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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비타 Apr 25. 2022

벚꽃 애상 (愛想)

짧기에 더 아름답고 기다려지는 시간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이 피었다. 


하모니카의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대여~ 그대여~'로 시작하는 노래 '벚꽃 엔딩'은 매년 들어도 기분이 들뜬다. 남쪽에서 개화 소식이 들려오면 꽃샘추위에 덜덜 떨다가도 마음은 이미 벚나무 아래 서있다. 



벚꽃과 함께 새 삶이 시작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무슨 꽃을 가장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벚꽃이라고 한다. 추위를 유난히 타는 내게 겨울은 그저 건조하고 적막한 무채색이기에, 조금만 기다리면 곧 꽃 피는 봄이 온다는 

사실을 붙잡고 겨울 날씨를 버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캘린더가 3월로 넘어가면 갑자기 어디선가 핑크빛 공기가 흐르는 착각이 들고 마음이 들뜬다. 

봄바람에 설레는 아가씨가 되어 언제쯤 꽃이 필까? 아침이면 도로변 벚나무에 시선을 두고 애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창 밖을 흘깃거린다. 



해마다 피는 벚꽃이 나에게 더욱 특별해진 이유가 있다. 



몇 해 전, 건강에 작은 이상이 생겼다. 종합 병원에서 처음으로 검사를 받았고 수술 날짜까지 잡았다. 

아직은 젊다고 자신하며 간단한 수술을 받고 며칠 내로 퇴원할 거라는 생각에 남편에게 눈을 찡긋하며 수술실에 들어갔으나 인생은 생각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수술 시간은 길어졌고 

마침내 회복실에서 깨어났을 때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몇 시간 후 다시 상태가 안 좋아져 급박한 처치를 받고 결국 중환자실 신세를 지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곳에 있는 며칠 동안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던 시간을 경험했다. 병실은 밤과 낮의 경계도 없이 삶과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병실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간호사들을 쳐다보며

 '내가 어쩌다가 여기에 와 있을까?'라고 중얼거렸다. 


며칠 후 상태는 호전되었고, 의사와 간호사들도 다행이라며 말을 걸었다. 


'밖에는 벚꽃이 한 창이에요' 라며 간호사가 창 문을 가리켰다. 


창 밖은 온통 분홍빛이었다. 며칠 사이에 봄은 만개해 있었고, 몸을 움직이긴 힘들었지만 

마음은 이미 벚꽃 길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살아있음'에 진한 감사함을 느끼며, 동시에 삶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졌다. 


완전히 회복되어 예전으로 돌아가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날 병실에서 바라본 벚나무의 화사함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가슴 위에 한가득 놓인 벚꽃 향기와 함께 나는 다시 삶의 궤도로 돌아왔다. 






벚꽃이 피면 생각나는 친구



그날은 아침 햇살이 유난히 반짝였다. 봄기운을 만끽할 것이라며 남편 출근시키고 나서, 공원 앞에 있는 카페에서 라테를 한 잔 마셨다. 이렇게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간이 얼마 만인가 

생각하고 있을 즈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머뭇거리며 남편이 말을 꺼냈다. 친한 초등 동창이 먼 길을 떠났다고 했다.

 바로 얼마 번에도 만나서 술 한 잔 했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다 


개인 사업을 하고 있던 친구가 힘들어하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워낙 명랑하고 우스갯소리를 잘하던 친구였다. 전화기 너머로 커피숍의 모든 소리가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앉아 있을 기분이 아니어서 커피숍을 나와 집으로 걸었다. 공원길을 돌아오는데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여전히 내 귀는 음소거가 되어 있었고,

 작은 벚꽃 잎들이 하나 둘 떨어지는 것을 맞으며 걷고 또 걸었다. 


'이렇게 벚꽃이 예쁜데, 이렇게 좋은 날인데......' 마스크 속에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그의 장례식장은 마치 초등 동창회 같았다. 친구는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고 우리는 장난꾸러기, 말썽꾸러기 친구를 회상했다. 친구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착각이 들었다. 그를 배웅하던 날도, 공원묘지는 벚꽃으로 하얗게 뒤덮여있었다. 친구를 보내는 슬픔과 벚꽃의 화사함이 비현실적으로 겹쳐졌다. 






올해도 여전히 꽃 길을 걷는다. 



올해 봄은 작년과 사뭇 다르다.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코로나 시국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본다. 

한가하던 아파트 앞길은 다시 벚꽃 축제 길이 되었고, 한동안 여행을 못 한 사람들이 채워지지 않은 갈증을 풀기라도 하듯 사진을 찍었다. 열흘 남짓 지나면 꽃들이 바람에 힘없이 떨어져 버릴 것을 알기에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벚꽃을 보며 짧은 인생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매년 같은 자리에서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나이 드신 부모님, 훌쩍 커버린 아들, 아침마다 슬쩍 웃으며 나가는 남편, 전화하고 수다 떠는 친구들,

 공원의 나무, 집 앞 카페의 커피 향기.


삶이 허락한 무엇보다 값진 선물을 하나씩 자세히 들여다보며 늦기 전에 감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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