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싶은 이유
아직 어린 아이들 앞에서 ‘암’이라는 무서운 단어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께도 남편에게도 신신당부를 했다. 절대 ’암‘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말 것. 그리고 조금이라도 ‘’너희가 말을 안 들어서 엄마가 아픈 거야‘라는 뉘앙스조차 풍기지 말 것.
하지만 아이들도 집안 공기의 무게를, 흐름을 아는 눈치다. 어느 날에는 훈육의 상황도 아니었는데 느닷없이 막내가 “내가 말을 안 들어서 엄마가 아픈가 봐. “라고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아가야 너의 탓이 아니야. 그 누구의 탓도 아니야.
잠들기 전에는 항상 아이들과 함께 누워 돌아가면서 기도를 하는데, 마냥 아가 같았던 막내가 매일같이 “엄마 깨끗이 낫게 해 주시고” 하며 작은 손을 모아 엄마를 위한 기도를 한다. 평소에 안으려고 하면 귀찮아하는 눈치였던 다소 무뚝뚝한 첫째도 갑자기 자기 전에 손을 잡고 자자고 한다. 잠들기 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낀다. 그리고 첫째 아이가 고요를 깨며 말했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좋아. 엄마는 언제나 희망을 줘. 그리고 소망을 줘. 그리고 내가 속상할 때 힘을 줘. 이게 바로 엄마가 좋은 이유 11번째야. “
애써 덤덤하게 지내오던 내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당장 살고 싶은 이유를 꼽으라면 단연코 너희다. 그저 너희들 곁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다. 너희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