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고통이 아니라 카르마와 영혼을 세탁하는 과정이다
지구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카르마(업보)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영혼이 입은 옷이 우리의 몸이고 살아가는 동안 영혼은 몸과 짝을 이뤄 살게 된다. 지구에 태어난 우리는 지구라는 세탁기에 속에서 삶이라는 물살과 고난이라는 회전에 휘말리게 된다. 건강을 잃는 것도 이런 고난의 한 종류일 수 있다. 세탁의 목적은 우리 영혼에 묻은 얼룩, 곧 카르마(업보)를 씻어내는 것이다. 이는 1회성에 그치지 않는다. 지구에서 수많은 삶의 형태로 여러 번의 세탁을 거치게 된다. 더 이상 세탁이 필요 없는 상태가 되면 지구라는 세탁기에 오지 않게 되는데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해탈, 열반에 이르는 과정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더러운 옷을 여러 번 세탁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오염과 얼룩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또다시 세탁기에 넣을 수밖에 없다. 얼룩이 남은 옷은 깨끗해질 때까지 돌리고 또 돌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동안 겪는 고통, 불행, 불만족은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카르마(업보)를 씻어내는 과정이다.
시련이 닥치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억울하다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세탁기의 회전은 옷을 망가뜨리려는 게 아니라, 더 깨끗한 옷으로 정화하려는 과정이다. 어떤 이는 한 번의 세탁으로 얼룩이 다 빠져나가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수차례 돌려도 얼룩이 사라지지 않는다. 윤회는 지구라는 세탁기에 다시 던져진 빨랫감이다. 자살은 세탁기의 전원을 스스로 꺼버리는 행위라 다음 생이 더 힘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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