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교수님 초진, 그리고 아들의 입학 합격 소식
암이라는 조직검사 결과를 받고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감사하게도 초진 일정이 일찍 잡혀 드디어 교수님을 뵙는 날이 왔다.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는지 간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꿈에서 아버지가 새벽까지 일하느라 고생하며 몹시 피곤한 얼굴로 나타나셔 속이 상했다. 꿈속에서 이제 일 그만 두시라고, 내가 일할테니 아빠는 집에 계시라고 다그쳤다. 감정이 격해져서 힘들어하다 눈을 떴는데, 이제 나는 암환자 신분인지라 아빠 대신 일을 적극적으로 해드릴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고는 허탈함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기다리던 아이의 학교 합격 발표가 있던 날. 감사하게도 합격 소식을 받았다. ‘암’이라는 어두운 현실이 무색하게도 아이의 기쁜 결과를 접하니 나도 모르게 폴짝폴짝 뛸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내 문제보다 아이의 문제에 더 일희일비하는 나를 보니 이제 엄마가 되긴 했나 보다.
행복한 소식을 마음에 품은 채, 이젠 나의 현실과 마주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초진을 받으러 대학병원으로 가는 길에 신랑과 동네 연포탕집에 들렀다. 어찌나 맛있던지 자동으로 텐션이 올라갔다. 비록 암세포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지금이지만,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니 오히려 암진단 이전보다 생기와 감사의 마음이 생겨 평안한 요즘이다. 평소와 같은 일상이었다면 팍팍한 스케줄에 평일 데이트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텐데, 가족들과 얼굴 맞댈 수 있는 이런 소중한 시간들이 허락됨에 이것 또한 은혜구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대학병원은 굉장히 북적거렸다. 세상에 이렇게나 아픈 사람들이 많다니 마음 한편이 짠하기도 했다. 내가 아프고 나니 이제야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꽤나 긴 시간을 대기하고 드디어 나의 이름이 불렸다. 암병동에 내 이름이 불리는 날이 올 줄이야.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지인을 통해 만나게 된 교수님이지만 크게 아는 내색 않으시고 담백하게 대해주셔서 내향인인 나로서는 오히려 편안했다. 예전 같았으면 서운했을 포인트가 감사의 지점이 되다니 이것 또한 재미있다.
교수님은 내 몸속의 암세포가 크지는 않지만 여기저기 퍼져 있는 상태인지라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수술해서 열어보기 전까지는 암의 기수도, 전이 여부도 알 수 없어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 여부도 그 이후에 정확히 결정 난다고 하셨다. 여러 가지 수술 방법 중에 환자가 결정해야 하는 부분들이 생겼다. 갑자기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들이 생기니 어찌하면 좋을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그래도 침착하게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수술 날짜를 잡았다.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감사하다. 이제 더 건강해질 일만 남았다. 힘을 내자. 내 앞에서 애써 씩씩하게 웃고 있는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