다. 전주全州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며 켜켜이 쌓아왔던 삶의 시간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챙겨 와 품 안에 넣어놓았다. 그러나 꼭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실감 같은 것에서 허우적대는 것은 어쩌지 못하고 있다. 이 상실감은 향수병으로 모습을 바꿀지도 모를 일이다.


16층에서 살면 땅보다는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한다. 소잔등 같은 산줄기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언제나 성립하는 항등식恒等式은 아니었다.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할 듯이 책에 머리를 박고 책을 읽다가 비 오는 줄도 몰랐다. 비라는 게 땅바닥을 두들기는 거센 소리나, 울안 가득 채워지는 빗줄기에서 그 맛을 느끼는 것이고 보면, 높은 층에서는 참 세상사는 재미가 없다.  


그날, 빗줄기가 창문을 제법 두드리던 초여름날 오전. 소심재에 앉아 빗줄기가 그려내는 그림을 보고 있다가,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책장 상단에 꼽혀 있는 백과사전을 꺼내기 위해 의자를 끌어당겼다. 드르륵하며 끌려오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적막을 몇 조각으로 쪼개었다. 살아있다는 감각이 살아났다. 나는 한번 더 의자를 잡아끌었다. 신이 나서 몇 번 더 그 소리를 냈다.

 사실, 하루종일 깊은 산속처럼 고요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도대체 움직이는 것이 없었고, 나 혼자만 숨을 쉬고 있었고, 그런 사실이 싫었다. 새소리 한 소절 들리지 않는 삭막한 고층이 맥을 조여왔다. 그런 것들을 한꺼번에 무너뜨려버린 의자가 끌려오는 소리는 날 것 그대로였다. 팔딱팔딱 뛰어오르는 물고기 같은 생명력이었다. 느닷없이 참기름 같이 고소하다는 느낌이 피어올랐다. 고소했으며, 평안했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막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ㅡ 조용히 해 줄 수 없나요?

젊은이가 찡그린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등 뒤로 수목원의 숲이 제법 짙은 초록빛을 발하고 있었다.

ㅡ 위층의 소음이 얼마나 거슬리는지 아세요?

숨이 콱 막혔다. 실어증 환자처럼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분명히 '소음'이라고 했다.


소음騷音 불규칙하게 뒤섞여 불쾌하고 시끄러운 소리.


불쾌했다고 젊은이는 말했다. 시끄러운 소리였다고 말했다.


두껍게 쌓여 있던 적막을 한꺼번에  무너뜨려버린 그 작고 찰나적인 소리를,  팔딱팔딱 뛰어오르던 생명력의 소리를, 참기름 같이 고소한 소리를, 살아있다는 느낌을  안겨준 소리를 그 젊은이는 소음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었다. 불쾌한 소리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아파트는 혼자서 사는 게 아니잖아요. 아파트에서 처음으로 살아보나요? 부탁드립니다.


그는 불쾌함이 뚝뚝 떨어지는  말을 내 앞에  쏟지르고는 핑 돌아섰다. 찬바람이 휙 몰려왔다.


오전 한 때 평안을 주었던,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었던 의자를 끌어당기는 소리는 불편함을  가득 몰아왔다. 짧은 시간이었고. 큰 소리도 아니었던 의자를 끌어당기는 소리는 불편한 소리가 되어버렸다.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소리가 아니라, 아주아주 불편하게 만드는 소음이 되어버렸다.


며칠 후 엘리베이터에서 퇴근하는 젊은이를 만났다.

ㅡ전에 의자를 잡아끌었던 소리로 불편하게 했다면 미안하게 됐습니다. 조심했어야 했는데 제 불찰이었네요. 그때는 황망 중에 미안하다는 말을 미처ᆢ ᆢ

ㅡ아, 됐어요. 앞으로 주의해 주세요.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무섭기도 했고, 어어가 없기도 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아래층에 사는 그 젊은이가 내리고 나서도 나는 넋을 잃은 채 서 있었다. 다리에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아파트는 여럿이서 같이 사는 게 아니었다. 아파트는 여러 사람이 혼자씩 각자 사는 곳이었다. 사각형의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이 불편하게 혼자 살아가는 참 불편한 공간의 집합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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