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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비타 Apr 14. 2022

독서하는 여유

독서는 과연 인간을 바꿀 수 있을까? 

내 기억 속의 첫 책은 '계몽사'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어린이 세계 문학 전집이다. 

빨간색 표지의 50권이나 되는 동화책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지금도 제목과 순서가 떠오르곤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소공녀', '톰 소여의 모험', '이솝 우화', '재크와 콩나무'등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 학교 끝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고, 책 속의 삽화를 보면 이야기들이 사실이라고 믿었다. 


그 시절에는 책 외판원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백과사전과 문학 전집을 팔았다. 책 파는 아저씨가 들려주던 이야기에 아이들은 넋을 놓고 빠져들었고, 결국 엄마들은 할부로 책을 들여놓았다. 교육열이라면 어디서도 뒤지지 않는 엄마들 덕분이 가난했던 시절에도 아이들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에 엄마는 검은색 양장 표지의 세계 문학 전집을 다시 들여놓았다. 보는 이를 압도하려는 듯, 두껍고 삽화 하나 없는 세로 인쇄가 된 책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지루한 책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의문이 든다. 가독성과 관련 없는 책에 딱히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다른 선택권이 없었고, 역시나 문학이 주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데카메론', '햄릿', '폭풍의 언덕', 모파상의 '목걸이'까지 서양 문학 작품들은 해외여행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 나의 상상력을 대서야 건너로 데려다주었다. 고학년으로 올라 갈수록 독서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입시, 취업 준비로 읽어야 할 참고 도서가 그 자리를 대신했어도 소설의 재미를 잊지 못했다. 


요즘은 전집으로 책을 사는 일이 거의 없다. 독서 전문가들도 아이들에게 책을 가까이하는 방법으로 전집보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골라 편히 읽히는 것이 낫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서 방 한가득 색색의 세계 문학 전집을 진열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때는, 혹시 내가 독서하는 행위보다 책을 소유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든다. 





결혼과 함께 아이가 태어나고, 나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가 다른 것은 가르치지 말고, 책만 많이 읽히라는 말에 어릴 적 문학소녀를 꿈꾸던 나의 바람을 아이에게 투영시켰다. 엄마들은 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일까?

어느 날, 아파트에서 만난 유아 서적 판매원 아줌마에게서 덜컥 아기용 전집을 사버린 것이다. 책꽂이까지 세트로 준다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아기들의 눈높이에 맞춘 삼각형, 동그라미, 네모난 책은, 펼치면 공주님이 사는 성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아이는 그 책을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생각하며 꽤나 좋아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책 판매원 아주머니는 다음 단계의 전집을 권했지만 이제는 아이와 집 근처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빌려 읽었기에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책은 소유하고 반복해서 읽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의 권 수를 따라갈 수 없다고 주장하며 매주 책가방 한가득 책을 빌려 오곤 했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도서관에서 신간처럼 깨끗한 책을 마음껏 빌려 읽는 것은 행운이었다. 이런 기쁨을 아이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그것은 부모의 욕심일 뿐, 아이는 결국 스마트 폰과 컴퓨터 안에서 더 큰 즐거움을 찾은 듯하다. 

교육자들은 평소에 부모가 독서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주변에 항상 책이 보이게 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할 것이라 했지만, 우리 집 아이는 오히려 독서하라는 엄마의 말이 잔소리가 되어 버렸는지 영 흥미가 없어 보인다. 그래도 언젠가 책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며 오늘도 엄마는 도서관에 다녀온다. 





모든 문제의 답은 항상 독서에 있다고 생각했고, 많은 사람들이 책은 인생을 바꾸고 혜안이 열린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인터넷과 유튜브가 눈길을 사로잡지만, 독서에 대한 열망은 여전하다. 어쩌면 일 년에 한 권도 안 읽는 사람보다 더 독서에 갈증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도서관과 서점에 진열되어있는 지식의 양에 점점 압도되기 때문일까?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나의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독서가 어떻게 삶을 바꾼다는 것인지 알고 싶어 스스로에게 실험해 보기로 했다. 

책을 1만 권 읽으면 인생이 바뀐다는데, 그 양을 다 읽기에는 늦은 감이 있어, 일단  1년에 100권씩 읽기로 목표를 정하고 읽은 책의 표지를 찍어 스마트폰 폴더에 저장하며 도전을 시작했다 


한 달에 10권 정도를 읽어야 하는 목표량이 있어서 인지 연 초에는 책 읽는 속도가 잘 붙었다. 시간이 지나고 연말이 다가오면 킬린 권 수를 채우느라 도서관에서 얇은 책을 빌려오는 나를 발견했다. 독서가 아닌 목표량 채우기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코미디의 한 장면 같아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일 년에 백 권을 읽는 것은 쉽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했다. 매 번 책 이야기를 하며, 한 달에 몇 권 더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친구의 한 마디가 뒤통수를 크게 후려쳤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데 너는 왜..." 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순간 아차 싶었던지 친구는 말을 끝내지 않았다. 친구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 문제를 대처하는 자세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날 나는 한 가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독서에 대한 기대치는 단순히 문학을 읽는 즐거움과 차이가 있었다. 읽는 책의 권 수를 지능 지수나 일의 성과표와 연관 짓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 책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더 신중해졌다. 축구팬과 영화광이 다르듯이 독서하는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며, 다독 (多讀) 하는 사람과 한 구너도 안 읽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동시에 책을 지적 (知的) 사치품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을까 반성하기도 했다 


어느덧 백 권 읽기를 시작한 지 8년째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많은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복잡한 집 안 일로 정신이 없어 한동안 책을 잊은 적도 있었다.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이 안정되거 나서야 비로소 읽을 수 있었다.  


독서를 하는 행위는 적극적 몰입의 과정이며, 누군가 책을 안 읽고 있다면, 그것은 개인적 환경 문제 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변에 사건 사고가 많은데 독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뇌가 허락하지 않고, 읽는다 하더라도 눈으로 훑은 작업 정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여유'가 독서 환경에서 최우선임을 깨달으며, 나에게 책 읽기를 허락해준 세월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지금도 나의 '독서로 눈 밝히기' 도전은 진행 중이다. 

'읽은 것을 말과 글로 정리할 수 없다면 아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기억하며, 책과 차분히 대화하려 한다. 세월이 주는 지혜와 책에서 얻은 지식이 조화롭게 결합되어 세상을 더 이해하길 바라며 오늘도 책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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