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이런 의사를 만났다.
대부분의 의사와는 다른
AI Copilot이 그린 그림
어제부터 코가 찜찜하고 목이 잠기는 듯하더니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다. 코와 목은 내 몸에 붙어 있으되, 내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몸에 비협조적일 수 있을까.
사실 어젯밤에 자면서도 머리맡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놓고 자면서 얼마나 코를 풀어댔는지 알 수 없다.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입을 벌리고 숨을 쉬고 잤다. 입을 벌리고 자는 것이 이렇게 불편한 줄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젯밤에 떠올랐던 글감을 메모해 놓기 위해 폰에 있는 삼성노트 앱을 실행하여 메모하고 있는데 아내가 괜찮냐고 물어본다.
"어제 코 푸느라고 잠을 못 자는 것 같더니 괜찮아?"
"그러니까, 입 벌리고 자는 것도 힘들고,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이게 뭐냐고. 말이 안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내 목은 어젯밤에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다.
아내가 차려주는(골절상을 입은 아내는 이제 거의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부엌은 아내 차지가 되었다. 그래도 대로 설거지는 내가 그대로 한다.) 식탁에 앉았다. 예전처럼 과일과 요거트가 전부다.
어느 병원으로 갈까.
시내에 있는 병원은 멀어서 가기 귀찮고, 동네에 있는 내과는 다시는 안 가겠다고 선포한 곳이고, 아파트 정문 앞에 "의원(병원도 체인점이 있다)" 새로 생겼던데 가볼까.
'의원"이라면 의대 졸업하자마자 의사고시 합격하고 의사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누구나 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의사와 도사는 나이가 들수록 능력이 있고 효험이 있다는데 가도 될까. 그냥 나 전에 건강검진했던 그 내과로 가지 그래."
아내가 걱정스럽게 말한다.
"그것도 방법인데, 거긴 주차가 좋지 않아서. 그리고 이게 뻔한 거라서 사실 약국에서 약을 사다가 먹어도 될 것 같은데. 그런 가벼운 질병이니 그냥 가도 되지 않을까. 처방전만 받으면 되니까."
'의원'급 병원과 거기에 근무하는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어디까지나 오늘 아침에 해봤던 생각이었다.
우산을 뒤집어쓰고 비 오는 거리를 걸어 병원으로 갔다.
아파트 정문을 나서서 걸어가는데 의원이 또 있다. 여기는 이곳에 이사 올 때부터 있었던 곳이다.
'이리 갈까?'
고민하다가 그냥 새로 개업한 곳으로 가기로 했다.
병원 입구에 '경축'이란 펼침막을 펼쳐 놓았다. 병원을 개업할 때도 이런 말을 쓰는가 보다.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은 진료과목이 가정의학과, 통증의학과이고 3층은 비만클리닉이라고 쓰여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가벼운 감기 증상이고 처방전만 받아 약을 복용하는 것이 목표였으니 그냥 2층으로 올라갔다.
병원에 들어섰는데 접수하는 곳에 간호사만 둘이 있을 뿐이다.
순간 아, 잘못 왔구나.
동네 병원에 많이 다녀봤지만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 나갈까 했는데 "어서 오세요." 하는 간호사의 인사를 받고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접수를 하고 기다렸다가 간호사의 안내로 진료실로 들어간다.
간호사가 의사가 앉아 있는 책상에서 1.5 m 정도 떨어진 곳에 앉으라고 한다. 지금까지 70년 살면서 병원에 많이 가봤지만 이런 것은 처음 봤다. 모든 병원에는 의사 책상 옆에 환자용 의자가 있다. 그런데 이곳은 의사와 최대한 멀리 앉히는 것이다.
거기에 앉아 있는 의사는 대학생 같이 젊은 의사였다. 젊은 의사를 폄훼하려는 게 절대 아니다. 내가 본 그대로 쓰는 것이다. 물론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고, 의사가 젊게 보였을 수도 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목이 잠기고 코가 막혀서 풀면 노란 코가 나오고요. 눈자위가 미세하게 아픈 것 같기도 해요."
"감기 같네요. 3일분 처방해 드릴게요. 주사도 한 대 맞으세요. 간호사가 안내해 드릴 겁니다."
진료가 끝났다는 거다.
내가 생각한 진료 내용은 이랬다. 이것은 그동안 내과를 다니면서 진료받았던 것을 근거로 써보는 것이다.
앞에서와 같이 문진을 하고 나서
"열은 없었나요?"
"네"
"그래도 한 번 재보겠습니다."
어떤 병원은 증상을 말하면 간호사가 열을 측정하여 차트에 기입해 놓는다.
"입을 벌려 보세요."
책상에 있는 얇은 나무를 들어서 혀를 눌러가며 목을 살펴보고 나서
"목이 약간 부었네요. 심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네요."
"옷을 올려 보시죠.'
청진기를 꼽고 여기저기 대보고는
"숨을 크게 쉬어 보세요. 등도 한 번 볼까요? 숨을 크게 쉬어 보세요. 소리를 들어보니 폐도 괜찮은 것 같아요."
"몸살기운은 없었나요?"
"네,
이렇게 하고 나서
"심하지는 않으니까 일단 3일 정도 약을 드셔보기로 하죠. 그 정도면 회복되실 것 같은데요. 그 후에도 불편하시면 다시 한번 오세요. 아마 괜찮을 거예요. 요즘 감기가 목과 코를 심하게 괴롭히거든요. 몸살 기운이 없었다고 해도 무리한 운동은 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좋아요."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렇게 환자들을 안심시켜 준다.
목을 한 번 살펴보고, 청진기 한 번 대보는 것만으로도 환자는 믿음이 간다. 벌써 치료가 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오래전에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한 종합병원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수술실은 들어서면 무서운 기운이 엄습한다. 정말 무서웠다.
집도의가 들어오더니
"000 환자분, 지금 어디 수술을 받는 거죠?
"000 수술을 하려고 합니다."
"맞습니다. 저희 의료진들이 최선을 다할 건데요. 같이 기도하고 시작할게요."
그리고는 집도의와 전공의 셋, 간호사들이 나를 둘러싸고 모이더니 집도의가 기도를 했다.
"하나님, 오늘 000 환자분의 000 수술을 하려고 합니다. 수술은 저희가 하지만 늘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저희들에게는 능력을 더해주시고, 환자분에게는 마음의 안정을 내려 주십시오. 수술 후에도 빨리 회복하시도록 하나님께서 이곳에 임재하셔서 환자분을 꼭 붙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정말 안심이 되었고,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리고 수술 후 회복했을 때 '하나님 환자분이 잘 회복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간호사의 기도를 비몽사몽간에 들었다. 이게 병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늘 진료는 절대 30초를 넘지 않고 끝났다. 아내가 신신당부 아니 명령을 해서
"저 영양주사를 맞을 수는 없나요?" 하고 물어봤다.
"그러면 링거에 영양제와 맞으려던 주사를 같이 맞으면 됩니다."
간호사는 수납부터 하라고 했다. 41,700원.
비용이 많다고 생각해서 물어봤더니 주사비용이 40,000원이라고 한다.
탈의실로 데리고 가더니 락카를 열어주고 처방전과 개업 선물이라고 텀블러 하나는 넣어둔다.
"여기에 겉옷을 벗어 놓고 나오세요."
디지털 도어록이 있었으나 사용법을 말해주지 않는 것을 보니 문만 닫으라는 것 같다.
주사실로 가서 기다리니 링커를 가져왔다.
팔에 고무줄을 감더니
"약간 따끔합니다." 하고 팔꿈치 부근(대부분 링커를 꼽는 그곳)에 바늘을 찔렀는데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너무 아픈데요. 링거를 많이 맞아봤지만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는데요."
"그러면 다른 곳에 맞아 볼게요."
그리고 손목 위, 손등을 찔렀는데 똑같이 아프다.
다른 간호사가 오더니 오른손 손등에 바늘을 꽂았다.
"괜찮아요?"
"아픈데요."
"어떻게 아픈가요. 주사액을 잘 들어가고 있거든요."
"주사부위가 아주 차갑고, 뻐근한데요"
"아, 그건 주사액을 냉장 보관해서 차가운 느낌이 들 거예요. 팔꿈치나 어깨까지도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해요. 조금 지나면 괜찮을 거예요."
링거주사는 약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링거액주머니보다 주삿바늘이 낮은 위치에 있기만 하면 아무런 느낌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팔을 조금만 돌려도 이상한 느낌이다. 간호사가 와서 상태를 확인한다.
"주사액이 잘 들어가고 있고, 주사 부위가 붓지도 않은 걸 보니 괜찮겠어요. 주사액이 좀 천천히 들어가게 할게요."
그러나 다 맞을 때까지 주사 주위는 안 좋은 느낌이었다.
집에 와서 보니 주삿바늘을 꽂았다 뺀 왼쪽 손등은 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다. 링거를 많이 맞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아무래도 그 병원은 가지 않을 것 같다.
요즘 의대 입학 정원 문제로 의사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다른 이유를 대지만 누가 보아도 밥그릇 싸움이다. 의사들의 입장도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오늘 이후 의사들에 대한 거리감이 확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