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암진단 받은 이야기
결혼기념일 오전, 아이들을 모두 등원 보내고 찾은 카페에서 외과 원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따뜻한 라테를 받고 앉자마자 받은 전화였다. 맘모톰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기로 한 날이 하루, 이틀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아 불안과 긴장 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원장선생님은 살짝 뜸을 들이시더니 조직검사 결과 암이라고 치료가 더 필요하겠다고 하셨다. 떼어낸 조직에서 암세포가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몇 기인지 여쭤보니 사이즈로 봤을 때 1기일 것 같지만 수술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크게 힘든 과정은 아닐 거라고 다독여주었다. 대학병원을 결정하면 컨택해 주신다며 젊은 사람인지라 항암을 할 수도 있다는 말씀도 하셨다.
눈물을 애써 참았다. 오늘 집에 있지 않고 카페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는 고요한 집에서 이 소식을 접했다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감정에 휩쓸려 눈물을 쏟지 않고 이성의 끈을 잡을 수 있었다. 어쩐지 오늘은 꼭 카페에 와서 마음을 글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니.
‘울지 말고, 차분히. 이성적으로. T처럼 생각하자. 기도할 때만 울자.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자. 나약해지지 말자. 나는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남편 곁을 지켜야 한다. 돕는 배필로서 아직 시작도 못했는걸. 암세포 따위에 질 수 없다. 지킬 사람이 많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이제는 스스로를 잘 보살피라는 하늘이 주신 긍정 신호라고 생각하자. 다른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자. 이웃들에게 위로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의를 다지며 비장하게 글을 써 내려갔다. 평소 파워 F인 내가 순식간에 T모드로 전환되는 것이 신기하기도 감사하기도 했다.
남편과 부모님들께 이 소식을 차분히 전했다. 더 건강하라는 뜻인가 보다 하며 애써 내 앞에서 밝게 이야기하는 가족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슬픈 마음이 차올랐다. 나보다 우리 가족들이 더 안쓰러웠다. 아직 젊은 딸이 암이라니,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실까. 내 배우자가 암이라니, 얼마나 두려울까.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문자 그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혹여나 아이들이 불필요한 불안감과 일말의 죄책감을 느낄까 우려되어 남편과 부모님께 ‘암’ 단어 금지령까지 내렸다.
암의 기수도 알지 못하는 망망한 상황이지만 엄마의 말씀대로 ‘오늘’만 생각하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의 선한 나무라심을 기억하며 유튜브나 인터넷의 분별되지 않는 정보도 그만 찾아봐야지. 앞으로의 일은 닥쳤을 때 감당하자. 앞서나가지 말자. 심한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하자. 암 따위에 연연하지 말고 그저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 보자. 그렇게 마음을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